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가의 삶
작고 평범하지만 찬란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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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views1. 인생은 고난이다 2. 에스더 이야기 3. 유대 민족을 향한 음모 4. 두가지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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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난이다
인생은 고난이다
지난 주를 살아가면서 나는 작고 평범하지만 위대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진다! 라고 스스로에게 선포했나요?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그리고 그 소명이 이 땅에 반드시 드러나기를 소망해요.
(쉬고)
여러분 인생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인생은 OO이다. 이렇게 표현 할 수 있는 사람 있을까요?
저는 사실 인생은 고난이다. 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삶과 고난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죠.
그런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왜 우리의 인생은 고난과 선택의 연속일까?
좀 편하게 걱정없이 살고 싶은데, 왜 늘 선택해야 하고 어려움도 겪어야 하는 것일까?
(쉬고)
우리의 삶이 고난과 선택의 연속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공급이 원할하지 못하게 된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에게 고난은 현실이고, 선택은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세상이 타락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 역시 똑같은, 동일한 죄와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에요.
죄는 온 세상에 퍼져있는 질병과도 같거든요. 우리는 그 질병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어요.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죄 역시 우리에게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영향을 주고 있죠.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그러한 죄의 영향 속에 살아가는 사람 혹은 그러한 뉴스들을 많이 접할 수 있죠.
가정이 깨어진다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어그러진다거나 혹은 교회가 분열되기도 하는 등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죄의 결과들이 나타나죠.
왜냐하면 지금 세상에 권세를 잡은 그 마귀는 우리의 죄된 본성을 계속해서 건들고 그 생각을 증폭시키는 것을 즐겨하기 때문이에요.
못된 사악한 생각을 하게 만들고 계획하도록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해도 끊임없이 나쁜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이죠. 그러한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면, 관계가 깨지겠죠.
인생은 고난을 피할 수 없어요.
그러다보니 우리는 늘 이 고난 혹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해요. 그러다보니 때론 삶의 목적이 지금 이 상황을 견디고 벗어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때가 있어요.
여러분 죄인인 우리가 타락한 세상에서 고귀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고난과 상황 앞에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인간은 약하고 살아갈 날은 짧고 인생은 고통과 같은 여러 상황들로 가득해요.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아둥바둥하면서 벗어나려고만 노력한다거나 그 상황을 외면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거에요.
역경과 고통을 피하려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부딪치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해요.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목적은 고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우리 인생의 목적은 그 것과 부딪치고 그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얻고 인내하면서 승리를 가져오는데 있거든요.
피하고 견디고 벗어나는 것에 급급한 삶이 아니라, 내가 이 고난과 선택 그리고 상황을 견디고 극복해낸 그 승리의 멘탈리티를 갖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거에요.
승리의 멘탈리티는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요.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고난과 상황 그리고 선택을 마주하셨고 피하지 않으셨고 결국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는 궁극의 승리 멘탈리티를 보여주셨고 우리에게 그것을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역경과 고통을 피하려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부딪쳐서 교훈을 찾아내고 인내하며 승리 멘탈리티를 되찾는 것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 고난이라는 단어를 내 인생의 목록에서 지금보다 아래 칸으로, 저 밑으로 끌어내릴 수 있어요.
에스더 이야기
에스더 이야기
오늘 함께 나눌 에스더의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 이야기와 같아요. 에스더는 우리에게 인생은 고난이지만,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요.
아름다운 외모와 선한 성품을 갖춘 여기에 있는 모든 자매들(?)처럼 품위가 있었던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어요.
유대 민족 전체의 경사가 되었어요.
특히 전쟁포로로 끌려온 후 고아가 된 에스더를 양육하던 모르드개가 진짜 기뻐했어요. 그리고 에스더 역시 놀라워하면서 주어진 축복에 감사했어요.
좋아서 흥분해서 실수하지 않고, 그녀답게 차분하게 감사함을 하나님께 고백해요.
