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습관

민수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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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습관

[서론]
‘습관이 영성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반복하는 습관이 얼마나 우리 영성에 중요한지 깨달음을 줍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정신이 10퍼센트의 의식과 90퍼센트의 무의식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겉으로 드러난 10퍼센트의 의식만 바꿔서는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는 90퍼센트의 무의식을 바꾸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과 그 사람이 진짜 원하는 것은 다를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의 간격을 좁혀주는 것이 바로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무의식은 하나님 말고 다른 세상 것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삶이 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문화들이 우리의 무의식속 깊은 곳에 침투하여 습관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바꿀수 있을까요?
그것을 바꿀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습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두드러진 습관, 반복되는 삶의 일상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수 있을까요?
[본론]
민수기는 크게 1장과 26장을 기준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1장과 26장에 ‘민수기’라는 의미의 이스라엘 백성들 인구조사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는 어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단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첫번째 인구조사가 광야생활을 위한 준비였다면, 두번째 인구조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인구조사와 함께 마지막 세대였던 모세가 죽었고, 여호수아가 새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옛 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고 새로운 세대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광야에서의 훈련이 끝나고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땅에서는 새로운 삶의 패턴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삶의 패턴을 바꾸는 일입니다.
일상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도 시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땅에서 필요한 새로운 삶의 패턴이 바로 예배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복주시기 원하시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본질적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복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시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상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구약에서는 그 예배가 제사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정해진 절기에 따라서, 너희는 내가 받을 제물, 내가 먹을 음식, 곧 나에게 불살라 바쳐서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의 희생제사를 어김없이 바치도록 하여라.
한마디로 말하면 주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정해진 절기에 따라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제사를 내 마음에 내키는대로 드리고 싶을 때 드리는게 아닙니다.
주님이 정하신 절기에 따라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주님은 그 절기를 매일, 매주, 매달, 매년으로 정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세가지 매일, 매주, 매달 드려야하는 제사가 등장합니다.
3-8절을 보시면 첫번째 등장하는 제사는 아침, 저녁에 드리는 매일의 제사입니다.
4절 보시면 숫양 한마리를 아침에 바치고, 다른 한마리는 저녁에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짐승을 바칠때 곡식제물도 함께 바쳐야 합니다.
부어드리는 제물, 즉 포도주도 함께 부어드려야 합니다.
9-10절을 보시면 두번째 등장하는 제사는 안식일에 드리는 한 주의 제사입니다.
매일마다 제사를 드리고, 더하여 안식일에는 또 한번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때는 곡식을 2배로 드려야만 합니다.
11-15절을 보시면 세번째 등장하는 제사는 매달 초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11절입니다.
너희의 달력으로 매달 초하루마다, 너희는 나 주에게 번제를 바쳐라.
초하루니까 매달 1일에는 제사를 또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더 많은 제물과 곡식을 바쳐야만 합니다.
그 다음 한장 더 넘기면 매년 어떤 날들을 절기로 삼아 또 지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주님은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제사를 드릴 날짜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 때에 맞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그럼 이렇게 절기를 정해놓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보통 우리가 명절이나 기념일을 정해놓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짐작할수 있습니다.
그 날을 기념하여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두가지를 기억하고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을 한번 살펴볼까요?
매일마다 아침, 저녁으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 그 시간에 맞춰 모든 스케줄을 조정해야만 합니다.
한주, 한달, 일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기를 맞춰 모든 삶의 패턴들을 조정해야만 합니다.
친구랑 놀때도 아침 저녁 제사시간을 피해야 합니다.
뭔가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을 할 때에도 주일과 절기만큼은 반드시 피해서 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삶의 조정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수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드리고 있는 이 예배로 알수 있습니다.
주일예배를 위해 모든 스케줄을 조정한다면 그것이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토요일에도 주일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 밤늦게까지 친구만나지 않는 것도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기 때문입니다.
아침 묵상 시간을 위해 저녁에 늦게 자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기준으로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을 조정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습관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의 시간의 주인이 되지 않으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내 자신이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좋을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시간이 우상이 되어 시간의 노예로 변해버립니다.
