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4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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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신 하나님

하늘고 친구들! 다들 한주 잘 지냈죠? 오늘도 함께 이자리에 모여서 말씀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깊이 누리는 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우리 친구들은 언제 화가 나거나 분노를 느끼나요? 아마 다양하게 그러한 경험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을 때 모두가 분노를 느끼는 한가지의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가 언제냐면, 바로 불공정을 느꼈을 때이지요.
요즘 시기에는 여러분들을 비롯한 청년들에게까지도 이 공정의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고는 합니다. 왜 그럴까 하면, 그 문제가 바로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어쩌면 심하게는 먼 지역에서 어떤 누군가가 살인을 했다는 뉴스보다도, 어떤 누군가가 불공정한 방법을 사용해서 이득을 본 뉴스에 훨씬 더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 분노하기도 합니다.
어느 학교에 시험지를 유출해서 1등을 하고 이런 사건들을 예로 들 수 있겠죠.
그만큼 우리는 이 공정이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것이 잘 이루어지는 사회를 바라고는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떨까요? 성경은 공정한 책일까요?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어떠한 결점도 없는 그러한 것이겠죠.
하지만 우리가 그냥 딱 생각했을 때는 어떤가요? 그래도 공정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성경이 기록된 시기가 워낙 옛날 고대시기이다보니 그렇겠죠.
여러분들이 아는 것만 해도 남성이 위주가 되고, 여성과 어린이는 수에 들어가지도 않는 이러한 모습들이 있구요, 심지어는 노예에 대한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뭔가 성경말씀을 가지고서 공정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이런 것들로 인해 성경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서 공격을 받기도 하죠.
하지만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은 공정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분이실까요? 그건 또 아니라고 생각되죠.
그러면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말씀을 통해서 답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자. 오늘 말씀은 므낫세 지파의 어떤 한 사람의 딸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누구죠? 슬로브핫이라는 사람의 딸입니다.
그리고 그 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합니다.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고 하죠.
그들이 오늘 말씀에 등장한 것은 모세에게 하나의 소송을 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2절에서 그들이 어디로 가나요? 회막 문으로 갑니다. 이스라엘 문화에 따르면, 성의 문 앞은 재판이 이루어지는 장소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딸들도 마찬가지로 재판을 위해 회막 문 앞으로 모이고, 다른 온 회중도 이를 위해 모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3절과 4절에서 소송의 내용을 이야기하죠.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는데, 고라의 반역으로 죽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죄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어떻게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냥 사라질 수가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형제에게 간 기업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자, 이 이야기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재산 상속을 다시 자신들에게로 돌려달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내용들이 많죠.
먼저 그들은 3절에서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러한 말을 했을까요? 여러분들이 재판을 하는 것들을 뭐 꼭 가서 보지는 않더라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다 보았을 거에요.
그렇다면 재판에서 나오는 발언들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하는 말은 없다는 것을 다들 알거에요. 그러니 고라를 언급한 것도 이유가 있겠죠?
이들이 이 말을 한것은 고라의 반역 당시에 그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재물이 다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압류당했다고도 볼수 있겠죠.
하지만 슬로브핫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거에요. 그러니 아버지의 재산은 정당하게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죠.
그리고 자기 죄로 죽었다라는 것은 아마도 그 외의 다른 사건들로 인해 죽었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탐꾼 사건 때 정탐꾼 쪽에 있었다던지, 뭐 여러가지 경우들이 있겠죠.
자, 그런데 슬로브핫의 가정에 문제가 생긴 것은 다름아니라 그 가정에 아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더 나아가 중동지역의 문화는 남성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가정 역시도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었죠.
그런데 가정에 남성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정으로서 기능할 수가 없겠죠.
결국 슬로브핫의 가정은 존재하지 못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 재산 역시도 아버지의 형제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던 거에요.
그러니까 당시 이스라엘의 율법으로는 여성은 재산을 상속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정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재산은 단지 결혼할 때에 받는 지참금이 전부였어요. 결혼할 때에 지참금을 받는 것으로서 이 집안에서의 모든 것을 받고 아예 다른 집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었죠.
