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동기와 열심을 가졌다 할지라도

원포인트 설교(One point Preaching)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8 views

하나님의 주권, 순종

Notes
Transcript
사무엘하 6:1–11 NKRV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암송말씀
사무엘하 6:10 NKRV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암송말씀 영어
사무엘하 6:10 (NIV)
He was not willing to take the ark of the Lord to be with him in the City of David. Instead, he took it aside to the house of Obed-Edom the Gittite.
서론
-예화
-문제제기
지식 없는 열심 성경: 롬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두 나무꾼 친구가 산에 올라갔습니다. 경쟁적으로 나무를 찍어 장작을 만들어갑니다. 한사람은 유달리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나무를 찍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50분 일하고 10 분 쉬는 식으로 숨을 돌려 가면서 일했습니다. 어느덧 산을 내려갈 시간이 되어 두 사람은 각자 서로가 수고한 결과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셈일까요 ? 쉬어가면서 일한 친구가 더 많은 장작을 장만했더랍니다. 승부욕이 강한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투덜거렸습니다.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도 왜 자네 것이 더 많단 말인가 ? "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점잖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10 분씩 쉴 때마다 도끼 날을 갈았다네."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끼날 무디어 지는 줄도 모르고 덮어놓고 열심만 낸다고 되겠습니까? 아무리 바쁘다해도 경건의 시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성찰의 시간-은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자기 존재의 상실을 경계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을 항상 지니고 기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이 요구됩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를 잊지 말아야합니다. 서둘러야할 시간에도 경건이 먼저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식없는 열심은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합니다. 오늘도 경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지식을 가지고 열심을 품어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한 동기와 열심을 가졌다고 한다면 모든 것이 옳은 것일까요?
본문 연구
-본문설명
-본문의 진리
-본문에 나타난 교리
오늘 본문은 법궤의 운반과 웃사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앞장에서는 다윗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블레셋을 이스라엘 땅에서 완전히 축출함으로써 점차 정치적, 군사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확립해 나갑니다.
그리고 본장에서는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함으로 신정국가건설의 종교적 기틀을 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본문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안치하려한 다윗의 첫 시도가 무산되어 지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법궤는 언제 그것을 빼앗겼습니까? 엘리제사장 당시 아벡전투이후 블레셋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아스돗에서, 가드로, 에그론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7개월후 이스라엘진영으로 오게 됩니다. 이스라엘 진영 처음에는 벧세메스에서 기랏여아림입니다.
이때 기랏여아림에서 20년간 있게 되는데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예루살렘 중심지로 옮기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삼만명을 모읍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대표였으며 다윗은 지파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관심을 고조시켜 신앙을 부흥케 하려는 목적에서 당연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고대 법궤에 대해서 하나님의 임재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때문에 그것을 통해 목적하는 바를 이룰수 있었을 것입니다.
2절의 바알레유다는 기랏여아림의 옛이름이며 하나님의 법궤가 출발하는 곳입니다. 법궤는 어떻게 옮겨져야 했습니까? 그것은 성경에 레위지파중 고핫자손이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가 잘못되어지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실었다 말합니다. 새 수레는 사람 생각에는 최대한 정성을 다했다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단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선행했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지만, 이는 결국 사고를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웃사와 아효가 새수레를 몰게 되었는데 아미나답의 집에서 법궤가 나올때 소들은 여러악기로 연주하는 소리에 놀라게 됩니다. 놀란 소들은 나곤의 타작마당, 뜻으로 본다면 예비된 재앙의 타작마당에서 뛰게되고 수레가 전복되며 하나님의 궤가 떨어지려하자 웃사는 언약궤에 손을 대게 된것입니다. 그 결과 웃사는 사망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측면으로 볼때는 어떻습니까? 분명 이해가 가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궤를 보호하고자 손으로 잡았을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에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경홀히 여김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범하는 중대한 범죄를 범하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결국 하나님의 일이란 인간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윗은 자기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웃사가 죽게됨을 보고 얼굴이 뜨겁게 됩니다. 8절에 다윗이 분하여는 얼굴이 뜨겁게 됨을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행동에 두려워하게 되었고 여호와의 궤를 옮기려 한것이 화가 되어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방식과 행동이 잘못된 것이지 다윗이 법궤를 옮기고자 한 계획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기때문입니다.
결국 여호와의 궤는 예루살렘이 아닌 가드사마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아마 다윗도 여호와의 궤가 예루살렘에 오는 것을 두려워하였기에 오벧에돔도 마찬가지였을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도리어 여호와의 궤가 그의 집에 오는것을 순종하며 영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하시며 그의 용기와 겸손에 대한 자세에 대해 축복을 내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벧에돔에 여호와의 궤가 있으며 오벧에돔이 축복을 받는 것을 보고, 자신의 무지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여호와의 궤를 옮기지 않은 방식과 행동의 잘못이 베레스 웃사의 사건을 만들어 내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로인해 오늘 본문 이후에 말씀에서는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다윗성으로 올라가고 있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진리를 취하면 유익한점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누구를 위한 선한 동기와 열심인지 깨닫게 합니다. 의도가 선하다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았을 때, 그 결과는 처참할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다가갈수 있는 우리의 뜻과 생각은 모두 사망입니다.
그것을 누가 중재하시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피흘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 내가 하나님과 관계에서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면, 다시 그 일을 실행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방식과 행동을 취하여야합니다.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오벧에돔의 집과같이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방법
-버려야할 것
-현실에서 해야할 것 2~3가지
우리는 먼저 무언가 일을 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방식이 있기때문입니다. 또 내 생각과 판단은 잠시 내려놓아야 할것입니다. 때론 내 생각이 맞게 보일때가 있습니다. 고집스럽게 그것을 주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영광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또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갈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죄악된 백성을 결국 깨끗게 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떠남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가까이함이고 관계회복입니다.
결론
-전체요약
-중요한 간증과 권면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오늘 본문은 결국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선한 동기와 열심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방법으로 추진되어진다면 결국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동기와 열심을 말하며, 하나님의 뜻에서 떠난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결국 내 고집을 내려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으면 기뻐받으시지 않으십니다. 내 뜻에 하나님을 설득시킬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설득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