그런데 그녀가 왕후가 되어 인생의 최고점에 다다랐을 때, 악. 죄가 개입하기 시작해요. 그녀의 모든 행복을 뒤흔들기 시작해요. 성경을 보면 늘 어려움이 있어요. 꼭 행복하면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왕후가 되어 정말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또 연회가 열리고 있던 그 때에 왕을 죽이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요.
빅단과 데레스라는 두 내시가 왕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짜고 있는데, 역사적 기록들을 살펴보니까 암살 계획을 세울만큼 큰 원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해요.
자잘한 것들이 쌓였고 그것이 원망하는 마음으로, 그 원망이 분노로, 분노가 살인을 하고자 하는 것으로 커지게 된 사건이라고 하더라구요.
이 두 내시는 아무도 없을 줄 알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곳에 모르드개가 있었던 거에요. 모르드개는 이 사실을 에스더에게 말했고, 에스더를 통해 왕이 알게 되었어요.
당시에 왕의 생명이 위협을 받을 때에는 즉시 처형이었어요.
바사제국의 사형 방법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방법이었어요.
사람을 말뚝에 박아 죽였어요. 말뚝에 꿰어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도록 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걸어두었어요.
왕을 살해하려던 끔찍한 계획이 주동자들의 죽음으로 인해 사라졌어요. 모든 것이 해결 되었을까요?
아니에요. 그냥 하나의 악한 계획이 사라졌을 뿐, 그와 유사한 악함은 계속해서 남아있어요.
이 두 내시의 모습은 사실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해요.
우리도 그들처럼 탐심과 정욕 그리고 분노 등의 감정이 있거든요.
작은 것에 서운함을 느끼고 그러다가 상대를 정말 때리거나 죽이고 싶다는 감정을 가질 수도 있는 존재가 우리 인간이거든요.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우리 역시 이 두 내시처럼 마음에 악한 마음과 미움, 시기, 정욕 등을 품고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죽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거에요.
그렇게 스스로를 파괴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에 우리는 매일 감사하면서 살아야 해요.
(쉬고)
유대 민족을 향한 음모
유대 민족을 향한 음모
여기까지가 2장의 이야기에요. 그리고 3장으로 넘어오는데, 지난 주와 똑같이 시작하고 있어요.
“그 후에" 왕의 살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이죠.
여기를 보면 갑자기 하만이라는 사람이 등장을 해요.
왕의 생명을 구한 것은 모르드개인데, 높은 지위에 올라간 것은 하만이에요. 이걸 보면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을 넘어서 굉장히 부당하기도 한 것 같아요.
우리의 인생도 그렇죠.
열심히 일했으니까 당연히 승진할 거라 예상했는데, 다른 사람이 승진을 하죠.
교회 열심히 다녔으니까 대학교도 잘 갈 것 같고, 뭐든 잘 될 것 같은데 안되는게 더 많아요.
진짜 노력한만큼만이라도 손에 쥐고 싶은데, 그 보다 못한 결과를 손에 쥘 때가 많은 것이 우리들이에요.
인생이 여러분 생각대로 흘러가던가요?
인생은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훨씬 많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왕의 목숨을 살려준 모르드개가 아닌 하만이 높은 지위에 올라버렸어요. 하만은 자신의 지위를 악용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가 길을 갈 때 모두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데, 모르드개만 절을 하지 않았어요.
자신의 공로를 빼앗아갔기 때문에 화가나서 무릎을 꿇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있어 절하는 행위는 곧 우상 숭배였어요.
하만에게 절하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 신앙에 위배되는 행위였다는 것이죠.
하만이 화가 난 것을 안 다른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왜 절하지 않느냐?”라고 물어요.
그러자 모르드개는 “나는 유대인입니다. 땅에 있는 것에 절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해요.
여기에서 하만의 분노가 폭발해요.
자신을 화나게 한 대상 모르드개를 넘어서 그의 민족 전체를 다 말살 시키기로 마음을 먹어요.
여러분 이거 전개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절을 하지 않아서 화가 날 수도 있어요. 절을 하지 않은 이유를 듣고 더 빡이 칠 수 있어요. 그럼 그 대상인 모르드개에게 복수를 해야 하잖아요. 그게 일반적이잖아요.