그러니 사실 슬로브핫의 딸이 아버지의 재산과 기업을 받지 못하고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형제들에게 넘어간 것은 당시 율법대로 잘 처리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는 그렇게 끝나면 자신들의 대가 그대로 끊기게 되는 것이었죠. 재산도 재산이지만,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한 모든 기억과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마도 더 크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딸들이 모여서 모세에게로 상소를 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서였겠죠.
모세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아마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지금까지의 법과 전통을 깨뜨리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모세는 하나님께 이 문제해결을 요청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죠. 우리에게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러한 순간 나 자신을 자만하고 나의 생각대로 행동하려고 하기보다는 오늘의 모세와 같이 모든 것에 능력이 많으신 주님께 맡기는 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게 모세는 모든 것에 능하신, 또한 이 율법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이 사건에 대해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7절과 같이 판결하십니다. 바로 아버지의 형제들에게서 이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라고 하신 것이죠.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은 이에 따른 모든 율법을 다시 작성하십니다. 아들이 없는 가정에게는 딸에게, 딸도 없으면 형제에게, 그도 없으면 가까운 친족에게 주라고 한 것이죠.
이렇게 슬로브핫 딸들의 재판은 새로운 판례가 되어 이스라엘 사회에 적용되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결과를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기업을 주게 하라고 하신 것은 여성도 가정의 중심이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있던 시기가 언제인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시기적으로 고대시대 중에서도 거의 초반에 있었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죠. 국가라고 해봐야 이집트정도만이 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일거에요.
그런데 그러한 옛날부터 하나님은 남성승계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당시에 이미 진행되던 모든 전통을 다 뒤엎으시면서까지 말이죠.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다시금 바라보게 됩니다.
사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이러한 소송을 모세에게 했을 때, 그 재판장의 분위기가 어땠을 것 같나요? 그 당시 사회를 생각해보면 아마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거에요.
그 사회 분위기상 그들의 이러한 소송이 무시되더라도 아마 많은 이들이 문제를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와 또한 하나님은 그들의 이 요구가 그저 재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가정과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을 주목하셨고,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억울함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의 말씀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시고 또한 이 모든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백성 한 사람의 아픔을 무시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의 백성 한 사람 한사람을 모두 사랑하고 아끼셨기 때문에, 오늘 말씀에 등장했던 슬로브핫의 딸들의 아픔을 아셨고, 그 사랑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회에 그의 공의로움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는 그 사랑이 진리라는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거쳐서 지금은 자연스러워진 이러한 법들이 존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이 성경을 통해서는 뭔가 공정을 말하기가 조금은 어려울 것처럼 우리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았듯이 성경말씀이야말로 누구보다 먼저 공정을 이야기한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걸어주십니다.
당장 우리 앞에 많은 불공정하고 이상한 일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것들로 인해 분노하게 되고, 또한 그 일들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죠.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왜 이러한 일들이 우리 앞에 발생하느냐고 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하시며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공정함을 보이셨던 것처럼, 반드시 우리의 앞에 그의 공의와 사랑을 보이실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상식을 뛰어넘어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기업을 물려주셨던 것처럼, 주님은 우리모든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보시고, 반드시 우리 앞의 그의 공의와 사랑을 세워나가실 것입니다.
우리 모든 친구들이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나누고 마무리할텐데요, 유명한 찬양중에 나 가진제물 없으나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아마 다들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 같아요.
이 찬양의 가사는 송명희 시인의 <나>라는 시를 가져왔습니다. 이 시를 지으신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앓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삶은 장애와 싸우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의 가사처럼 내가 가진 것은 없어도 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하나님은 공평하시다고 고백합니다.
이 송명희 시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의 지금 상황이 어떻든 간에, 공평을 이루실 주님을 믿으며 공평하신 주님을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이시간 이 찬양을 함께 고백하면서 우리에게 함께하실 그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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