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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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느끼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아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축복인 동시에 우리 앞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책임과 고난 또한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상황이 단순히 낭만적인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나온 에스겔도 낭만적인 상황에 있었던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할 책임과 고난을 짊어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 레위 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성전을 관리하고 예배를 맡은 사람으로서 오늘 날로 보면, 목회자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목회자, 목사로서 교회를 돌보는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오늘은 이 에스겔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어려움과 상황에 놓였는지, 그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께 어떤 소명을 받고 어떠한 말씀을 받았는지, 이 구약시대의 말씀이 신약시대 때와 우리에게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벨론 포로시기 상황

에스겔 1:1-2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을 보면 이 당시의 년도가 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1절에는 서른째 해, 2절에는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이 되는 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먼저 2절을 보면,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이 되는 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호야긴 왕은 예루살렘에 단 석달만을 다스리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힌 왕으로 그가 예루살렘을 다스렸던 때는 기원전 597년입니다. 즉,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 되는 때는 기원전 592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절에 나와 있는 서른째 해, 이것은 언제를 의미하는 것 같아 보이십니까? 여기에서 서른째 해는 에스겔의 나이를 의미합니다. 즉, 에스겔이 30살이 되던 해라고 보면 됩니다. 기원전 592년에 에스겔이 30살이었으니까 에스겔이 태어난 시기는 기원전 622년이라고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요시야 왕이 통치하던 시기입니다. 요시야 왕은 남유다의 왕 중 한 명으로 히스기야와 같이 남유다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던 왕이라고 여김을 받은 왕이었습니다. 그가 한 일만 해도 우상을 깨부수고, 우상들을 모신 산당을 없애고, 이방예배를 없애고,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하여 율법준수 운동, 회개운동을 행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열왕기하 22-23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23:25 에는 요시야 왕을 향한 성경의 평가에 대해 볼 수 있습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만큼 하나님께로 돌이키려고 노력한 시대에 에스겔이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 이후 다시 이스라엘은 악을 행하였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항복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요시야 왕 이후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이 다스린 이 3년 3개월 동안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3년 3개월만에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후 여호야긴 왕과 시드기야 왕 때에 각각 1번의 바벨론의 공격, 즉 2번의 바벨론의 침공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멸망하게 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에스겔이 놓였던 것입니다. 남유다의 사람들은 포로로 바벨론에 가게 되고, 남유다는 멸망 직전의 상황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아니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던 때에서 몇 년만 지나면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니까 더 어려운 상황었겠죠. 아까 제가 앞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을 관리하는 레위지파 사람입니다. 제사장인 것입니다. 제사장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성전입니다. 그런데 1절에 그는 바벨론에 위치한 그발 강가에 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즉,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데 자신은 1절에 나왔듯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온 상황이라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요시야 왕의 정책으로 하나님의 예배와 율법준수, 회개 운동을 보았던 사람이 이제 30살이 되어서는 바벨론에 멸망당하기 직전의 상황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보았던 사람이 이제는 과거의 영광을 발견할 수 없는 현재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맞닥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있었다면 에스겔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아마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요시야 왕 때에 하나님을 섬겼던 그 시간과 그 장소를 그리워했을것입니다. 에스겔은 그 당시의 영광을 보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성전 및 자신의 나라를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마치 비유하자면, 윤동주 시인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비록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는 항일운동의 중심지 중 한 곳이었던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과거 대한민국의 영광을 꿈꾸던 사람들에게서 과거의 영광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유학의 길을 걷고 일본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에 일본에서 생활하게 되었지만 그 와중에 대한민국의 독립을 그리워하며 시를 썼던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에스겔과 비슷한 상황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자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시고 소명을 주었습니다. 이 소명에 대한 말씀을 몇 가지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인자’입니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 히브리어로는 ‘벤-아담’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인자라고 자신을 표현하신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그 의미보다 대제사장을 가르키는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 ‘벤-아담’은 대제사장을 지칭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에스겔을 대제사장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의 대표로 부르신 것입니다.
민수기 4:35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 을 보면, 레위 사람들이 제사장직을 수행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나와있습니다. 당시 레위 사람들은 30-50세까지 회막 및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직무를 수행했어야 합니다. 앞서 에스겔이 하나님께 부름받은 나이가 30살이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직무를 수행해야하는 나이가 되었고, 하나님은 이에 따라 에스겔을 대제사장으로서 부른 것입니다.
에스겔 11: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을 보면, 하나님이 잠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성소가 되리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내가 그들에게 작은 성소가 되리라’ 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패역한 백성, 반란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을 보면 알 수 있죠. 패역하고 배반한다는 백성이라는 말만 7번 이상 나왔으니까 말입니다. 이로 인해 바벨론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끌려가게 되었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드리지 못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할 성소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의 작은 성소가 되어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성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예배받으시는 곳이 성전이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이 성전 건물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성전이 없어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나님께서 바꾸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배의 지도자로, 대제사장으로 에스겔을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을 일으켜 에스겔의 발로 세우신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에스겔이 직접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람을 통해 에스겔을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대제사장이 되고, 우리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제사장의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러 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마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각자가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직분과 봉사의 자리를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씀을 전하는 분으로, 누군가는 주차를 인도하는 분으로, 누군가는 식당에서 봉사해주시는 분으로, 누군가는 찬양으로, 누군가는 인사와 안내로, 누군가는 교회학교 선생님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제가 언급하지 않은 많은 역할도 이 교회 안에 있고 각자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당장 이 이후에 구역장 모임이 있지 않습니까? 이 역할의 가벼운 역할도 없고 무거운 역할도 없습니다. 그저 모두가 똑같이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직무를 맡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모두가 에스겔과 같은 제사장이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 번째는 ‘두려워하지 말라’ 입니다. 하나님께서 패역한 백성과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6절 안에서만 4번이나 이야기를 합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죠. 에스겔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이름의 뜻처럼 살라고 에스겔을 독려하는 것입니다.
지금 에스겔의 상황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실 상황처럼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으로 여러 엘리트 교육을 많이 받아왔지만, 그는 30살이었습니다. 이제 막 제사장 임무를 수행해야 되는 햇병아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로 따지자면 담임 목사님 같이 목회를 20-30년 동안 한 사람이 아니라 현재 30살이 된 박요섭 전도사 혹은 그보다 더 나이가 적은 제가 화도광성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라는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게다가 성전은 없어서 성전에서의 예배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반란하고 여전히 패역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문 6절에서는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만큼 가시밭길과 죽음이 에스겔 앞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패역한 백성과 그들의 말이 아니라,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고 전갈 가운데 있는 것 같은, 에스겔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2:4-5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그들이 선지자가 그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시선과 사람의 말,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기 보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코람데오’라는 말을 사용하죠. 하나님 앞에서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더라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더라도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 그리스도인처럼 살 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고지식하냐고, 왜 그렇게 하나님 하나님만 하는 멍청한 사람이냐고, 왜 이렇게 주일에 쉬지 않고 예배와 봉사를 하는 체력적으로 힘든 일을 하냐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다 맞는 거냐고, 그거 다 아닐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처럼 다양한 가치관이 있으며 절대적 진리가 없다고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하는 사람입니다. 앞서 말한 교회의 가치관, 예배와 봉사를 하는 것, 성경을 진리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 선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자들, ‘코람데오’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네게 주는 것