그런데 하만은 지금 모르드개 한 사람이 아니라, 그 민족 전체를 다 죽이려는 계획을 짜기 시작해요.
이상하지 않아요? 너무 급발진 하는 것 같지 않아요?
왜 하만은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요.
이것은 우리와 일본의 관계를 생각하면 돼요.
일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우리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또 여러 어려움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하면 나도 모르게 흥분하거나 단호해질 때가 있죠.
일본에게 무엇이든 져서는 안된다. 라는 그러한 인식이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박혀 있는 것처럼, 하만도 유대인들을 향해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있었어요.
1절을 볼까요? 하만이 어디 사람이라고 되어있죠? 아각 사람.
혹시 아각이 어떤 민족인지 알고 있어요?
아각은 이스라엘을 극도로 증오하는 민족이에요.
증오라는 것은 후천적으로 습득 되는 것이죠. 마치 우리가 일본하면 “에?”하면서 보는 것처럼 후천적으로 증오는 습득 되는 것이죠.
사무엘상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이란 한판 붙었던 적이 있어요.
사무엘은 사울에게 오랜 원수였던 아말렉 족속을 모두 죽이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아말렉은 막 출애굽해서 정신없던 이스라엘의 후미를 공격해서 힘없는 사람들을 학살했던 민족이었거든요.
하나님은 그러한 아말렉을 모두 죽이기를 원하셨는데, 사울 왕이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좋은 짐승들과 아각 왕을 살려두었어요.
사무엘이 도대체 왜 살렸느냐.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는데, 사울은 온갖 변명을 하면서 핑계를 댔어요.
하지만 결국 그는 불순종을 인정하고 아각 왕을 끌어내 찍어 쪼개어 죽였어요.
하만은 그 아각 왕의 후손이에요.
아주 옛 과거이긴 하지만, 자신의 조상들을 죽였던 민족. 그들에게 복수해야 한다. 그들에겐 어떤 것도 져서는 안된다라는 그 것이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죠.
가뜩이나 유대인이 그냥 싫은데, 자신에게 절하지 않은 모르드개가 하필이면 유대인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 참에 꼬투리를 잡아서 전체를 다 죽여야겠다 마음 먹은 거에요.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었으니까요.
두 내시가 작은 것부터 원망을 하다 분노가 커져 왕을 죽이려 했던 것처럼,
하만은 들어왔던 후천적으로 습득된 증오에 빠져 모르드개를 넘어 그 민족 전체를 다 없애버리려고 하는 과감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이죠.
하만이 마음을 먹고 나서부터 이 일이 신속하게 진행되어요.
7절을 보면 제비를 뽑아요. 우리 7절 읽어볼까요?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이 당시 사람들은 모든 날짜마다 제비를 뽑았어요. 그리고 좋은 숫자가 나오면 그 날을 행운의 날이다! 라고 지정했어요.
여기에서 질문! 맞추면 커피 쿠폰 쏩니다.
이들이 말하는 좋은 숫자는 무엇일까요?
어떤 숫자가 나와야 행운의 날이다! 라고 했을까요?
(쉬고)
정답은 뽑는 사람 마음이에요.
뽑는 사람이 숫자를 보고 “오 이거 느낌 괜찮은데?”하면 그 날이 행운의 날이에요.
그 느낌을 찾기 위해 365일 내내 제비를 뽑았어요.
하만도 똑같이 자신의 느낌에 딱 오는 그 날을 위해 무수히 많은 제비를 뽑았고 그 결과 열두번째 달 아달월이 딱 뽑혔어요.
행운의 날을 확인한 그는 왕에게 찾아가서
“행운의 여신이 말합니다.”
“127도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왕의 법률을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들 혹은 민족들을 다 죽이시지요"
“이 것이 행운의 여신이 우리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 조서를 내려주시면 제가 은 일만 달란트를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해요.
은 1만 달란트는 지금으로 환산하면 375톤이에요.
하만이 이만한 은이 있었을까요?
없었어요.
자신의 개인재산 얼마란 유대인 재산 몰수 한 것을 더해 왕에게 주려고 계획을 짠거죠.
