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_01:35-01:39_주님과 함께 지내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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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5–39 NKRV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더 많은 은혜와 더 큰 위로와 사랑과 평강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ntro

언뜻 보는 것과 붙잡혀 보는 것
우리는 그냥 볼 때도 있고, 두 눈으로 똑바로 살펴볼 때가 있습니다.
왠만한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만, 이사를 가려는 사람은 부동산 앞유리에 써붙인 매매전제월세 가격을 두 눈으로 똑바로 살펴봅니다.
어지간하면 그냥 무심코 지나가지만, 이빨이 아픈 사람은 성신여대역 사거리에 치과가 무지하게 많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똑바로 살펴봅니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만 보게 되는 눈버릇이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잘 안보입니다.
주님이 필요한 사람이 주님이 보입니다. 주님이 덜필요하면 덜 보이고, 안필요하면 안보입니다. 눈버릇이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와서 보라는 말씀은, 이사가는 사람이 부동산 가격을 봇듯이, 유심히 두 눈으로 자세히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와서 보라는 말씀은, 치통이 있는 사람이 치과를 찾아보듯이, 주님을 찾아 함께 지내보자는 말씀입니다.

point

예수님께 붙잡히라는 뜻입니다. 두 사람이 예수님께 붙잡혔습니다.

reason

요한복음 1:37 NKRV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두 제자는 사도요한과 사도안드레입니다. 두 사람은 원래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세례요한에게 수도 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또한 당대 유명한 성경선생님을 통해 성경과 율법도 다양하게 배웠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고, 구원과 영생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깨닫고 사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곧 예수님께 붙잡혀 버렸습니다.
예수님께 붙잡힌다는 것이 다만 사람들이 보기에 종교에 빠진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누가보기에도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이 지내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함께 여행가고 싶은 사람. 함께 밥먹고 싶은 사람.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 같이 놀고 싶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소통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공감하고 배려하는 사람과 같이 지내고 싶습니다. 이야기가 통하고 관심사가 연결되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것은 몰라도 분명 본인 스스로가 저력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본인 하나 챙기기도 급급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침범하도록 마음의 여백을 내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와서 보라고 하시면서 보여주신 것은 누구와도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저력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평강이 어떻게 오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밥먹고, 같이 여행다니고, 같이 공부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시는 과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신 그 시간들, 그 과정들 전체가 구원의 길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성도들은 각 사람의 인생길 전체가 구원의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구원의 길로 만드십니다. 한 사람도 같은 내용이 없습니다. 두 제자가 동시에 주님께 붙잡혔지만, 완전히 다른 인생길로 각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생의 첫 단추는 예수님께 붙잡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성경을 배워야합니다.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기도를 하면서 응답을 경험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면서 말씀의 위력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체험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실제로 실행 해보고 자기 몸과 자기 시간 속에서 직접 체득하면서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 때를 지내고 어느 정도 기본기가 되었으면, 자신이 습득한 진리들과 경험을 토대로, 본인이 직접 주님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주님을 응시하며 본인의 실력을 십분 발휘해서 그 분에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1:1로 마주보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알고 싶습니다. 영원히 무한한 분이신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있습니다. 저를 가르쳐주십시오. 저와 함께 살아주십시오.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 저를 새롭게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열어젖히고, 진심으로 주님을 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허심탄회하게 찾지 않는 한 그 분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거듭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으로 진지하게 원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영생을 체험하며 지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5:6–8 NKRV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도 바울은, 길을 걷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눈에 비늘같은 것이 벗겨지고나서야 주님이 누구신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붙잡혔습니다. 영생을 살아가면서 본인의 남겨진 삶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주님께 소상히 배우며 체득했습니다.
시편 27:8 NKRV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예레미야애가 3:25 NKRV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두 제자인 사도요한과 안드레는 예수님을 보자, 지금까지 자신을 가르쳐주신 세례요한을 떠나, 직접 그분께 다가섰습니다.
당대 세례요한이 최고의 훌륭한 스승이었던 것처럼, 오늘 날도 굉장한 가르침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티브이나 유튜브로 유익하고 재미있는 설교를 듣는 것으로 쉽게 만족합니다. 좋은 책들을 읽거나, 지난 날의 신앙추억을 즐거워하며 지내는 것으로도 왠만해서는 만족입니다. 분명 훌륭한 자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많이 받은 분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직접 주님께로 나서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대범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38 NKRV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선생님 어디서 머물고 계십니까. 두 제자의 간청은 대범했습니다.
예수님 시간을 좀 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수님 고견을 좀 듣고 싶은데 가르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예수님 저희들의 형편이 어려운데 기적이나, 어떤 특별한 은혜를 좀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다양하게 요청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제자는 어디에 머물고 계시는 지를 물었습니다. 다른 것보다 예수님과 어울리고 싶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사귀어 알고싶다는 의미입니다.
두 제자의 대범한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9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부담없이 오라고 하십니다. 같이 지내보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가려서 사귀지를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이든 주님은 친구가 되십니다. 주님께 헌신된 훌륭한 사도부터, 평생 범행만 저지른 십자가 우편의 날강도에게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인간관계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물으실 것입니다. 이 땅의 인생을 살면서 좋든 싫든 운명적으로 엮어진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까지 친구가 될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십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좋든 싫든 내 시간속에서 엮이는 사람들에게는 있는 실력껏 친구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영생의 길이 그 실천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정말 기적이 필요하고, 하늘의 능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내 자신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마당에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려면, 왠만큼 커다란 마음의 여백이 있지 않고서는 굉장한 일입니다. 산 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면 살았지, 사람과 뒤엉킨다는 것은 무척이나 에너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일을 이루셨고, 그 일을 하라고 성도를 부르십니다.
주님과 함께 지내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을 친구로 사귀십시오. 자식을 친구로 사귀십시오. 나랑 전혀 맞지 않는 그 사람과 친구가 되려고 하십시오. 영생의 길이 그 안에 있습니다.

