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속죄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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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대제사장을 기다림
완전한 대제사장을 기다림
22절에서 악의가 없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피한 다음,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주해야만 했다. 대제사장이 그의 남은 수명보다 더 길게 살아간다면, 그는 도피성 안에서 죽음을 맞이해야할 것이다. 또 운이 좋게도 대제사장이 일찍 죽는 다면, 그는 일찍 자유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을 피 흘리게 한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악하게 보는 것이 피흘림이다. 그렇기에 33절과 같이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한다. 피는 땅을 더럽히고, 더러워진 땅은 오직 살인자의 피로만 속함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진술은 아벨과 가인의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 아벨의 피를 받은 땅이 하나님게 호소한다고 말한다(창 4:10). 이렇게 볼 때, 피 흘림에는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원통함과 슬픔이 죽은 자의 피에 있는 것이다. 그 원한은 반드시 살인자로부터 갚아지는 정의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들이 사실상 형제 사랑과 이웃 사랑에도 녹아져 있다(마 5:21-26). 이러한 진술들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들 간의 화목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시는지 알게 된다. 서로를 미워하는 것에서 원한이 서리고, 이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입각해서 정의를 부르게 한다.
살인죄가 비고의성과 고의성이 있듯이, 우리가 형제와 자매를 미워함에도 동일한 비고의성과 고의성의 차이가 있다.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도 큰 차이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사고사로 죽은 이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그의 죽음을 운명과 같이 받아들인다. 가슴에 슬픔을 묻기는 하지만, 주변에 그 원통함으로 토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의성이 가득한 죽음은 반드시 그의 가족들로부터 가만 있지 못하게 한다. 소식을 널리 알리고, 그 분노함이 더욱 커지게 한다.
한편 이러한 정의를 부르는 것과 우리의 현재를 살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실제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의 관점이다. 고의죄이든, 비고의성이든 모두 이에 합당한 대가를 반드시 치뤄야한다. 고의성이 있는 죄는 사실상 아주 무겁게 다뤄져야한다. 당시에는 도피성도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즉결처형으로 다스려져야한다고 명시한다.
왜 이렇게 이야기할까.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이야기에서 조금의 힌트를 얻는다. 그는 교도소에서 신학 수업을 가졌는데, 그곳에서 수감자들은 종신형자들이었는데, 그들이 흘린 피에 대해서, 자신들이 끼친 해악에 대해서 절규했다고 한다. 이러한 절규는 너무 생생하게 들리는데, 그것은 그들의 몸과 전인격에 새겨진 기억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의성은 단순히 피해자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관점에서 피의자도 살해하는 것과 같다.
한편 비고의성은 다시금 자유가 주어질 수 있는데, 우리 현대사회에도 이러한 구제책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피해자에게 속죄하며, 그들의 아픔을 달래며,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한편 이를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떤가. 대속이라는 측면이 앞선 부분에서는 이 땅에서의 삶을 조망했다면, 영적인 의미에서 하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떠한가.
대제사장의 죽음으로써 속죄를 받는다고 했다. 32절을 보면, 대제사장의 죽음이 비고의적 살인을 행한 사람들에게 속죄의 필수조건이다.
먼저는 이제는 이러한 대제사장은 없다. 우리에게 영원하고 온전한 대제사장이 한 분 계시다. 구약의 대제사장과는 질적으로 다른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히 6:20).
우리는 그 분의 대속을 이미 성취했고, 이루셨기에 신앙적인 양심 속에서는 용서를 받았고, 영적인 자유함은 누릴 수 있다. 물론,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정의의 재판과 감내는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들이 사실상 핵심이기에, 이를 이루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전한 속죄를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
한편 비고의적 살인이 이와 같다면, 고의적 살인은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고의적 살인은 대제사장의 죽음의 속죄가 아닌, 자신의 죽음으로 속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민수기에서는 이러한 진술이 선명하지 않지만, 이것은 피살자와 피의자 모두에게 용서가 필요하다는 개념이 된다. 더 큰 용서와 더 큰 대속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인격적으로는 이미 피의자도 죽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대 사회 속에서 이해되려면,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이러한 피의자도 감당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현상적으로 이러한 피의자들, 특히나 연쇄살인자들도 다시금 자신의 삶을 뉘우치고, 속죄의 삶을 살기를 소원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이들이 여전히 전인격적인 살인의 기억을 가지고 살기에, 그 형벌 자체도 무겁고, 또한 사회적인 안전을 위해서도 사회에 내보내서는 안된다. 분명히 사회와의 격리가 필요한 것이다.
반면, 신앙의 영역에서는 이들에게도 하나님과의 교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것이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사실, 이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가능하시다. 그의 중보와 대속은 완전하시기 때문이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히브리서에서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신 분이시라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또 한편 그는 자신의 양편 강도 중 한명이 자신을 기억하게 해달라는 요청에 신실하게 응답하셨다. 당시 십자가형에 당한 죄수는 분명히 사회에 대해서 반역적인 행동과 그 과격성이 사람을 해친 경험이 있다고 가정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 그는 궁극적으로는 예수님 안에서는 용서함을 받았고, 하나님과 교통함을 약속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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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봄, 내 평생 가장 감동적인 교수 경험을 했다. 칼빈 대학과 칼빈 신학교의 메인 캠퍼스는 그랜드래피즈 남동부에 위치한 놀크레스트 캠퍼스이다. 몇 년 전, 칼빈 대학과 신학교가 함께 제2 캠퍼스를 만들었는데, 그랜드래피즈에서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미시간주 아이오니아의 핸드론 주립 남자교도소 안에 위치했다. 핸드론 캠퍼스는 놀크레스트 캠퍼스와 마찬가지로 공식 학사학위를 제공한다. 미시간주 전역의 죄수들이 이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고, 매년 20명의 신입생이 입학 허가를 받는다. 과목은 칼빈 대학과 신학교 교수들이 가르치고, 대부분의 경우 놀크레스트 캠퍼스에서 가르치는 과목과 동일하다. 에릭의 대학 시절 친한 친구였고 지금은 칼빈 신학교 교수인 존 로트먼이 이 프로그램의 발기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감동했다.
