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이해를 넘어 삶으로] 안식일, 또 다시 안식일(출20:8-11)

출애굽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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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5월 7일 주일 청년부
시리즈 : 안식일, 이해를 넘어 삶으로
제목 : 안식일, 또 다시 안식일
본문 : 출애굽기 20장 8-11절 *구112
결단찬양 : 삶의 예배
[반복을 통해 무뎌진 주일]
일주일 전 ‘안식일’에 대해 나누었고, 또 한 번의 안식일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우리가 저번주 나눈 안식에 의하면 ‘안식일은 또 돌아올 수 없는 날’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이미 7일로 모든 것을 끝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안식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안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창세기에서의 안식을 기억해야만 함은 ‘완벽하게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타락한 우리의 삶에 회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의 완성을 다시금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안식일은 또 다시 돌아옵니다. 주일이 지나 우리는 또 다시 돌아올 주일을 기다리며, 오늘처럼 그런 주일을 우리는 살아냅니다.
우리 삶에 주일처럼 반복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의 매일을 보면, 어제의 하루가 오늘 반복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일 또 반복될 것입니다. 같은 시간, 같은 이동수단을 활용해, 같은 업무를 보는 우리의 삶이야 말로 반복의 가장 좋은 샘플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삶에 루즈함이 찾아오게 됩니다. 지루해지고, 무뎌집니다. 재미가 없어집니다.
사실 제 삶이 그랬습니다. 늘 반복되는 루틴한 삶 속에서 저는 지루함을 자주 느껴왔습니다. 특별히 재미를 누릴만한 포인트가 없었습니다.
매주가 반복의 반복이었습니다. 월요일은 지난 주 월요일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주일이 지나 쉬는 날이기에 축구하러 서울에 갔다가 점심 먹고 집에 돌아와 씻고 집안 일을 하다보면 하루가 끝이 납니다.
화요일부터 출근해서 또 하루하루 반복의 반복을 반복합니다. 물론 지금은 조금 다른 삶을 삽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엘이와 놀아주며 등원 준비를 하고, 그대로 아엘이와 함께 등원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길로 출근을 합니다. 그렇게 하루 여차저차 살아내고 집에 돌아가 아엘이와 1-2시간 놀아주다 밤잠을 재워줍니다. 그리고 씻고 다음날 새벽에 아엘이와 놀아주기 위해 대충의 정비와 바로 잠자리에 듭니다.
물론 아엘이가 있어 너무 행복하고 살아낼 이유가 분명하지만, 어찌되었든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지루함이 어디까지 확장되어 나타나는가하면, 바로 우리의 안식일, 이 주일에도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습관처럼, 때로는 주일성수의 개념도 잊은채 살아간다는 거지요.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출애굽기에서 등장하는 안식일과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주일성수를 어떻게 이해하며 또 살아낼 것인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폐지가 아닌 완성이기에]
우선 창세기에서의 안식과 출애굽기에서의 안식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반복’입니다. 창조는 7일로 완성되었지만, 출애굽기에서의 안식은 7일이라는 날짜가 정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원어로 볼 때 또 다른 차이점이 발견되는데, 창세기에서 멈추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샤바트’가 명사형으로 바뀌어 등장하는데, 이렇게 표현된 이유는 창세기에서의 완벽한 완성이 죄로 인해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하나님이 더 이상 창조할 필요가 없도록 완벽하게 창조하셨지만, 무너져버린 안식을 회복하고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통해 ‘그 안식의 날을 지키라는’ 명령으로 바꾸어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십계명에서 나타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권면이나 권유가 아닙니다. 부탁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닌 아무 강력한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 무너진 안식이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옴으로 다시금 완성되지 않습니까? 그럼 여기서 한 번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완성된 안식일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왜요?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런데, 반대로 완성되었기에 우리는 이 날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왜요? 메시야가 오심으로 폐지 된 것이 아니라, 완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의 하나님을 기억하라]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주일에는 마트에서 음료 하나 사면 안된다.’ 이 말은 틀린 말입니까? 아니면 맞는 말입니까? 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주일에는 일 하면 안된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안식의 개념하에 주일에 일하지 않는 것, 또 온전히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맞지만, 마냥 맞다 틀리다 규정짓기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하여 이 문제를 ‘답 없음’ 이라 정의내리고 무책임하게 넘기기엔 이 또한 안되는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을 두고 이 두 질문에 답을 내리며, 또 우리가 주일을 맞이함에 결정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안식일의 행동함에 있어 기준을 둘 것은 그것이 완성하신 하나님의 뜻 앞에, 그 모든 것이 평강이 충만한 나라를 회복하기 위함인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음료를 사네 마네가 중요하다기 보다, 노동을 하냐 마냐가 중요하기보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 앞에 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함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주일에 일하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일이라 말한다면, 삼교대 근무를 하는 모든 직종은 잘못된 사람들이라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교대 근무를 하며 바삐 사는 이들로 하여금 ‘주일을 지키지 않으니 넌 잘못된 신앙관을 가졌어!’ 라고 책망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점점 신앙의 무뎌짐과 주를 떠나 살아가는 어리석은 모습이라면 잘못된 모습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려 노력하며, 주일의 의미를 간절히 지키고자 노력하는 자의 삶이라면, 주일에 노동을 한다한들 이들에게 ‘넌 주일을 안지켰으니, 지옥 갈꺼야!’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일은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성되었지만, 폐지 된 것이 아니기에 오늘날 우리가 끝까지 안식을 지켜 나아가는 것이며, 안식은 단순히 ‘노동금지’의 개념이 아닌 ‘자신의 뜻을 완성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안식, 이미와 아직]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래요. 주께서 완성했어요. 폐지가 아닌 완성을 했는데, 왜 굳이 우리가 감사하며 이 날을 기억해야 하는 겁니까? 완성이면, 분명 더 이상 창조할 것 없이, 더 이상 할 것 없는 완벽한 완성이 다시 이루어진 것일텐데, 왜 우리가 이 날을 감사하며, 일주일 중 이 주일을 지켜 나아가냐는 것입니다. 이왕 주일에 교회를 나온다면 그 이유라도 알면 참 좋지 않겠습니까?
