새 설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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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5월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제게 있어서 5월은 참 바쁘면서도 또 참 따듯한 달입니다. 가정을 돌아보고 또 그 소중함을 생각할 수 있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 어린이 있으십니까? 선물을 좀 챙겨왔었는데 아무도 없으시네요.
그런데 우리는 모두 어린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다시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 어린이가 있으십니까? 아, 여기 저기서 이제 좀 어린이들이 보이네요. 선물은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어린이들에게 가득히 부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멘?

배경설명 및 본문주해

오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져있는 본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시작은 사실 9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아시고 계십니까? 9장부터 찬찬히 이 이야기를 살필 때에 우리는 오늘 본문에 대해 더욱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9장 33절에서 37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가버나움의 집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서로 길에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길에서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더 클 것이냐에 대해 싸우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세워질 나라에서 누가 더 큰 권력을 차지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제자들의 머릿속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높아지려는 자는 오히려 더욱 낮아져야하리라는 말씀과 함께 어린아이를 불러 안으시고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 안에서 큰 자는 낮은 곳에서 섬기는 자임을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0장이 되었습니다. 장소는 요단강 건너편에서 집으로 바뀝니다. 아마도 일정을 마무리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았나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집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혼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쉬시기는 커녕 제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시고 계십니다. 그 때에 문을 두들기고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 저희 아이들을 좀 만져주십시오.”
만져 주심을 바란다에서 이 만지다는 단어는 ‘합토'라는 헬라어를 쓰고 있는데, 성경에서 이 단어는 깨끗케 하거나 병을 낫게 하다, 안정감을 주다, 구원을 주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부모님들은 아마 제각각의 이유로 아이를 품에 안고 예수님께 나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부모들을 꾸짖습니다.
이 꾸짖음은 당시 어린 아이들의 인권과 관련이 깊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날이 제정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상황에서 소파 방정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의 보호를 위해 1922년부터 어린이날을 제정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는 것이 불과 100년남짓밖에는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의 어린아이들은 어떠하였을까요? 우리는 성경에서 인구를 계수할 때에나 사람의 수를 말할 때에 여자, 어린 아이, 노인의 수가 빠져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생산이나 군사활동에서 큰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중에 아이는 약자들 중에서도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가치가 없는 아이들을 왜 데려와서 예수님을 귀찮게 하는가 혹은 예수님의 능력과 힘을 낭비하게 하는가에 대해서 화를 내며 부모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9장에서 했던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린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마 본인들이 잘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피곤하실테고 더 귀한 일에 쓰임받아야 할 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니 말입니다. 아직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 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에게로 나아오는 아이들을 용납하고 영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그토록 원했던 하나님의 나라가 이러한 어린아이들의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 나라를 이 아이들과 같이 영접해야한다고 말씀하시며 아이들을 끌어안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여 주십니다. 모두가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안고 안수하며 축복해주신 이 아이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성경이 말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하늘의 복을 받아 평생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이이신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어린아이는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어린아이의 특징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받아야 할지에 대해 함께 알아보며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어린아이는 연약합니다.

첫 번째로 어린아이는 연약합니다. 연약함은 오늘 본문 속 예수님의 의미와 가장 관련이 깊은 특징입니다. 어린아이는 무력합니다.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의존적입니다. 효율과 생산능력을 따졌을 때에 요즘 말로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자들이 부모를 꾸짖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런 특징을 가진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서는 용납하시며 하나님 나라가 이런 어린아이들의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연약한 어린아이는 보통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받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가성비는 어떻습니까? 저부터 말씀드리자면 처참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아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돌아보면 고개가 절로 저어집니다. 차라리 이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것이 낫지 않으실까 싶을 정도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받은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한 것을 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는데, 드린 것도 없는데 오히려 폐만 끼치는데도 은혜가 주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용납하다라는 본문의 단어가 제게 참 은혜가 됩니다. 어린아이의 모든 행동이 용납되는 이유는, 어린아이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연약합니다. 실수도 하고 떼도 씁니다. 이렇게 하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이었다면 우리는 거절되었겠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시기에 우리가 용서받고 허락받는 것이라는 은혜를 마음 깊이 새겨봅니다.
또 어린아이들이 하고있는 착각이 있는데, 자신이 부모님께 무언가를 할 때에 굉장히 대단한 것을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그것이 정말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를 크게 받아줍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이것 또한 부모가 용납하여 주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해 줍니다.
이 어린아이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소중한 것을 드립니다. 사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소중하게, 크게 받아주십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드릴 것도, 하나님을 만족시킬만한 것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무엇을 해서 선물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연약한 아이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어떠한 대가 없이 용납받으며 은혜를 받습니다. 할렐루야,
어린이 되신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연약할지라도 용납하시는 은혜로 하나님 나라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멘! 이 은혜를 받은 공동체인 교회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 작고 연약한 존재들,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과 같이 가성비를 따지며 약자를 꾸짖는 모습이 아닌 그들을 끌어안고 맞이하며 되려 필요를 채워주고 용납해주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가치를 세워가는 교회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합니다.

