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 여겨짐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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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 여겨짐의 결과(화평, 은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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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는 로마서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라고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영감을 받아서 내용상 모순이나 오류가 전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로마서를 기록했다고 믿습니다. 물론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로마서 16장 22절 말씀 보세요. (in)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더디오가 대필해서 오늘날 로마서라고 불리는 편지를 기록했고, (out)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인 뵈뵈가 로마 교회에 이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로마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하나의 장문의 편지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말씀은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로마서의 원본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지 않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 66권 각권의 원본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성경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신학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대표적인 신학적인 문제를 소개해 드리자면, 성경의 사본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오늘날 성경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지만, 성경 원본은 여러 필사자들에 의해서 수많은 사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성경 필사하시는 분들 계시죠? 마치 그런 것처럼, 성경의 원본을 보고 똑같이 베껴 써서 남은 기록물을 사본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신약성경 사본의 경우에는 무려 5,600여개 정도의 사본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본이라고 해서 모든 사본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사본이 기록된 연대에 따라서 오래된 사본일수록 가치가 높은데요.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사본으로 여겨지는 것은 시나이티쿠스, 바티칸, 알렉산드리누스, 에브라임. 이렇게 네 가지의 사본이 가장 권위 있는 4대 사본으로 불립니다. 특히 시나이티쿠스 사본, 시내산 사본의 경우에는 주후 330년에서 360년경에 기록된 사본이며, 완전한 책의 형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사본 중에서는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닌 것으로 여겨집니다.
제가 왜 이렇게 사본에 관해서 길게 말씀드리는가 하면, 사본에 관한 문제가 오늘 본문 말씀과 연관되어있기 때문인데요. (1번) 지금 보시는 이 사진은 시내산 사본에서 로마서가 기록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장절이 구분되어있지 않고, 띄어쓰기도 전혀 되어있지 않죠. (2번)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과 관련된 부분을 빨간색 네모로 표시해 놓았는데요. 이 부분이 로마서 5장 1절에서 논란이 되는 말씀입니다. 시내산 사본에 따르면 이 부분은 (3번) “누리자”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이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어떻게 번역되어있을까요? 로마서 5장 1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아멘. (out)
로마서 5장 1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기록되어 있죠. 그런데 문제는 사본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성경의 원저자가 기록한 본문이 무엇이었을까. 이런 문제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면서 헬라어 성경을 출판했는데, 여기에서 신학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방금 전에 살펴본 시내산 사본에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렇게 기록되어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4번) 그런데 오늘날 출판되고 있는 헬라어 성경 로마서 5장 1절 말씀을 보면, 시내산 사본과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이면서도 성경 원본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시내산 사본과 다르게 기록되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비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5번) 앞서 살펴본 시내산 사본과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화평을 누리자”라고 기록되어있지만 네스틀레 알란트 헬라어 성경과 sbl, 그리고 ubs 5판에서는 “화평을 누린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out)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걸까요. 우리말로 이 내용을 생각해 보면, “화평을 누리자”라는 말과 “화평을 누리고 있다.”라는 말은 헷갈릴래야 도저히 헷갈릴 수가 없습니다. 표현 자체가 확연하게 구분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헬라어로 보면, 이 표현은 굉장히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6번) “화평을 누리자”라는 말과 “화평을 누리고 있다, 화평을 누린다”라는 표현의 차이는 알파벳 하나 차이인데요. 발음은 똑같습니다. 둘 다 똑같이 에코멘이에요. 이러한 점에서 발음만 들어보면 뭘 말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수 있겠죠. (out) 그렇기 때문에 발음만으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권면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리고 있다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 가지 번역본은 로마서 5장 1절 말씀을 어떻게 번역했을까요. (7번) 바른성경에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라고 번역되었고요. 표준새번역에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번역에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처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렇게 권면하는 식으로 번역되지 않은 겁니다.
