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5:1-14 "우리는 변화 될 수 있습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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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서론
어린이 주일(5/7일) 오후 예배에 나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어린이 주일을 위해서 선물 박스에 선물을 주는 행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권사님, 집사님)이 어린이들을 위해서 happy children box에 선물을 넣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과자 선물을 하는 이유?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겠죠.
우리가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
또 그들이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Just as 부모님들 - 아이들이 잘 성장하길 원하듯이,
2)하나님 아버지도 우리가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하길 원하십니다.
지난 주에 셀 리더 모임을 하는데, 한 권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도 하나님 앞에서 참 어린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우리가 부족한 부분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ex) 화내고, 서로 상처주고,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지기를 원하십니다.
2.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포도나무와 열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Main idea: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신앙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성경은 열매와 관련하여,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 전도의 열매 등을 이야기 합니다.
저는 오늘 열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의 모습/
예수님을 닮은 인격/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격 으로 여기고 말씀을 나누길 원합니다.
갈라디아서나 에베소서에서 이야기하는 성령의 열매나 빛의 열매는 결국 예수님의 성품(인격)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엡5:9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결국,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본론] 그래서, 저는 오늘 요15 장 1- 14절을 가지고,
“우리는 변화 될 수 있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기존에, 예수님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였습니까?
1)예수님은성전 청결 사건을 통해, 자신이 참된 성전이시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참된 생수를 주시는 분
3) 나는 생명의 떡이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 참된 떡” 요6:35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4) 나는 세상의 빛이다. 세상을 밝히는 참빛. 요8:12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5) 나는 양의 문이다 요10:7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6) 나는 참(선한) 목자다 요10:11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11:25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8)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14:6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참된 길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3. 이제, 예수님은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말하십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참 포도나무” = “예수님 자신이 진짜 이스라엘”이라는 말입니다.
(설명)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는데요.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켰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정의롭고 선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But,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살았고,
가난한자들을 압제하면서 살았으며, 악을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착취하고, 악을 행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내가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나쁜 열매를 맺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적용]예수님이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말한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좋은 열매를 바라고 계시는데,
그 좋은 열매를 위해서 예수님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참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붙어(가지) 있기만 하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근거(이유)와, 방법(어떻게)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A.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닮을 수 있게된 근거(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3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3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 졌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내가 일러준 말이라고 했는데, 말 = logos 가 사용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logos는 예수님의 존재 (1:1) or 진리를 나타낼 때에 사용되었습니다.
어떤 용법으로 사용된다고 하여도 의미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즉,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 졌다 =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
이와 비슷한 말씀을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줄 때에 하셨습니다.
13장 8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우리는 깨끗해 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가 깨끗해진다는 것이죠.
즉, 우리가 예수님을 닮을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을 거부하지 않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농부)께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번째, 예수님께 딱 붙어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께 딱 붙어 있으면,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딱 붙어 있다 =
다른 말로, 우리가 예수님과 사귀려고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4-5절을 보겠습니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열매 맺기 위해서, 우리에게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라고 말씀합니다.
(설명) 여기서, “붙어 있다” = “사귄다”의 다른 표현
1)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고 (abide in jesus)
2)and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and Jesus in us)
물리적으로, 두 사람이 동시에 누군가의 안에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ex) 저는 부인을 항상 생각하면서 삽니다. 엄동한 안에 wife가 있는 것이죠.
우리 부인은 항상 생각하면서 살까요? 그렇다면 황혜영 안에 제가 있는 것이죠
In 에 사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도, 마음에서는 가능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살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까요?
요한일서 4 장 13절을 보겠습니다.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By this we know that we abide in him and he in us, because he has given us of his Spirit. (esv)
성령으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살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성령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된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에, (in Jesus),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in me),
나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내 안”에 있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계속 예수님께 붙어 있기만 됩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칭의)
요 6 장 56절을 보겠습니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이 말씀은 오병이어 기적 이후에 하신 말씀인데요.
예수님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기 때문이죠.
요 6 장 56 절은 일반적인 진술 (평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요 15 장 4절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
요15: 4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으니까,
계속 붙어 있고 (4절) = 예수님을 떠나지 말라 (5절)는 것입니다.
6장은 - 우리가 법적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고,
15장은 - 계속 사귐을 통해서 더 알아가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하나가 된 우리들에게,
“지속적으로 예수님과 딱 붙어 있으라”고 요청을 하고있습니다.
ex) 예전에 저희 부모님 세대에는 중매 결혼이 많았습니다.
저희 지역 장로님 권사님도 중매 결혼을 했는데,
별로 교제의 시간 없이,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부부가 되어도, 교제의 시간이 없었으니깐, 서로에 대해 아는것이 별로 없잔아요.
서로 살아가면서 이제 서로를 더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ex) 15장 14 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은 구원 받은 우리를 “친구" 라고 말씀합니다.
ex)맨 처음 친구를 사귈 때를 생각해 보십시요.
맨 처음 서로에 대하여 아는 것은 이름에 불과 합니다.
그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오랜 사귐을 통하여 서로에 대하여 알 수 있게 됩니다.
(적용)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존재이신가요?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 삼아 주셨는데, 예수님에 대하여 얼마나 아시나요?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을 계속 부르고, 찾아서, 교제(사귀어여)를 해야합니다.
if 우리가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기를 원한다면,
then,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ex)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요.
1)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야했습니다.
