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_01:35-01:39_주님과 함께 지내는 성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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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greeting
greeting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대로 자원하여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분들은 그에 걸맞게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배와 기도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활동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많이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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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한 사람은 그냥 지나치겠지만, 이제 이사를 가려는 사람은 부동산 앞유리에 써붙인 매매전제월세 가격을 두 눈으로 똑바로 살펴봅니다. 보고 또 보고 계산해보고 비교해보고 다시 보고 합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다니지만, 이빨이 아픈 사람은 성신여대역 사거리에 치과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빨리보이고, 많이 보이는 일명 눈버릇이있습니다.
온 세상 천지만물이 굉장히 많을지라도, 온 갖 것을 다 보면서 지내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보는 것보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더 많은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눈버릇대로 보고 지낼 것입니다. 무엇이든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이 잘 보입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돈이 보입니다. 사람이 필요한 사람은 사람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일 것입니다.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중 유독 한 사람에게 시선이 꽃힌 세 명의 님성들이 있었습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 남자는 세례요한과 두 제자입니다. 두 제자는 요한과 안드레입니다. 세례요한은 최고의 선생님입니다. 당시에는 세례요한 이외에도 성경교사가 많았습니다. 설교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세례요한은 그 중에서 가장 탁월했습니다.
가르침이 남달랐고, 사람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은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그들을 합당하게 준비시키는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두 제자 앞에서, 손으로 예수님을 가리켰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를 가르치고, 준비시켰던 것은 저 분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고 했습니다.
두 제자는 그 마지막 가르침을 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접 예수님 뒤를 따라 나갔습니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두 제자는 지금까지 나를 가르쳐주신 최고의 선생님을 뒤로했습니다. 하나님을 가르쳐주셨고, 율법과 구원과 영생을 가르쳐주셨던 세례요한을 뒤로했습니다. 감화력있는 가르침과 끈질긴 권면과 돌봄으로 두 제자를 지금까지 키워주신 마지막 선지자 세레요한을 두 제자는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 선생님, 본인이 두 제자가 이제 예수님께로 가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두 제자의 떠남은 변절이 아닙니다. 두 제자의 떠남은 세례요한을 향한 배신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선생님에게 배웠던 그 내용의 실체를 경험하기 위한 새로운 걸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고, 배우고, 깨닫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함께 지내려고 내 딛는 영생의 걸음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개인적으로 직접 주님과 같이 살아야합니다.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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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직접 주님을 영접하라고 하셨습니다. 목 마른 사람도 오고, 돈 없는 사람도 오고, 병든 사람도 오고, 외로운 사람, 슬픈 사람, 내 인생에 아무 낙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직접 주님께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배웠으면 배운대로, 못배웠으면 못배운대로, 성공했으면 성공한 대로, 실패했으면 실패한 그대로 지금, 주님께 직접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쉼을 주시겠다고 말씀셨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늘의 만나를 맛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가 어떤 맛인지 직접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유튜브나 티브이에 보면 최고의 선생님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탁월한 선생님들이 빼곡히 모여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익혀야 하고 체득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의 실체를 경험하려면 주님을 유심히 보십시오. 그 분과 대화를 시도하시고, 그 분에게 붙잡히고 싶다고 말씀드리십시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주님과 만나기 시작했다고 간증합니다. 이전에는 몰랐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맛보았다고 증언을 합니다. 비로소 내 삶이 물댄 동산같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두 제자가 주님 앞까지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께 뭐라고 해야 하나 머뭇거렸습니다. 두 제자와 주님사이에 어색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고요함을 깨뜨리고 주님께서 먼저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그래, 너희 두 사람은 세레요한의 제자들이 아니냐. 왜 무슨 일이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두 제자는 그제서야 속 마음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 놓았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지만, 이제부터는 선생님과 같이 지내도 되겠습니까. 용기있고 담대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굉장한 장면인지 모릅니다. 이 한 마디를 시작으로 두 사람은 이 때부터 3-4년 뒤에 주님의 사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두 제자만 주님께 붙잡힌 것이 아닙니다.
exa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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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돈 좀 있는 사람도 주님을 멀리서 주시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자였지만 부도덕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날이야 방법이야 어쨌든, 법꾸라지가 돈만 벌면 장땡인지 몰라도, 이 당시에는 과정이 합당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무시했습니다.
이 멸시당하는 부자가 인생 살만큼 살고, 해보고 싶은 것 왠만큼 해보고 나니, 인생 별것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내가 주는 선물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고 외치는 예수님을 보면서, 그 마음에 나도 저 분을 더 가까이서 보고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급지게 잘 차려입은 사람이 굳이 나무를 기어 오르며 옷을 다 버렸습니다. 겨우겨우 나무 위에 매달려서 시선을 돌려 주님쪽을 바라보는데, 주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때부터 삭개오에게 영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마음이 어디에 향해 있는지를 아십니다. 온갖 미사여구를 다 붙여서 기도를 해도, 그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아십니다. 삭개오는 불의한 사람이었지만, 주님을 향해 마음을 돌리는 순간, 주님과 눈이 맞았습니다.
주님 앞으로 나온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삭개오와는 사뭇 다른 부자도 예수님을 멀리서 응시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자이면서도 좋은 일도 많이하고, 인심도 좋아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인플루언서였습니다. 그 부유한 젊은이는 주님을 가까이 보니기 위해 나무에 오늘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었습니다.
이 영리치는 워낙 진행 중인 사업이 많고, 하루가 바쁜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자마자 거두절미 하고 본론부터 바로 들어갔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주님도 바쁘시고, 나도 바쁘니까 핵심용건만 간단히 하자는 쿨한 젊은이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만 알려주시면, 그것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타 다른 사람들처럼 인생의 자질구레한 결핍들로 예수님께 징징대지 않겠다는 자신만만한 어조였습니다.
참다운 질문을 잘 했지만, 그 답을 얻기에는 인생이 너무 바빴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생을 논하려면, 지금 진행하는 사업이나 바쁜 일들 다 접고, 나를 따라다니라고 하셨고, 젋은이는 어두운 표정으로 물러갔습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어떤 비결이 있다기 보다는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그 생명의 활력이 마음 속에 깃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영생을 사는 길이 어디 따로 있다기 보다는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내 자신조차도 알게 모르게 , 내가 살아가는 이 현실이 이미 주님과 함께 지나가는 영생의 길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outro
outro
우리는 여기 주님의 코 앞에 나와 앉아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두 제자에게 하신 것처럼 주님을 따르려는 분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구하느냐.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지내시면서 영생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걸어가신 영생의 길이 녹록치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파란만장합니다. 한 숨 나오는 날이 많고, 다 그만두고 싶은 시간들이 시간시간 있습니다. 그 때마다 공급해주시는 영생의 기력을 따라 솟구치는 영적 새 힘으로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