세번째로 두루마리 책입니다. 에스겔 2:8-10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절을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주는 것, 두루마리 책을 볼 수 있습니다. 두루마리 책을 보았을 때, 그 곳에는 애가, 애곡,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왜 애가와 애곡,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에 그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요시야 왕 통치시기에 태어났던 인물로 그는 요시야 왕 때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한 사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때, 요시야 왕이 말씀을 보고 백성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이 열왕기하 22:13 에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이 진노로 인한 애가와 애곡, 재앙의 말인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 원인입니다.
요시야 왕과 당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고 했던 것은 회개입니다. 그들은 우상과 이방신전과 이방예배를 없애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월절을 행하는 회개운동과 율법준수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시야 때에 그분의 진노를 이스라엘에 쏟지 않으십니다. 요시야와 이스라엘의 회개운동에 답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러한 회개를 명하는 것입니다. 두루마리 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애가와 애곡, 재앙의 말을 발견했으면, 이제는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에스겔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회개의 말씀을 듣든지, 듣지 않든지 선포를 해야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주님의 명이기 때문입니다.

벧전 2:9

이 3가지가 바로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 성전이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교회이니 그곳에서 예배하는 예배자로서 세우시겠다는 말씀, 하나님을 향해 반란을 일으키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가 되라는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개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3가지의 말씀을 이야기하는 본문이 신약성경에는 베드로전서 2:9 에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셔서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도 에스겔이 제사장과 선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 그리스도인이 되어 왕 같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운 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진리, 이 진리를 믿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3:16-17
John 3:16–17 NKRV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우리는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러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에스겔이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과 바벨론에게 선포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럴 때에 많은 사람이 어두운 데서 하나님의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는 회개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빛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간 이후 70년 후에 그들은 다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에스겔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왔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 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빛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모든 열방이 주의 영광을 보고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들의 대표로써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분의 말씀,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 전도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각자의 삶에서 분명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에스겔과 비슷하거나 다르더라도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이 땅에 회개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백성이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며 오늘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앞의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도하는 소명을 감당하는 화도광성교회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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