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제물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히9:2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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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서론 및 정의
서론 및 정의
1. 왜 ‘예배’를 드리는가? (1) 죄를 지우기 위해서(용서받기 위해서), (2) 내 삶의 소원을 구하고 받기 위해서, (3) 한 주 또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 (4) 위로를 얻기 위해서
2. 여러분 이 상황에서 제가 여러분께 칠 대사는 이겁니다. ‘인생은 실전이야' 대부분의 경우 선택지에 답이 있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하셔야 합니다.
3. 예배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살아갈 힘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그것이 예배의 목적은 아닙니다.
4. 예배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성경의 언어는 예배를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어이해שָׁחָה(솨하) - ‘굽히다’, ‘엎드려 절하다’는 말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예배 행위를 뜻한다(삿 7:15). προσκυνέω(프로스퀴네오) - ‘프로스’(…에게)와 ‘퀴네오’(입맞추다)의 합성어. 종이 주인에게, 신하가 임금에게 존경과 절대 복종의 의미로 발에 입맞추는 고대 풍습에서 유래한 말이다. 예배하는 자의 참된 마음 자세를 강조한 표현이다(눅 4:8).
다윗이 고백한 시138 에 나오는 ‘예배'라는 단어도 ‘굽히다, 절하다, 엎드리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4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 그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5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예배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24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본론
본론
구약 시대에는 희생제물을 드려서 제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오는 사람들은 제물을 가지고 왔어야 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들을 따라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물을 올려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대신할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1-4절을 다시 볼까요?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브리서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아올 때마다 반복해서 드려야만 했던 제사를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 제물들의 피는 사람들의 죄를 완전히 지워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말합니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통해서 나오는 예배자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시고, 하나님께 나아오기 위해 ‘누군가가 피흘리고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히10:1 은 이렇게 말합니다.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또한 이러한 희생제물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자들로 나아올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제물의 모형으로서 제시된 것이었습니다.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모형이 가리키고 있는 진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더 좋은 제물, 진정으로 죄를 없이 할 수 있는 제물, 그것은 제사제도에서 모형이요 그림자로 알려주었던 진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예배자로 설 수 있도록 하는 예수님의 피흘리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진정한 희생제물로서 자신을 죄의 댓가로 내어주시고 십자가에서 형벌받아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없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약의 예배라고 할 수 있는 제사제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희생제물이 바쳐져야 하는 죄인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죄를 없이 하기 위해 대신 피흘려 죽을 제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하러 나아오는 백성들은 모두 참혹하게 죽임 당해서 제물로 바쳐지는 짐승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낮추고, 이러한 죄인들을 예배자로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높였을 것입니다. 그림자요 모형이었던 제사제도가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구약의 백성들도 그 그림자와 모형을 통해서나마 보여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우리 예수님은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역할도 하셨습니다. 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화목하게 중재하는 역할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그 제사를 제사장들을 통해서 드리게 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이 알려주신 절차에 따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지요. 그들은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직분의 근본이십니다. 인간 제사장들은 자신들도 죄인이었던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 완전한 제물인 자신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신 분이십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진정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대제사장이셨죠. 그분이 드리신 제사는 인간 제사장들이 따라할 수 없는 완전한 제사였고, 반복할 필요가 없는 단 한번에 모든 것을 이루신 영원한 제사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진정으로 화목하게 되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배'를 이렇게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죄인을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어린 양 예수님, 자신을 드려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예수님의 그 피흘리신 사랑을 생각하며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엎드리고, 그러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높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결론
결론
결론입니다. 사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배드리러 와서 말씀듣고 찬양하고 기도하다가 그 사랑을 진짜 알게되고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예배드리는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진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오늘 보았던 것처럼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인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은혜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배가 무엇인지를 여러분이 경험하여 알게 되겠죠. 예배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될 것이고, 오히려 예배를 드리는 것을 사랑하고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를, 그러한 예배자로 날마다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