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딱 감고 떠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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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이 시간 함께 나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깨닫게 하심이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을 덮어두지 마시고 저와 함께 말씀을 찾고 또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문인 창세기 12장 1절에서 9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길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내용은 죄가 들어온 사람들의 삶의 결말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도, 그리고 바벨탑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죄악 된 삶을 사는 이들의 결말은 결국 사망과 심판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심으로 창세기 전체의 초점이 한 사람에게 집중됩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 한 사람을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부르심’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우연의 사건이나 한 개인의 결심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할 때 우리는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엇인지, 우리가 부르심을 따라 갈 때 어떤 일일이 일어나는지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를 향한 부르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를 향한 부르심이다.”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이 누구를 향한 부르심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따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를 향한 부르심이다. 창세기 12장 4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멘.
본문 말씀의 첫 부분이 아닌 4절의 말씀을 먼저 살펴보는 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란을 나서는 이 시기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는 12장이 하나님과 아브람의 첫 만남으로 기록되어있지만, 이에 대한 다른 견해를 우리는 신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함께 사도행전 7장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7장 2절에서 4절 말씀입니다. 가능하신 분들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사도행전 7장에 의하면 아브람과 하나님의 만남은 아브람이 하란에 있기 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말씀과 사도행전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함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창세기 11장 26절부터 나오는 아브람의 족보 이야기를 참고하여 보면 우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소보다미아에 살고 있던 아브람에게 한 신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 신은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을 떠나 그가 보여줄 어떤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아마도 자신이 받은 신의 계시를 당시에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했던 가장, 즉, 자신의 아버지와 상의했을 것입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아들이 들은 이 신의 계시가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가족들과 함께 메소보다미아를 떠나 하란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데라는 하란을 떠나지 않았고, 아브람도 데라와 함께 하란에서 발이 묶여 다른 곳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데라가 죽고, 오늘 함께 보는 창세기 12장에서 소개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2장 1절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아멘.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사도행전 7장과 창세기 12장의 차이를 발견하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사도행전 7장 3절에서는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2장 1절에는 무엇이 추가되었죠? 맞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말씀이 추가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더 이상 아버지 데라가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떠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작년 말이었습니다. 신학계속추천서를 받기 위해 노회면접을 보러 갔어야 했는데, 제가 갑자기 코로나에 걸려 본면접에 출석하지 못하고, 다른 한 분의 전도사님과 함께 따로 면접을 보러 노회 목사님을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질문을 하시려나 긴장하고 있던 찰나에 목사님께서 입을 여시고 물어보셨던 질문은 바로 ‘왜 사역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신대원 1학년 때 입학동기들과 서로 처음 만나면 질리도록 나누었던 이야기였기에 자신 있게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제 옆에 계셨던 전도사님도 하나님께 뚜렷한 소명을 받았던 사건보다는 앞으로 하고 싶은 목회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며, 믿음의 공동체, 의미 있는 사역 등과 같은 이야기에 더 초점을 맞추어 목사님께 답변을 드렸습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목사님께서 저희 말을 멈추시고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역하다 보면 전도사님이 말한 믿음의 공동체도, 열심히 하던 사역도, 모든 것이 다 배신을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그때 가서도 공동체 때문에, 보람찬 사역 때문에 목회자의 길에 들어왔다고 말하며 견디실 수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전도사님들 사이에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명확한 부르심의 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어떤 교회의 사역자로서가 아닌, 전도사님들을 향한 확실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순간이 있습니까?’라고 말이죠.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저와 제 옆에 계시던 전도사님은 다시 한 번 목사님께 저희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순간을 나누며 면접을 마무리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코 나의 부르심이 될 수 없습니다. 또는 누군가 나의 부르심을 대신 지고 갈 수 없습니다.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의 그늘에 갇혀,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닌 아버지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데라의 아들이 아닌,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결국 아브람이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를 수 있는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자신이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이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온 신대원과 사역지였는데, 어느새 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닌 다른 것을 따라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신학생으로서, 혹은 사역자로서 고려해야하는 여러 조건들과 같이 조금씩,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닌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다른 것들을 또는 사람들을 따라가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다시 한 번,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온전한 부르심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향한 부르심’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그분의 부르심을 다시 붙잡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를 위한 부르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를 위한 부르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또 다른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따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를 위한 부르심이다.’ 