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합당한 삶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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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그러므로”는 위대한 전환, 접속사이다. 복음에 합당한 열매
1-11장은 믿어야 할 내용, 교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 직설법
12-16장은 행동해야 할 내용, 윤리,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 명령법
앞 뒤의 내용이 바뀌면 율법주의자가 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원을 주신다. 그렇게 못하면 구원 받지 못할거야 ”
앞의 내용만 있고 뒤의 내용이 없으면 율법폐기론자가 될 수 있다. “구원 티켓 받으면 그만, 삶은 상관 없어. 회개는 한 번만 하면 그만이야 계속해서 하는 것은 구원 받지 못한 증거다. ”
뒤의 내용만 있고 앞의 내용이 없으면 도덕주의자, 종교주의자가 되고 만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본론
본론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이 첫 번째로 하나님께 할 반응은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즉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에 있습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 된 우리를(1:18-3:20)
하나님이 보내 주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속을 믿게 하심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3:21-4:25).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과 연합시켜 주셔서(5장),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으며(6장), 율법에서도 해방해 주셨고(7장), 성령님을 우리 안에 보내 주셔서 영원한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셨습니다(8장).
그리고 하나님은 구속의 역사 교육을 통해 유대인-이방인-유대인의 순서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풍성히 받게 해 주셨습니다(9-11장).
하나님의 이 모든 자비하심에 대하여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참된 예배입니다.
사도 바울은 참된 예배를 구약의 제사와 비교해서 말합니다.
구약은 제물, 성전, 제사장을 통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레위기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신약은 자신의 몸을 드립니다. 자신의 몸이 제물이요, 성전이요, 제사장입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제사법에 필요한 제사장, 제물, 성전은 모두 예수님에 대한 모형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제물, 참된 제사장, 참된 성전이십니다.
예수님이 드린 제사는 영원히 단번에 드린 제사로서 우리의 죄를 위한 완전한 속죄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해진 시간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헌신된 삶 자체가 예배로 확장되었습니다.
공적 예배와 일상 예배, 모두 다 예배가 된 것입니다.
공적 예배는 교회 공동체가 주일에 함께 모여 일정한 순서에 따라 설교를 듣고, 성찬을 하며,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또한 일상 예배는 매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헌신 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공적 예배와 일상 예배는 불가분리의 관계입니다.
주일 공적 예배는 일주일 일상 예배의 원동력입니다.
우리 자신의 몸을 드리는 예배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살아 있습니다. 평생의 삶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거룩합니다. 거룩은 구별되었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몸을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2절에서 그 답을 줍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세계관이 바로 “내가 나의 주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오직 한 가지 방법 뿐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마음이 새롭게 되려면 우리가 그동안 1-11장까지 살펴보았던 복음을 믿음 으로 구원 받을 때 가능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타락한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심으로 새 마음을 가진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합니다.”
분별한다는 것은 안다는 뜻으로 지적이면서도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복음으로 새롭게 된 사람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의 특징, 3가지 선한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을 압니다. 온전한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뜻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 갑니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세계관입니다. 기독교적인 가치관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십니다. 나의 지식? 나의 느낌? 나의 뜻(의지)?
복음으로 마음이 새로워진 사람은 이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 놓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고 그의 뜻 앞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으로 마음이 새롭게 된 사람이라면,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교회와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와의 관계
복음을 믿음으로 새롭게 된 사람은 홀로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한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고 양육받아 성장하도록 돕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나의 성향은 내성적이라서 함께 모여서 어울리는 것은 피곤하고 힘들어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용기를 내 보십니다.
이제 나의 성향이 새롭게 되어 공동체가 주는 유익을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또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또한 주님의 몸입니다.
사람의 몸은 여러 가지 지체가 있습니다. 손, 발, 머리, 몸통. 등등
먼저 자신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려면 먼저 자신에 대한 바른 평가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바르게 평가하고 바르게 아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는 데 가장 기초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합니다.
과대평가하면 교만하게 되어 다른 사람을 무시합니다.
반대로 과소평가하면 자책하며 아무짝에 쓸모 없다고 생각하며 외롭게 살아갑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바르게 평가하여 교회 공동체 속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분량은 모든 기독교인이 공통적으로 믿어야 하는 객관적인 믿음의 내용을 말합니다.
주관적으로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면 그 기준을 성경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을 빨리 알고 싶으시면 성경의 핵심 내용을 모아 놓은 사도신경을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성경에서 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듣는 것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MBTI를 비롯하여 많은 검사를 통해 자신을 살펴보려고 애씁니다.
거기에만 머무르지 마시고 성경이라는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럴 때 제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다양성과 통일성을 가집니다.
롬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객관적인 믿음으로 하나 된 교회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로 서로를 돕는 공동체로 부르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삼위로 계시면서 한 하나님이신것과 같이 하나님도 공동체를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회적입니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나 홀로 있지 않고 너와 우리라는 공동체적으로 존재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세대는 개인주의를 강조합니다. 홀로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처럼 포장되어지고 그런 사람들을 위한 많은 컨텐츠로 세상을 채워갑니다.
물론 홀로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홀로 있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동물은 짝이 있음을 아담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만 홀로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잠을 재우신 후에 새롭게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의 지체로 사람을 만드십니다.
분명 한 지체로서 사람으로서 동등한 존재이자 기능과 성향과 역할이 다른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교회는 모두 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서 동등합니다. 그러나 각자 마다 다른 은사를 주심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책임지고 섬기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마치 우리 몸의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 꼭 필요하지만 역할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신비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낫다”는 영화의 멘트가 떠오릅니다.
몸의 지체들이 각각 다양한 기능으로 몸 전체를 위해 작동하듯이, 각각 자신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면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궁금해질 것입니다.
롬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일곱 개의 은사를 소개합니다. 그러나 다른 성경 본문에서는 아홉가지, 여덟가지, 다섯 가지 목록을 추가적으로 말합니다.
이 목록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은사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증거가 아닙니다. 성화에 대한 보답도 아닙니다. 은사는 사람이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은사의 목적은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은사는 자기 자랑의 수단이 아닙니다.
은사는 교회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셋째, 은사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오늘 바울이 알려 준 은사는 은사의 대표적인 성격을 띱니다.
1.예언-장래 일,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 다른 예언 하는 사람을 통해 분별-믿음의 분수(객관적인 믿음의 기준, 성경, 교리)-기독교의 기본 교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함
2.섬기는 일-직분으로 섬기는 일, 소모임 리더, 교사, 집사, 권사, 장로와 같은 특별한 섬김
가르치는 일-성경과 교리, 곧 믿음의 내용을 설명해 주는 일-연구와 노력이 필요
위로하는 일-성경의 가르침대로 행동하도록 촉구하는 일, 권면하다. 격려하다.
구제하는 일-공적으로 교회의 물질을 분배하는 것, 개인적으로 가진 물질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 관대한 나눔을 꾸준하게 하는 것
다스리는 일-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가정을 먼저 다스리고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 직분자의 봉사
긍휼을 베푸는 일-병든 자들, 정서적으로 고통받는 자들,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특별한 사역을 할 때 나타남-즐거움으로 해야 함, 억지로 하거나 힘든 것 처럼 해서는 안됨
결론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