바쁘고 쫓기는 삶이 우리의 삶을 망가뜨려 버립니다.
아니면 세상 시간에 묶여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노예생활을 할때 시간의 주인은 바로 바로였습니다.
바로가 모든 시간을 정해놓고 그들은 그 시간에 맞춰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내 시간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세상 바로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노예로 전락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나라없이 살아온 수천년의 세월동안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킬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안식일을 지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게 아니고, 안식일이 자신들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지키는 게 아니라 예배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안식일은 주일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주일예배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될때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시간의 주인,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날마다 드리는 예배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제사와 같습니다.
내가 묵상을 5분을 하든 10분을 하든, 30분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묵상이라는 행위 자체가 바로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예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날마다 하는 삶의 습관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나의 영성을 형성합니다.
둘째, 시간의 주인뿐만 아니라 물질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2절에 ‘내가 받을 제물’, ‘내가 먹을 음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백성들이 바치는 제물이 바로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기보면 세가지 제사 모두 짐승제물뿐만 아니라 곡식제물, 부어드리는 포도주 제물이 등장합니다.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얻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제물들을 드리며 이 땅의 모든 소산물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짐승이 새끼를 많이 낳는 것도 주님의 은혜이고, 농작물이 잘 자라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도 주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기억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우리 인간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천수답이라고 불립니다.
이 말은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농부가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다보니 그 땅에는 일찍이 비를 내리는 신들이 유명했습니다.
그 신들이 바로 가나안 땅의 우상들인 바알신, 아세라 신입니다.
가나안 민족들이 이런 신들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 정착해 살다보면 그런 신들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은데, 그 신들은 우상으로 만들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비만 안오면 그 우상들이 눈에 밟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 이 땅의 주인도, 곡식의 주인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며 헌금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행위가 헌금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건강때문에 돈을 벌수 있고, 주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때문에 돈을 벌수 있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바알신, 아세라신이 돈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것에 대항하는 행위가 바로 헌금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서 헌금을 빠뜨려선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매번 반복하는 우리의 삶의 습관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나의 영성을 형성합니다.
이처럼 제사는 절기에 따라 드려 하나님이 내 시간과 내 물질의 주인이심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 제사가 번제라는 사실입니다.
2절에 보시면 나에게 불살라 바쳐서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의 희생제사라고 말합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법이 바로 번제입니다.
우리가 레위기에서 본 것처럼 제사드리는 다섯가지 제사법,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이렇게 다섯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매주, 매달 드리는 제사방법에 모두 번제가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번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길래 그러시는 것일까요?
번제는 짐승의 모든 것을 태워드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내장까지 다 태워 조금이라도 남겨서는 안됩니다.
이 번제에 사용되는 짐승이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대신해 이 짐승을 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번제란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드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 전체가 주님께 바쳐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과 삶 전체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의식적 행위로만 여길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이, 모든 말과 행동, 모든 일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이처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서 우리 삶 전체가 주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번제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묵상할때만 예배가 아니고, 주일날 예배할때만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의 오늘이라는 하루가 바로 예배입니다.
독실한 유대인들은 이런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찬양을 받으소서, 하셈 우리의 하나님, 우주의 왕이시여, 지혜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안에 많은 구멍과 빈틈을 만드신 분, 주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명백하고 잘 알려져 있듯 만약 이것 중 하나라도 파열되거나 막힌다면 누구도 주님 앞에 서거나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찬양을 받으소서, 하셈, 모든 육체를 치유하시고 놀랍게 행하시는 분.
무엇을 한 후 한 기도일까요?
바로 화장실 다녀오고 난 후의 기도문입니다.
잘 쌀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똥싸는 것까지도 나를 주님께 드린다면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다이어리를 보십시오.
매일, 매주, 매달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가장 먼저 기준을 잡아야할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중요한 일들을 먼저 기록해놓듯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다이어리에는 먼저 예배가 기록되어야 합니다.
매일, 매주, 매달, 매년 드리는 예배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의 삶의 일상이 예배였듯,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일상도 예배입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습관이 되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줄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이 누구든지 우리는 그 예배하는 대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날마다 예배하는 삶을 통해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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