왕은 자신의 반지를 빼서 하만에게 전달해요.
이 때의 반지는 지금의 백지수표에요. 공식 문서에 이게 딱 찍히면 “무조건 따라야 해요"
도대체 왕은 왜 민족 말살 정책에 동의했을까요?
(쉬고)
왕이 듣기에 너무 좋은 법이었던거죠.
우리나라는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등 몇개 없잖아요.
페르시아는 127도나 있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왕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게 하는 이 법은 왕에게 있어 너무 기분 좋은 일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별 생각없이 사람에게 휘둘려서 일을 진행 시켰어요.
한 사람의 증오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사람에 휘둘린 것이죠.
우리도 조심해야 해요.
우리도 이 왕처럼 상황이나 사람에 휘둘려서 섣부르게 선택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도 똑같아져요.
우리에게도 짐승과 같은 본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본질적으로 악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래서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하다라고 늘 고백하며 기도 해야 해요.
(쉬고)
“전국 127도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라!” 는 조서가 선포되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해 마지막 12월에 자신들 모두가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거에요.
비참한 상태로, 죽음의 날을 세며 사는 유대인들을 보며 하만을 술을 마시며 기뻐하고 있어요.
하만 진짜 비열하고 못된 사람이죠. 그런데 그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정말 꼭 우리는 기억하며 조심해야 해요.
두가지 적용
두가지 적용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어요.
첫째, 우리는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할 때 방해하는 세력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들이 모르드개에게 물었어요
“왜 하만에게 절하지 않아? 그러다 너 죽어"
“나는 유대인입니다. 나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절할 수 없습니다.”
경건한 삶을 선택했어요.
자신에게 어떤 위협이 다가온다 해도 그것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경건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어요.
그리고 그에게 어려움이 찾아왔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 죽게 되는 말도 안되는 큰 어려움.
모르드개의 이 믿음이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해요.
세상 문화에 동조하지 않고 올바른 신념을 지니고 살아가려고 여러분이 마음 먹으면,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마음 먹으면 반드시 여러분을 흔드는 일들이 발생해요.
제가 직장을 다닐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주일 출근과 술 문화였어요.
있었던 부서가 일이 많았기도 했지만, 주일 출근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야근 수당도 주지 않으면서 주말에 왜 그렇게 일을 시키는 것인지 진짜 알 수 없을정도로 주일날 무조건 출근을 하는 문화였어요.
심지어 옆부서 팀장님이 일요일에 출근 못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나를 설득시켜라. 그럴 자신 없으면 무조건 출근해! 라고 하셨어요.
진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당시에 교회에서 2-3부 반주하고 청년부 찬양인도하고 리더였고 등등 하는 것이 많기도 했지만,
주일날 예배를 드리지 않고 일을 하러 간다는 것이 저에겐 정말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고민하다 팀장님에게 메일을 썼어요.
그리고 다음날 팀장님이 저를 소환하셨어요.
저는 솔직히 혼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팀장님께서 “너처럼 자신의 의견을 확고하게 말하는 놈 내가 20년만에 처음 봤다. 그리고 너 평소에 일하고 하는 것보니까 너는 일요일에 나오지 않아도 되겠다. 여기 있는 누구도 양휘석에게 일요일에 출근하라고 하지 마라" 라고 하셨어요.
맨날 야근하다 야근이 없는 날은 회식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저희 팀장님은 저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지만, 동료들과 다른 팀원들은 제가 술을 마시기를 원했어요. 그리고 팀장님 위에 있던 분들도 저에게 술을 권유했어요.
저의 신앙을 밝히며 마시지 않겠다고 했더니, 한 분께서 소주 한병을 까서 쭉 드시더니
“야 양휘석 난 장로야 짜샤"
“장로가 먹는데 청년이 안먹어도 되겠냐"
“내가 주님을 너에게 줄테니 주님 받아라!”라고 하시더라구요.
제가 먹었을까요?
안먹었죠. 마시지 않았더니 “고과에 반영하겠다. 너 정직원 시켜주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등등"의 이야기가 오고 갔으나 저는 마시지 않았어요.