2-3절의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멘.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이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본문 말씀 바로 뒤 내용을 보면 아브람이 기근을 피해 애굽 땅으로 이동합니다. 아브람은 애굽 땅에 가까이 가자마자 아내에게 하는 말이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 사람들이 당신을 차지하려고 나를 죽일 수 있으니, 아내가 아닌 누이라고 소개하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자 바로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거하게 받고 아내를 넘깁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복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아브람의 모습은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 탑 사건의 이야기와 대조를 보입니다. 창세기 11장 4절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바벨탑을 짓던 사람들이 탑 꼭 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무엇을 내려고 했습니까?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 아브람과 달리 바벨의 사람들은 위대한 성읍과 탑을 건설할 능력도 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았던 그들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언어가 흩어지고, 그들도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아무런 대단한 것이 없던 아브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고 위하시자,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고, 그리스도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나셔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졌고, 몇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 자신만을 위한 부르심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갈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전도사님들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 이 있었습니까? 그 중에는 분명 여러 어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이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예비하신 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부르심의 시작부터, 모든 과정을 진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브람처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의 약속하심과 예비하심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와 동행하는 부르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와 동행하는 부르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따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와 동행하는 부르심이다.’ 함께 본문 말씀 5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멘.
과거 아버지와 함께 떠났던 때와는 달리 하나님의 부르심을 자신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이고 식솔들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도착했습니다. 여담으로 말씀 속에 등장하는 모레 상수리나무의 ‘모레’는 ‘선생(teacher)’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세겜 땅에 있는 모레 상수리나무는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함께 7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아멘.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나선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그냥 말씀만이 아닌, 아브람에게 직접 ‘나타나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에게 직접 나타나 말씀하신 하나님께 아브람은 제단을 쌓음으로 화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아브람에게 명령만 하시고 홀로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직접 나타나시고 모든 길에 동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동행하는 아브람에게 그의 자손에게까지 인도하신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람이 무엇을 해야 이루어지는 언약이 아닌 그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동행할 때,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8-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동행한 아브람은 세겜과 벧엘 지역을 지나 점점 남방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우연인지 또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는지 아브람의 손자 야곱이 에서를 피해 도망쳐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거하고 다시 돌아오는 이동 경로를 보면 세겜을 들려 벧엘을 거쳐 남쪽을 지나 애굽으로 갑니다. 또 야곱뿐만 아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도 여호수아와 함께 아브람이 지나간 길을 따라 가나안을 정복해 나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람의 자손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그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지시고 자신의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브람에게서 끝나는 짧은 에피소드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까지,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까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역은 우리의 이해와 기대를 넘어섭니다. 하지만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우리에게 당신과 함께 동행 하자고 초대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함께 가길 결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과의 이야기를 돌아보면, 결국 모든 것을 인도하시고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부르심 따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창세기 12장 1-9절 말씀을 통해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나누어 보았습니다.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오직 나를 향한 부르심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만이 아닌 나를 위한 부르심이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동행한 아브람을 통해 우리는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동행할 때 그분의 놀라운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신학생 동기 여러분. 1학년 때 입학하며 새롭게 만난 신대원 동기들과 뜨겁게 나누던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십니까? 막상 공부하고 사역을 시작하니 그때의 부르심이 뭣도 모르는 1학년의 패기였다고 생각하며 마음 한구석에 치워두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아브람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특별한 부르심을 다시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말도 안 되는 무모한 사명일지라도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고, 눈 딱 감고 믿음으로 부르심을 따라 떠납시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의 증인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진심으로 축복하며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