그럼 영어성경은 어떨까요. (8번) 대표적인 번역본들을 참고해 보면 NIV 성경도 그렇고 NASB 성경도 그렇고, ESV 성경도 그렇고,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 이런 식으로 번역되어있습니다. (out)
자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어떻게 이런 사본 상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걸까요?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둘 다 똑같은 에코멘인데, 어떤 근거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발생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신학적인 영역입니다만,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두 가지의 근거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근거는, 외적인 증거입니다. 사본들 중에서도 권위 있는 사본들, 아주 아주 오래된 사본들을 근거로 해서 성경 원본이 어떤 내용으로 기록되었는가를 추정하는 것이죠. 그리고 오래된 사본들이 대체적으로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으면, 그 내용이 성경 원본에 가깝다고 보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 근거는, 내적인 증거입니다. 성경의 문맥에 따라서, 문제가 되는 구절의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서 어떤 표현이 자연스러운가를 추정하는 겁니다. 예컨대, 로마서 5장 1절의 경우에는 로마서 1장부터 4장까지의 문맥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권면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도의 영적인 상태를 논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의 의미를 고찰하기 전에 우선 로마서의 문맥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앞선 문맥인 로마서 4장 말씀에 따르면, 의로 여겨짐에 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죠.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언약을 아브라함이 믿음으로써 그의 믿음이 의로움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시점은 할례를 받지 않은 시점이었고,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했던 시점도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께 아무런 공로가 없는 아브라함,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공헌도나 기여도를 주장할 수 없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브라함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획득할 수 없는 은혜를 얻은 것이며, 이로 인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4장 23절과 24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인으로 여겨진 이 놀라운 방식이 오늘날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4장 23절과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in) 시작.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out)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만 의롭다고 여겨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아브라함이 의인으로 여겨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인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악된 본성이 남아있더라도 의인의 신분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렇게 로마서 4장의 문맥은 성도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의로 여겨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데요. 그렇다면 이어지는 로마서 5장 1절 말씀은 문맥상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할까요. 로마서 5장 1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in)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러므로라는 말을 언제 사용합니까? 앞서 등장한 내용을 종합해서 정리할 때 사용하죠. (out) 그럼 로마서 5장 1절의 그러므로라는 말은 어떤 내용을 정리한다고 볼 수 있습니까? 바로 앞에 있는 문맥인 로마서 4장 말씀을 정리하거나, 로마서 1장부터 4장까지의 말씀을 종합해서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사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박형용 교수님의 설명을 참고하면서 이 내용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9번-10번) [바울이 로마서 5장 1절에서 “그러므로”를 사용함으로 이전 구절들을 통해 설명한 내용의 결과로 성도들의 삶이 복된 삶인 것을 설명한다. 바울이 로마서 5장 1절을 기록한 것은 성도들에게 권면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요 / 오히려 의롭게 된 성도들이 소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5:1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박형용 교수님의 견해에 따라 우리는 로마서 5장 말씀을 통해 의로 여겨짐의 결과가 무엇인지, 의로 여겨진 성도들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말씀에 따르면, 의로 여겨짐의 결과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여겨짐의 결과 첫째는, (in)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화평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11번) 바울이 표현한 화평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샬롬은 고요한 상태, 만족스러운 상태, 온전한 상태, 건강한 상태, 인간의 삶에서 전반적으로 평안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히브리식 인사말로 샬롬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평안한지를 물어보는 것이죠. 그리고 이 샬롬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헬라어로 ”에이레네“라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샬롬과 마찬가지로 평화, 화평, 평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out) 이러한 점에서 샬롬 또는 에이레네. 이런 단어는 굉장히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서 5장 1절에서 사용된 화평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2번) 화평이라는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는 정상적인 상태로서의 평안함, 종말론적인 구원으로서의 평안함,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 안에서 누리는 평안함. 이렇게 세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로마서 5장 1절에서 사용된 화평이라는 단어는 세 번째 의미로 사용됩니다. (out)
다시 말해 로마서 5장 1절에서 성도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고 말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성도가 누리는 평안함이라는 것은, 진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개인적인 성향, 예컨대 낙천적인 성격이라던지, 긍정적인 성격이라던지. 이러한 측면에서 무슨 일이 있든 없든 항상 느긋하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품고 있는 기본적인 성향이나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감정은 불신자들도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서 단계별로 착실하게 성장해서 결과적으로 물질적으로 부유한 인생을 살아가는 불신자들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수많은 정치인들, 기업인들, 지식인들 중에 이런 분들이 많죠. 