example

어느 날 돈 좀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주시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유했지만, 부도덕한 방법으로 재산을 끌어모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습니다. 오늘 날이야 도덕이든 부도덕이든 법망만 잘 피하면 장땡인지 몰라도, 그 당시에는 부자라 할지라도 과정이 합당치않으면 사람이하로 취급했습니다.
어쨌든 그 사람은 왠만큼 가져보니 인생이 별 것 없다고 여겼나 봅니다. 이 세상에는 없는 하늘의 영생을 주겠다고 외치는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람 마음에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길을 지나가실 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주님을 에워싸니까, 이 사람이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옷감이 고급스러운 옷을 입었고, 패션을 완성한다는 신발을 신었지만, 굳이 나무를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 위에서 주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즉시, 삭개오는 예수님께 붙잡혔습니다.
시편 9:10 NKRV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삭개오가 어떤 사람이지 아셨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을 찾아 나서는 사람은 그 결단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받습니다.
시편 34:4 (NKRV)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주님과 함께 지내는 성도는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주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죄책감에서 건져주시고, 돈문제, 욕구의 문제, 관계의 문제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는 늘 새로운 기회가 있습니다.

example

삭개오와는 또 다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응시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유하면서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주님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나무를 오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홍해가 갈라지듯이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이 사람는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인심도 좋기로 유명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존경받는 젊은부자였습니다. 이 젊은이는 워낙 진행하는 사업이 많고, 하루가 바쁜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마태복음 19:16 NKRV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주님도 바쁘시고, 나도 바쁘니까 핵심용건만 간단히 하자는 쿨한 젊은이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만 알려주면, 그것을 할 것이고, 더이상 자질구레한 인생의 결핍들로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어조였습니다.
어쨋든 젊은 부자로써 진지하고 참다운 질문을 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에는 너무 분주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일도 해야하고, 저 사업도 진행시켜야 하는데, 영생도 얻어야 했습니다. 결국 주님과 코 앞에서 마주하며 대화를 했지만 영생은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문제에 답을 주시는 분을 넘어섭니다. 그 분과 함께 지내야지만 영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저 나무에 올라가면 주님을 더 가까이 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요한과 안드레는 주님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물어 봤습니다.
마태는 주님 오늘 밤 저희 집에서 주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요청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전부 영생을 얻었습니다. 젊은 부자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바쁜 부자 청년은 의사의 처방을 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의사를 원했습니다.
청년부자는 기가막힌 가르침을 원했지만, 영생을 얻은 사람들은 선생님과 함께 있으려고 했습니다. 가르침 그 이상을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영생은 주님이 내안에 우리가 모두 주님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point again

이 세상에 속한 일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옛날부터 있던 일이고, 사람들이 반복하는 일들을 나도 그저 할 뿐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 분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인생을 만드신 분이, 의미없이 반복되는 것같은 내 인생의 수레바퀴에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뚫고 나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기적이 일어나서 우리의 현실이 좋아진다면, 우리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몇 주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문제와 현실을 또 다시 당면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붙잡혀야 합니다. 기적보다 더 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나의 시선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늘 지내왔던 내 주위에 있는 환경이 새삼스럽게 보이기 시작해야 합니다.
빨리 깨달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는 내가 지금 여기 살아가는 것이 당신 덕분이라는 진리입니다. 지금 나의 나 된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은혜와 보살핌이었음을 아는 것입니다. 당신 없이는 지금의 내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뭇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영생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야 뭇사람과 친구가 될 마음의여지가 생깁니다.
이런저런 버거운 현실의 사건들로 그 마음이 흔들리고 왈칵 엎질러진다고 할지라도, 다시 스스로 일으켜야 하는 영생의 마음은,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얻어 살고 있다는 진리입니다. 주님께 붙잡히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생이란,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죽으시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생명이라면,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일리는 없습니다. 달라도 뭔가 다른 아주 굉장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찾으면 만날 수 있습니다. 붙잡힐 수 있습니다. 붙잡히면 그 배에서 생명의 말씀이 봇물터지듯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주님께 사랑 많이 받으셔서 몸된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서 부터 세워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이 녹록치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파란만장합니다. 한 숨쉴 날이 많고, 다 그만두고 싶은 시간들이 엄습하지만, 그 때마다 주시는 은혜를 따라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 많이 받아서 마음의 여백이 날마다 커가게 하시고, 선을 넘는 사람들, 마음을 치고 들어와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점점 친구가 되어가는 신앙의 실력이 자라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헌금기도
사람의 생사화복과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경찰선교회 성도님들과 찬양하며 예배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인생의 시간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흠향하여 주시고, 매일 예비하신 은혜를 날마다 받아 누리며 살아가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드려진 헌신과 예물이 생명이 살아나고 성장하는 곳에 쓰이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이 되기를 자처하는 축복받은 성도로 살아가도록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주님과 함께 평생을 지내기로 기대하고 소원하는 성도들 머리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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