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7 수요] 아이는 부모의 신앙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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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99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 502 빛의 사자들이여
찬송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존귀하신 하나님, 지난 3일간 은혜로 지켜주시고 이렇게 삼일밤예배로 하나님 앞에 모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부족한 자들이 모여서 베푸신 은혜를 함께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어 예비하신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주님, 푸르른 5월 가정의 달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들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또한 우리가 속한 모든 상황 속에서, 또한 우리 양문교회가 하나님을 주로 모시는 믿음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를 믿음의 선배로 부르셨사오니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시고, 복음을 가르치게 하시며, 신앙의 본을 보일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주여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 가정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일터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긍휼에 긍휼을 더하사, 우리를 사용하셔서 주의 복음이 증거되게 하시고, 예수를 주로 섬기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깨워주시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밭에 잘 새기어 많은 결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시간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삼상 2:12-19
5월 가정의 달로 보내며 오늘도 가정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두 가문이 등장하고 있다. 두 가문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가문이다. 한 가문은 엘리 제사장의 가문으로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등장하고 있고, 다른 한 가문은 엘가나와 한나의 가문으로 그 아들 사무엘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두 가문의 아들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엘리의 아들들과 사무엘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이들 본성 자체가 차이가 났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그렇지 않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부모에게 있었다.
엘리의 일생에서 가장 큰 과오는 자식 교육에 실패한 것이다. 그가 노환을 앓으며 눈이 흐려진 상태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은퇴하지 못하고 성전을 지키던 것은 아마 마땅히 대를 이어야 할 자식들이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집을 맡길만한 인재로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들들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13절부터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드리려는 좋은 제물들을 가로챘다.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가로채서 자신들의 배를 불렸다. 그 뿐 아니라 22절 말씀을 보면,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하게 된다. 당시 회막에서 수종을 드는 일은 하나님의 예배와 관계된 자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예배자들을 겁탈하고, 하나님을 멸시 여겼던 것이다.
성경은 아들들의 신앙이 전적으로 아버지 엘리의 탓이라고 분명히 말씀한다. 12절 말씀의 한글 번역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히브리어로 직역해서 말씀드리면 “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라서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 엘리의 아들이 벨리알의 아들이라고 설명한다. 벨리알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비열함, 사악함, 악, 타락 등을 의미했고, 이 의미가 나중에 더 확대되어 사탄과 악마를 지칭하는 표현되기도 했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이 사악함의 아들, 타락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엘리가 바로 벨리알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식의 신앙교육에 실패한 엘리가 악한 존재였다! 자녀에게 하나님 경외하길 가르치지 않는 부모야말로 사악한 부모, 타락한 부모라는 것이다.
만약 엘리가 깨어있던 하나님의 종이요 백성의 최고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있었다면, 가슴 아프더라도 마땅히 자식들의 죄를 징계하고 모질게 책망했어야 했다. 매라도 들어서라도 그들의 악행을 그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고작 한 차례만 책망했을 뿐이다. 아비가 죄악된 아들들을 책망하길 그쳤다. 왜? 엘리에겐 하나님보다 자식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자식이 우상이 되기가 얼마나 쉬운가?
이어서 또 하나의 가문이 등장한다. 사무엘의 아버지가 될 엘가나는 매년 두 아내였던 한나와 브닌나를 데리고 실로에 있는 성소로 올라가 하나님을 경배하며 제사를 드리곤 하였다. 그런데 이 때에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다. 이들은 제사장이었으나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했다. 결국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사역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과의 친밀한 사귐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함, 단 한순간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누려본 적이 없던 그들이었기에, 이처럼 하나님을 멸시하며 온갖 악행을 저질러도 아무런 가책이 없었던 것이다. 왜? 그들 안에는 성령의 돌이키게 하시는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또 다른 가정을 보라. 엘가나 가정의 한나와 브닌나 이야기는 다들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한다.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 본래는 한나가 본처였는데 자식을 낳지 못하다보니 자식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브닌나를 또 취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브닌나는 본 처였던 한나와는 달리 보란듯이 자식을 낳는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브닌나는 한나를 깔보고 모욕한다.
한나는 비통에 빠졌다. 당시에 대를 잇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와도 같이 여겨졌다. 한나는 너무나도 괴로웠을 것이다. 더욱이 첩이었던 브닌나의 조롱과 멸시가 여기에 더해지자 울분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나는 그러한 번민과 슬픔을 가지고 실로에 올라갔을 때에 간절하게 지성소를 향해 울며 기도한다. 이때 한나가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했는가? 삼상1:10-11 을 보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이때 한나는 하나님께 약속을 한다. 가장 마지막 부분을 보라. 먼저 ‘드린다’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말이고, ‘삭도를 안 대겠다’는 것은 그를 구별해서 보통 사람들처럼 생활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구별해서 거룩히 드린 자로서 살아가게 하겠다는 말이다. 그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말로 보면 참으로 거창할 수 있으나 사실 이것이 오늘날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이다. 이러한 의미들이 잘 녹아져 있는 것이 오늘날 ‘유아세례’ 아니겠나?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를 스스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하기까지, 부모와 온 교회가 아이의 신앙교육을 위하여 힘쓰겠다고, 이 아이를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으로서 양육하겠노라고 하나님 앞에서와 온 성도들 앞에서 함께 서약하는 것이 바로 유아세례이다. 마치 본문 속의 한나의 서원처럼 말이다.