칼빈 대학 철학과 교수인 케빈 코코란은 2016년 봄에 핸드론 교도소에서 철학개론을 가르치고 있었다. 몇 년간 그는 나의 책『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를 해당 과목의 강의개요에 넣은 터였다. 케빈은 교도소 수업에서 그 책을 가지고 토의하던 중, 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내가 그랜드래피즈에 산다는 것을 우연히 언급했다. 그러자 수업에 참가한 사람들이 나를 수업에 초대하자고 의견을 냈다. 그래서 케빈이 나를 초대했고 나는 수락했다.
이 칼빈 프로그램의 책임자 토드 쵸피가 나를 교도소로 태워다 주면서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정교분리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자, 교도소에서 배정해 준 교실의 실내 장식과 가구 설치 비용을 칼빈에서 출연했다고 했다. 프런트에서 많은 서류가 오간 후, 나는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고 토드는 나를 강의실로 데려갔다. 그곳이 얼마나 넓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던지 나는 대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내가 놀크레스트 캠퍼스에서 보았던 어떤 강의실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우선 목재가 많았다. 목재 테두리와 교도소 목공소에서 제작하고 아름답게 마감한 목제 책상, 의자가 있었다. 강의실 한쪽 면에는 책장을 짜 넣은 우묵한 벽감이 있었고, 역시 아름답게 마감되어 있었다. 그 전체적 모습이 존엄을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적어도 이 강의실에서 그 사람들은 수용된 대상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에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수업에 참여한 스무 명—나중에 알고 보니 그중 열일곱 명이 종신수였다—모두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를 한 권씩 들고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내가 사인을 해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이렇게 수업에 찾아와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내가 수업에 함께 해줘서 영광이라고 학생들이 말해 준 것은 처음이었다! 강사로 소개받을 때 나를 소개하는 사람이 그날 저녁에 나를 강사로 모시게 되어 자기 단체가 영광이라고 형식적으로 선언하는 일은 가끔 있다. 나는 그 말을 이런 뜻으로 받아들인다. “W 교수가 우리의 강연 요청을 수락한 것은 우리의 자랑거리요.”
그 죄수들은 내가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이 그들의 자랑거리라고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매일 모욕을 당하고 남의 말을 들어야 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이들—은 내가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자기들을 명예롭게 했다고, 그들이 무가치한 인간쓰레기가 아님을 선언했다고, 그들이 명예를 가진 존재임을 선언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쨌건 나는 그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이해했다. 나를 강연자로 소개하는 누군가가 내가 그 강연 요청을 수락한 것이 그들의 ‘영광’이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내가 울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내게 자기들 수업에 찾아와 주어서 영광이라고 선언했을 때 나는 울컥했다.
"그날 나는 학생이었고, 그들이 교사였다."
케빈이 나를 소개한 후, 나는 어떻게 그 책을 쓰게 되었는지에 관해 몇 마디를 하고 토의를 위해 책을 펼쳤다. 나는 그 책을 수업 시간에 토의한 적이 없었다. 가끔 일부 대학이나 신학교 수업에서 그 책으로 토의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런 토의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은 없고, 요청을 받았다 해도 참가할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대학이나 신학교의 정규과목에서 그 책을 토의한다면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할 것 같다. “월터스토프는 슬픔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그런 이해가 올바른 것으로 보입니까?” “책에 나오는 저자의 신학은 무엇입니까?” “그 신학에 동의합니까?” 나는 그런 토의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
핸드론 교도소에서는 토의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업에 참가한 사람들은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식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이 본인의 삶과 다른 이들의 삶을 파멸시킨 것 때문에 슬퍼했다. 우리가 시편의 글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기도를 드리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들은 그 책을 내 슬픔을 내가 표현한 것으로 읽지 않고 그들 슬픔의 표현으로 읽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대목을 펴서 소리 내어 읽고 그 대목이 어떻게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지 설명했다. 그들은 놀랄 만큼 솔직했다. 내가 그동안 가르친 어떤 대학생보다 더 솔직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설명했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말했다. 그들의 말은 분명했고 감정적으로 강렬했고 인생 경험이 어려 있었으며 달변이었다. 그들은 내 글에 대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해석을 제시했다. 그날 나는 학생이었고, 그들이 교사였다.
나는 그들과 나의 공통적 인간성을 깊이 인식했다. 물론 나는 감방에 하루도 갇힌 적이 없는 대학교수였고, 그들은 죄수, 그것도 대부분 종신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수업을 하며 텍스트를 읽고 토의하고 슬픔을 나누었다. 나는 열여덟에서 스물두 살 사이의 대학생들에게 느꼈던 것보다 더욱 긴밀한 연대감을 ‘종신수’들에게 느꼈다.
어떤 시점에서 이런 생각이 밀려왔다. ‘얼마나 끔찍한 삶의 낭비인가!’ 그렇다, 이 사람들은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고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을 평생 가둬놓는 것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을까? 인간의 삶이 이런 식으로 허비되어야 할까?
그날 수업이 끝나고 그들은 줄지어 서서 나와 악수했고 내가 그들 수업에 찾아와 주어서 큰 영광이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마지막 몇 사람이 지나갔을 때, 나는 그때까지 느끼고 있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바를 말했다.
“여러분을 만난 제가 영광이었습니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경이로운 세상에서>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