이런 분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여유롭고 평안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가지고 있는 평안함은 로마서 5장 1절이 말하고 있는 평안함, 성도가 누리고 있는 평안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겨지지 않은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자신의 힘으로 에이레네를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겨진 사람만이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누릴 수 있으며 그 안에서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진리가 말하는 평안함의 독특한 특징 한 가지를 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과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in)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out)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도와 화목하게 하시는 분, 화평의 주체로 표현합니다. 화목하시는 분, 화평하게 하시는 분, 평안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요? 사람이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맺고 싶다고 하면, 화평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평한 관계는 오직 하나님의 입장에서 근거해서 결정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로마서 5장 1절이 말하는 내용,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는 말씀은 의로 여겨짐의 첫 번째 결과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화평이라는 것,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안에서 누리는 평안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값진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이어서 의로 여겨짐의 결과 두 번째는, (in) 우리가 서 있는 은혜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in) 로마서 5장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네.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로마서 5장 2절의 수식어구가 이상하게 엉켜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바른성경 번역본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5장 2절 말씀 다시 보세요. (in)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한다.”
5장 2절 말씀에 따르면 성도는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은혜에 서 있고, 믿음으로 은혜 안으로 들어감을 얻습니다. 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은혜에 서 있다”라는 표현에서 “서다”라는 동사는 헬라어의 기본적인 동사이면서도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예컨대 제가 지금 서 있지 않습니까? 앉아있진 않죠? 네. 이렇게 실제로 서 있는 상태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에는 무려 17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로마서 5장 2절에서는 위치상으로 어떤 특정한 상태를 점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로마서 5장 2절 말씀을 읽을 때 “우리가 은혜에 서 있다”라고 읽더라도 의미 자체는, 어떤 특정한 상태, 다시 말해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은혜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리고 로마서 5장 2절에서 믿음으로 은혜 안으로 들어감을 얻었다는 표현도 굉장히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여기서 “들어감”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단 세 번만 사용된 독특한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구약시대에 사람이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사용되는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어떤 사람이든지 아무나 제물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흠이 없고 합당한 사람들만 제물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죠.
레위기 21장 17절에서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in)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 / 누구든지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 등 굽은 자나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나 /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아멘. (out)
레위기 말씀에 따르면 구약시대의 경우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아무나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흠이 있는 사람, 신체에 어떤 문제가 단 하나라도 있는 사람은 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자손이라고 하더라도 흠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과, 애초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고 이러한 구분이 매우 엄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 5장 2절 말씀에 따르면, 성도는 의롭다고 여겨진 결과 무엇을 얻었습니까?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믿음으로 들어감, 믿음으로 나아감을 얻은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는 사람, 흠으로 가득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합당한 자격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격을 얻게 된 성도는 로마서 5장 2절 하반절의 말씀대로, (in)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out)
자 이렇게 우리는 성도가 하나님께 의인으로 여겨짐으로써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 두 가지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내용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성도는 아주 아주 평안하고 기쁨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해 보이죠. 하지만 여기서 반론의 여지가 생깁니다. 로마서 5장 1절과 2절 말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이 말씀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반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내 삶에 평안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데, 도대체 화평이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 기쁨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예컨대, 로마 교회 성도들의 경우에는 환난과 박해의 상황에서 로마서라는 편지를 수신했습니다. 로마 황제를 우상화해서 로마 황제를 신으로 믿지 않으면 박해 당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러니 로마 교회 성도들 입장에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있다면, 믿음에서 비롯된 고난을 왜 겪어야 하는지에 관한 회의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이 결과적으로 소망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다시 말해 소망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미 주어져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로 여겨짐의 결과 세 번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in) 의로 여겨짐의 결과 셋째는, 성도가 의인으로 여겨짐으로 인해서 소망을 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망을 품게 되었다는 말은, 단순하게 어떤 것을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소망의 의미는 언제 어디서든 생각만 하면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 따르면, 성경적인 소망은 단순하게 생각만 해서는 생기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소망의 생성 원리는 일종의 논리적인 단계를 따릅니다. 로마서 5장 3절과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in) 시작.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아멘.