세상 문화에 동조하지 않고 올바른 신념을 지니고 살아가려고 하니까 부딪치는 것도 많고, 안되는 것도 많고 제한되는 것도 참 많더라구요.
하지만 그 것들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고 들이 박았더니, 그 어려움은 더 이상 어려움이 아니더라구요.
굉장히 크고 무서워 보였는데, 한번 마주하니 생각만큼 무섭지 않더라구요.
둘째, 스스로를 절대화시키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라
하만은 직위가 높고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굉장히 교만해졌어요.
올바른 판단력을 갖지 못했어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오랫동안 증오해왔던 상대와 그 민족을 완전히 지워버려리는 진짜 악한 마음을 가졌어요.
악은 삶의 모든 영역에 깊은 영향을 미쳐요.
만약 여러분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생긴다거나 혹은 누군가를 향한 미운 마음이 생긴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해요.
원망은 미움과 분노로 이어지게 되거든요.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만을 기억해요.
부림절이라는 절기가 되면 에스더서를 낭독하는데, 그 때 하만의 이름이 등장해요.
인도자가 하만의 이름을 이야기하면 회중은 뭘하는 줄 아세요?
“그 이름을 완전히 지워버리소서!”
“경건치 못한 그의 이름이 영원히 멸망하게 하소서!”라고 외쳐요.
아이들은 작은 망치로 하만의 이름이 쓰인 돌과 나무 조각을 사정없이 막 두드려요.
원망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로 남게 되어요.
(쉬고)
말씀을 듣고 읽던 중에 갑자기 그 것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던 적 있으세요?
매번 듣고 보던 말씀이 가슴에 박힌다라고 느꼈던 적 있으세요?
여러분 사실 말씀은 매일 우리에게 박히고 있었어요. 우리의 모든 영역에 말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요.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이에요.
(쉬고)
우리에게 그 것을 깨달으라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거잖아요?
십자가를 통해 내가 갖고 있던 못된 악한 감정들을 다스리고, 상대를 용서하고 품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을 갖고 살아갈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어요.
스스로를 절대화시킨다는 말은 다른 말로 교만을 뜻해요.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함.
하나님이 아닌 내 힘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자신감을 넘어선 기만적 행위.
(쉬고)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건 스스로를 절대화시키며 살아왔기 때문일거에요.
말씀대로 살아가보려고 노력했는데 어려움이 닥쳤어요.
그 때 그 어려움을 말씀대로 이겨내지 않고 내 힘으로 이겨내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만이고 오만한 판단이라는 거에요.
(쉬고)
그리스도가 내 삶을 다스리도록 하고 있었나요?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로 여러분에게 필요한가요?
(쉬고)
제가 5월달에 여러분과 함께 에스더서를 살펴보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충분한 은혜를 베풀어주고 계시다는 것을 나누면서, 그 분의 은혜가 나에게 필요합니다. 라는 고백을 함께 하기를 바래서에요.
(쉬고)
여러분의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래요.
그 분이 나를 위해 움직이고 계심을 믿는 우리가 되기를 바래요.
이번 한주를 살아가며 내 삶에 어려움이 닥칠 때 내 힘으로 이겨내려 하지 말고, 5초 10초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구하세요"
그 기도가
나 스스로를 절대화시키는 교만의 자리에 나아가지 않을 것이고,
감정에 휩쓸려 섣부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줄거에요.
우리 곧 함께 부를 결단 찬양은 “내 안의 한계를 넘어"에요.
이번 한 주 이 찬양을 깊게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래요.
내 안의 한계를 우리가 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무엇인가를 해보려 하기 때문이에요.
내 스스로 나의 가능성에 제한을 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구한다면' ‘우리는 그 한계를 넘어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거에요.
(쉬고)
우리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고, 예측불가능 한 것은 변함없어요.
하지만 그 예측 불가능마저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한
우리의 인생은 고난이 아니라
그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교훈을 통해 인내의 승리를 경험하는 삶이 될거에요.
내 안의 한계를 넘어서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가득한 한주의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