두 번째 어린아이의 특징은 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지혜에는 장성하되 악에는 어린아이같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합니다. 이 순수하다는 뜻은 선하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도화지와 같습니다. 그리는 대로 그려집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부모를 향하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치고 또 본이 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어린아이들이 무언가를 쉽고 빠르게 배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들이 이놈아저씨나 경찰아저씨가 온다고 하면 그대로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말을 믿고 그대로 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모르기 때문에 따지지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겸손하며 낮은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믿고 배울 수 있습니다. 천사같던 아이들이 언제 악동이 됩니까? 자아가 생길 때입니다. 무언가를 ‘알아갈 때'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겸손함과 낮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영접한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들로 하나님 나라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니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믿음을 가지고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질서대로 살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순간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 인도하심을 모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길인데 승리의 길이 아닌 고난과 슬픔의 길을 지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부모님의 말씀이 옳고 그것에 순종할 때에 좋은 것이 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우리가 닮아가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작은 지식과 경험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우리의 삶을 맡겨드리는 것이 더욱 확실하고 선하다는 사실을 믿고 ‘나'라는 조미료 없이 담백하게, 순수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실 때에 우리는 자연스레 하나님 나라를 받은 자들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자라납니다.

세 번째는 너무도 당연한 이치인데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은혜가 되는 특징입니다. 어린아이는 언제까지나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린아이는 자라납니다. 성경은 이 자라남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강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지고, 은혜가 충만해진다. 이 표현은 예수님의 자라나심을 묘사하는 단어들입니다. 그리고 이어 사람과 하나님께 사랑스러워져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우리는 자라날 것입니다.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워야 합니다. 영적으로 잘 자라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편식을 하고 균형잡힌 삶을 살지 않고 한 쪽으로만 치우치거나 배움의 대상이 없다면 올바르게 자라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른 성경 지식 안에서 굳게 서고 기도와 말씀 그리고 교제 등 신앙의 균형을 잡으며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이 자라남 또한 어린아이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밥과 쉼을 주고 가르침을 주는 것 또한 부모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잘 자라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보호자를 통해 아이가 누리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입니다. 보호자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때로 아이가 보호자를 힘들게 할지라도 보호자는 아이를 용납하고 또 사랑합니다. 이 은혜를 누리다보면 어느새 어린아이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능력없는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받아 살아갑니다. 한아름 선물을 받아가고 계십니까? 아멘. 또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용납하여주시고 영접하여주십니다. 우리를 살게하시고 또 용납하여주시고 영접하시는 은혜 아래서 저와 여러분이 계속해서 자라갈 것을 기대합니다. 또 한 가지 소원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그 은혜들을 우리 곁의 어린아이들에게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작은 예수님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어린아이와 같이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누구보다 연약하고 누구보다 순수한 모습으로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겸손하게, 낮은 마음으로 나아갑시다. 실수 하더라도, 우리의 부족함이 드러나더라도 하나님께 만져달라고 안아달라고 투정도 부리고 아프면 아프다고 낫게 해달라고 떼도 쓰며 그렇게 나아갑시다.
그리하면 오늘 본문에서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안수하시며 복 주신 예수님께서 우리 또한 끌어안고 만져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납하심과 영접하심을 믿고 더욱 그렇게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품 안에서 자라나듯, 우리 또한 예수님의 품 안에서, 이미 온 하나님의 나라에서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날, 장성한 때에 이미 받은 그 나라에 들어가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상을 하면 우리 참 마음이 넉넉해지지 않으십니까? 그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가 영접을 받았듯, 우리 곁에 우리보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영접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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