논리적인 단계가 어떻게 연결됩니까? 환난에서 인내로, 인내에서 연단으로, 연단에서 소망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out) 다시 말해 처음부터 소망이 떡하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아무런 과정 없이 생각만으로 소망을 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소망은 어떻게 품을 수 있습니까? 소망을 품는 단계는 세 가지의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요. 첫 번째 단계는, 고난 당하는 상황에서 인내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고난 당할 때, 왜 이런 고난이 나한테 찾아왔느냐고 따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을 무작정 피하려고 시도하거나 외면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과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하나님께서 모두 다 알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보호해 주심을 굳게 신뢰하면서 인내합니다.
이렇게 인내하면, 연단이 만들어집니다. 헬라어로 연단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어떤 사람의 성격을 확인하거나 증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마다 고난의 종류는 다르겠습니다만, 고난을 인내하고, 인내하고 또 인내함으로써 끝까지 견뎌내면, 이전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단련된 성품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단련된 성품은, 참된 소망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환난에서 인내로, 인내에서 연단으로, 연단에서 소망으로 이어지는 이 논리적인 단계를 기억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환난이나 고난은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품고 있는 소망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로마서 5장 말씀에 따르면, 환난은 소망에 대한 확신을 극대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 소망을 품을 수 있도록, 인내와 연단의 과정을 기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렇게 생성된 우리의 소망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in) 시작.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장 5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부은 바 되었다는 표현은, 차고 넘치도록 제한 없이 콸콸 쏟아지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5절 말씀에 따르면 무엇이 쏟아집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제한 없이 콸콸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부끄러워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소망을 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차고 넘치도록 우리 마음에 쏟아져 내렸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신 성도들, 다시 말해 의인으로 여겨진 성도들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의로 여겨짐의 결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의로 여겨짐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화평과 은혜와 소망을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화평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얻게 되는 평안함이죠. 단순하게 평온한 감정이나, 기분, 내 삶과 환경에 영향 받는 평안함이 아니라, 내 삶이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관계없이,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누리고 있는 영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평안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는 무엇입니까? 구약시대까지만 해도 흠이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은혜에 서 있고, 믿음으로 들어감, 믿음으로 나아감을 얻은 것. 이것을 통칭하여 은혜라고 볼 수 있는데요. 성도는 의로 여겨진 결과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고난에 직면한 성도들이 소망을 품을 수 있는데, 그 이유인즉슨 환난이 인내를 만들어내고, 인내가 연단을 만들어내고, 연단된 성품이 소망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논리적인 단계가 기계적으로 무조건 통용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내의 단계에 머무를 수도 있고, 연단의 단계에서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소망을 품는 데에 고난이나 환난은 필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환난과 박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새가 날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공기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환난이다.”
박윤선 목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거룩한 무리라고 불리는 성도에게 환난이란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또한 이 환난으로부터 인내와 연단된 성품과 소망이 산출되는데,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차고 넘치도록 쏟아져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맺는 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오늘도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 가운데 평안함을 누리고 계십니까? 은혜의 자리에 나아감을 통해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계십니까? 어둡고 타락한 세상 가운데, 인내함을 통해 연단된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가지고 온전한 소망을 품고 계십니까?
로마서 5장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의로 여겨진 결과물들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흘러넘치고 있는지 돌아보시고, 진정한 소망을 품으며 살아가시는 모든 주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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