이는 조금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이미와 아직’으로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미’ 라는 개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 입니까? 완벽하게 창조되어 다시는 없을 이 안식의 개념에 죄가 들어와 완벽함에 금이 갔고, 다시금 완벽함을 완성 시키고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재완성 시킴으로 말미암아 ‘이미’ 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아직’의 개념인데, 이는 여전히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제약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 관점에서 볼 때, 그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구속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어 종말 때 이루어질 사건이기에 ‘아직’ 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미’ 이루어주신 십자가의 완성된 사랑을 붙들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속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전히 우리가 구약에서의 개념, 완성되었으니 더 이상은 우리가 지키지 않아도 될 개념으로 이해하기엔 그건 여전히 ‘이미’의 개념만 이해하며 ‘아직’을 바라보지 못하는 자의 삶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인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오늘날의 예배의 필요성을 알지 못하고 그저 예배를 예배라는 작은 개념 안에서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모두 성취된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삶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율법의 뜻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지켜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주일을 통해, 최소 이 하루만큼은 우리가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해 반드시 지켜야 함에 마땅한 날 아니겠습니까?
[결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주일성수’의 개념이 너무나 약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저도 이 주일성수에 있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목회자이지만서도, 오늘날 저 역시 시대의 흐름과 분위기에 잡아먹혀 안됨을 안된다 말하는 용기가 사라졌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분위기와 흐름을 보면, 예전에는 주일에 교회에 모여 모든 시간을 보내며 교제와 말씀교육으로 시간을 보내던 모습이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강조의 목소리도 없으며, 그러다보니 주일성수를 굳이 하지 않아도 전혀 관계 없다 생각하는 모습도 보여집니다. 뿐만 아니라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며 죄책감 없는 모습 속에 우리가 갇혀 있기도 합니다. 또는 주일성수를 ‘예배참석’이라는 축소된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2주간 나눈 개념에 의하면 방금 거론된 모든 것들이 결코 올바른 예배가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안식을 회복하기 위해서 힘쓰고 애써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주일을 지켜야 하는 것이 옳다면, 주일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자, 주의 날을 내 입맛에 맞추어 해석하기에 죄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설교를 준비하고 나누는 것은 목회자들 사이에 암묵적인 금지마냥 퍼져나옵니다. 왜냐하면, 이를 또 잘못 오해하여 ‘주일성수 안하면 죄, 나와서도 참석만 하는 개념이라면 또 그것도 죄, 그럼 이 자리에 있는 나는 죄인, 왜 여기 있지?’ 오해와 착각의 늪에 빠져 결국 교회를 떠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우리를 위해 이 땅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생명을 허락하셨는데,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회복하기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이 마땅함 아니겠습니까?
바라옵기로는 2주간의 우리의 예배가 불편함의 영이 아닌, 하나님의 손길이 저와 여러분들 마음 가운데 임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함께 오늘의 이 주일을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Ⅰ 날마다 주일을 사모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Ⅱ 매순간 돌아오는 주일에, 감사와 소망으로 준비하고 나아오는 예배자 되게 하소서
[찬양 후 기도제목]
Ⅲ 함께 만들어가는 예배로써, 건강한 예배를 가꾸어 가는 청년부 되게 하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 충만하심이
다시금 돌아오는 주일을 기쁨으로 사모하며 나아가겠노라 다짐한 자들과
예배에 진정한 의미를 알아 목숨 다해 지키겠노라 결단한 자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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