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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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50 “갈보리 산 위에”
요한복음 6:5–15 NKRV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하심
유월절이 다가오면서 예수님은 산에 오르십니다.
예수님의 병 고치는 은사를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는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중에는 정말 예수님을 순수하게 믿음으로 따르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 중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위해서 따르는 계산적인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그 수많은 무리들이 따르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요한복음 6:5 (NKRV)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빌립에게 어디서 떡을 구하고,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것인지 묻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이 따르니까 음식이 부족해서 난감해서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요한복음 6:6 (NKRV)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지 아셨나봅니다.
그래서 한번 빌립을 시험해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실지 아시면서 왜 시험을 하시는 걸까요?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서겠죠.
무언가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 깨달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는 상황에서 빌립에게 그리고 다른 제자들에게도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이죠.
빌립은 대답합니다.
요한복음 6:7 NKRV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먹을 것이 부족하니까 각 사람으로부터 떡을 조금씩 받아서 나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의 해결법은 상당히 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빌립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대답했습니다.
빌립은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먹이기엔 불가능했죠.
그것이 바로 빌립의 계산과 판단이었습니다.
2. 안드레의 대답
이번엔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요한복음 6:9 NKRV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한 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묻습니다.
이 적은 양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지 묻는 것이죠.
빌립과 안드레의 태도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빌립과 안드레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판단하는거죠.
가능성을 판단해서 예수님께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려분 이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느껴지십니까?
예수님 앞에서 가능성을 논하고 그것으로 예수님께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가요?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 가지고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산해서 예수님께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이런겁니다.
조금 유치한 예시겠지만, 예를 들면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 아기가 먹고싶은 음식이 있는거에요.
그런데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아기인데 혼자 생각을 하더니 엄마한테 말하는 거에요.
“엄마 내가 사과쥬스가 먹고싶어요. 그런데 엄마는 사과쥬스를 만들 사과도 없죠. 우리 집에는 사과쥬스 만드는 기계도 없고요. 그러니까 저는 못먹을거에요.”
그러면 엄마가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하하하하! 슈퍼에 사과쥬스 사러 가자!”
엄마의 입장에선 아기가 현실적으로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세상을 보고 있겠죠.
그러니 당연히 아기의 생각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요.
예수님과 빌립 안드레의 입장이 지금 이와 유사합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모든 것이 가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ㄴ디ㅏ.
그런데 빌립과 안드레는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산하여 불가능한 것을 말하고 있는거죠.
이때 예수님은 무엇을 행하십니까?
우리가 잘 알고있듯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배부르게 먹이시고, 남은 조각만 해도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죠.
적용)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계산으로 정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꼭 사과주스 사는 아기처럼 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어떤 느낌이실까요?
참 우스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있으시겠죠?
하나님의 능력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고도 12 바구니가 남는 능력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한계를 설정하고 기도하는 것은 진정한 기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기도란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도 기도해야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기도해야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무언가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교만의 일부분입니다.
교만이란 무엇인가요? 내가 잘났다고 잘난척하는 것이 교만인가요?
물론 교만의 모습 중에 하나일 수 있지만 중요한 교만의 의미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것이 일부라도 있으면 그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는다면 온전히 맡길 줄도 알아야죠.
우리의 입으로는 하나님께서 불가능하신 것이 없다고 잔뜩 고백해놓고는 기도할 때 불가능해보이는 것들은 맡기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리고 옛 한자성어처럼 언행불일치가 되는거죠.
말로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고 고백하면서 기도할 때는 불가능한 것 맡기지 못하는거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을 완벽히 통제하려는 것은 아주 큰 욕심입니다.
진정으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보리떡과 물고기를 예수님께 맡겼던 어린 아이처럼 우리의 모든 삶을 다 맡기는 겁니다.
그때 바로 예수님의 채우심을 비로소 우리가 볼 수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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