요 4:20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죄 용서함을 받기 위해, 짐승으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요2:15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완성하였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시든지, 예수님을 통해 죄 용서함 받고,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다시말해서, if 우리가 주님과 만나기를 원하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우리가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 번째 이유는, 우리 눈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의 사귐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우리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죠.
-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나)된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은 너무 깨끗하고, 우리는 죄성이 있어서, 죄와 유혹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친구도 어느정도 level 맞아야 친구지, 너무 수준차이가 나죠.
그래서 주님과 사귀어 보려다,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우리는 우리들의 욕심대로, 우리들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just as 친구가 뜻이 다르면, 사이가 멀어지듯이
우리의 뜻과 예수님의 뜻이 계속 충돌되면 예수님과 사귀기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이유는, 우리의 일상이 너무 바빠서, 예수님과 사귈 시간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하루에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예수님을 잊고 지내다가, 주일날 생각 날 수도 있습니다.
[적용] 하루에 몇 번 정도 주님을 부르십니까?
매 순간 순간 주님을 부르고,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의 뜻을 구하고 사는 것이 주님과 사귀는 것 입니다.
이렇게 주님과 사귈때, 우리의 인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 닮아갈까요?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가득해야 합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2가지를 말씀합니다.
요15:7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1)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2)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이것은, 우리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가득해야 한다는 것이고,
2)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때에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는다라고 말씀합니다 (8절)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우리가 주님과 사궈야하는데
주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아야 사귐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면,
주님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ex) 저는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저는 예수 믿으면, 바로 새 사람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바로 나의 모든 죄악된 행동들이 고쳐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인격이 바뀌게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But, 그렇게 저의 인격은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변하지 않는 나의 인격에 실망하고, 교회 다녀도 별 수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제가 주님의 말씀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기는 읽어도, 그 본질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세상의 책 보듯이 읽었던 것이죠.
하나님의 마음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고,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잘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또 성경 공부도 참석을 하고, 셀 리더 모임에도 참석을 해야 예수님의 말씀을 알 수 있습니다.
1주일에 한번 주일 예배만 참석 하는 것으로는,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다 알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을 알았다면, 이제, 그 말씀을 마음속에 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속에 담는다? = 그 말씀을 계속 되새긴다는 것이죠.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완전히 새겨지도록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1 장 33 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길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우리 마음에 담을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씀을 마음에 담고, =
성령으로 그 말씀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할지를 매 순간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죠.
ex) 바리새인들: 지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알았지만,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적용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마 23 장 23절을 보면,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바리새인들은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모든 수입(곡식, 나무의 열매, 소나 양 등)의 십일조를 드렸는데(레 27:30–33),
심지어 그들의 정원에서 나는 가장 작은 작물들의 십일조까지 엄격하게 바쳤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율법의 더 중한 요구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는 사실을 지적하신다(참고. 9:13; 12:7).
즉 그들은 작은 일(십일조)은 제대로 했으나, 큰 일(바른 삶)은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무었인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담는다는 것은 =
그 말씀을 실제적인 삶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말씀으로 매 순간, 예수님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을 다시보겠습니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잘못해석해서,
사람들은 예수님 믿고, 성경 말씀을 알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구하면 다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구절의 올바른 해석은,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자 하였는데, 잘 되지 않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때로 살기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럴때에,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다는 뜻 입니다.
ex) 예수님이 우리보고 “서로 사랑하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그런데 그것이 상당히 어려운 요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은 희생이 필요하고, 용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 주님!! 저는 저 사람을 사랑할 수 가 없습니다.
너무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언어도 거칠고, 행동도 거칠어서,
주님 저는 저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대화를 하면, 주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가득할 때에, 우리의 인격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어떻게 우리의 인격이 변화될 수 있을까요?
- 예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 우리가 정말 변화 됩니다.
9절과 10절을 보겠습니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9절)
그리고 10절에서, “내 계명을 지켜야 = 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 행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를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자기(예수님)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원천?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예수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도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문제 - 우리는 입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주님의 뜻에 얼마나 불순종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까?
그리하여,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많이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변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6절을 보시면,
요15:6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If 우리가 행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된다는 것이죠.
야고보서에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사랑을 베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을 베풀고 살 때에, 우리의 인격이 변화됩니다.
4. 만약에, 우리가 예수 믿고,
주님과 사귈려고도 하지않고, 말씀도 새기지도 않고, 행함도 없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2절을 보겠습니다.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1)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지를 제거해 버리신다고 말씀합니다.
2)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과 징계로 우리를 열매 맺게 하신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 동의 하는데요.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며,
또 열매를 맺는데에 방해가 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런 것들을 잘라 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이 변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하겠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집, 자존심, 못된 행동들이나 습관들이 있으면,
1)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2) 계속 우리가 고집 피우고 고치지 않으면, 회초리를 드신다는 것입니다.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도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 영접하시고, 얼마나 변화하셨나요?
제 안에 있는 황혜영에게 여쭈어보니까, 70% 새사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남은 30%를 위해서 은혜를 구하며,
계속 예수님과 사귀며, 말씀안에 있고, 행함으로 나아가려고 은혜를 구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예수님과 열심으로 사귀어,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 -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막3:17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얼마나 성격이 불같고, 화를 잘 내면 이런 별명을 지어주셨을까요?
하지만, 사도 요한은 예수님 안에서 오랜 사귐을 통해,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도 사도 요한 처럼, 변화된 인격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가정의 식구들, 직장 동료들을 기쁘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