사무엘의 어머니는 먼저 이러한 훌륭한 신앙을 가졌던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고 기도하던 어머니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들을 주십시오. 나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아들을 주시면 그 일생을 다 드리고 하나님 앞에 바치겠습니다.’ 라는 것이다. 물론 아들은 아들대로 한 인격자이다. 어머니의 마음대로 아이의 인생을 정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머니의 시각에서 보자면, 지금 어머니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큰 것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린 셈이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드려진 아이는 그 다음에는 점점 자라나는 아이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 주시고, 이제 아이가 자라나면서 생각과 지혜가 자라갈 것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가치관을 목표로 살아갈 것인가’ 라고 고민할 시간이 분명 올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이러한 고민의 순간, 선택의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부모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세상의 가치관을 택할 수 밖에 없지만, 부모의 신앙에 영향을 받은 아이들은 이러한 고민의 순간에 최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습관이 깃들게 된다.
사무엘은 한나에 의해 젖을 땔 때까지 길러지게 된다. 그 후에 한나는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로 올라가 하나님의 전에 바치게 된다. 아마도 추측하건데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의 전에 드렸을 때 사무엘의 나이는 2살 이하였을 것이다. 여러분, 이 나이를 생각해보라. 아직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나이이다. 엘리 제사장을 찾아 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 아이를 선물 받았고, 자신이 서원했던대로 이 아이를 하나님께 바친다고 한 후에, 아이를 그곳에 내버려두고 곧장 뒤돌아 간다는 것은 어미로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는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길러 주실 것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단호하게 돌아설 수 있었다.
요즘 시대는 어떠한가? 과잉보호 때문에 자식을 오히려 망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적절한 훈계와 지침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 내 새끼만 귀하다보니 자식들의 인성과 예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젠 더 나아가 자식이 우상이 된 시대이다. 하나님을 뛰어넘어 자식 하나만을 바라보고 자식에 목숨 걸고 자식에 모든 희망을 거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내가 내 손에 움켜쥔 자녀들을 놓아주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자녀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한다면, 결국 언젠가 부모는 자녀 곁을 떠나게 될 것이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자녀들은 그 문제를 홀로 해결할 방법도 모르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도 모르기에 쉽게 쓰러질 수 밖에 없다. 결국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하나님의 자녀이오니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아이로 기르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이 아이를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주의 은혜로 이 아이를 이끌어 주옵소서’ 한나의 기도와 같이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단지 이것으로만 그친다면, ‘하나님이 알아서 키워주실테니 난 더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자녀를 방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본문 속의 한나는 사무엘을 결코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저는 이 부분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무엘은 성전에서 자고 일어나 성막에서 봉사하는 아이로 자라간다. 레위인들이 일반적으로 하던 일들을 배우며, 엘리 밑에서 율법을 배우며 그 시대에 필요한 공부를 하며 자라게 된다. 이 시기에는 어린 사무엘이 어머니 한나의 영향력을 떠난 채로 자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물리적으로 부모와 떨어진 채로 성전 안에서 보고 배우며 자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나는 이 때에도 사무엘에게 강려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디에서 알 수 있나?
삼상2:18-19 을 함께 읽어보자.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섬겼다고 기록한다. 당시 세마포 에봇은 제사장들이 입던 옷이다.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을 만드는데 그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금을 얇게 쳐서 오려 실을 만들고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에 섞어 정교하게 짜야 하는데 이를 만드는 것은 보통 손 많이 가는게 아니었다. 방금 읽은 말씀을 보면, 어머니 한나는 매년 제사를 드리러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세마포 에봇 겉옷을 손수 지어서 사무엘에게 주었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여러분, 민4장을 보면 제사장 직분은 30세 이상부터 가능하다고 말씀한다. 본문 속의 사무엘은 구체적인 나이를 들지 않았지만, 18절에 “어렸을 때” 라고 말씀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무엘은 아직 제사장 직분을 받을만한 나이가 아니었다. 당연히 정식 제사장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한나는 사무엘에게 제사장 옷을 지어 입혔는가? 여기서 한나의 지혜를 찾아볼 수가 있다. 한나는 사무엘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세워지기를 바랬다. 어머니의 이와 같은 마음은 매년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사무엘의 옷을 지어 올라간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무엘은 비록 어려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 할 수 없는 위치였으나, 한나는 사무엘에게 매년마다 제사장 옷을 지어주었다. 매년 성장해 가는 아들을 보며,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였고, 성장한 만큼 새로운 옷을 지어 입혀 주었다. 진정한 부모란 자식의 성장을 관찰하는 부모이다.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관찰하고 그 수치만큼의 더 큰 옷을 준비하는 부모이다.
제사장의 세마포 에봇은 제작하기에 대단히 손이 많이 가는 옷이다. 그 옷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는 매순간 자식을 생각하며, 그 성장한 치수를 기억하며 옷을 짰을 것이다. 그것도 일반 평상복이 아닌 제사장의 옷을 말이다. 한나는 아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세워질 수 있기를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땀 한땀 옷을 준비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부패한 엘리 제사장 가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시금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옷을 지었을 것이다. 아들을 생각하며 때로는 미소를 지으며, 때로는 눈물어린 기도로 옷을 지어갔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정성어린 기도의 결과물이던 세마포 옷은 사무엘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사무엘은 어릴 적부터 그 옷을 입음으로 제사장의 꿈을 키워갔다. 비록 나이가 되지 않아 제사장 직무를 감당 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 존전에서 그 꿈을 조금씩 키워갔다. 사무엘을 둘러썬 타락한 제사장들과는 달리 오로지 하나님께 붙들린 인생이 되어 그분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비록 아직은 어려서 감당할 수 없더라도, 훗날 기회가 주어지는 그 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인생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어머니의 옷을 통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어떻게 반응하는가? 나는 똑바로 살려고 했지만, 나는 경건하게 살고자 했지만, 나는 착하게 살고자 했지만,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다들 이정도는 하고 산다고, 이 정도는 하나님도 이해하시고 눈감아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엘리 제사장과, 하나님을 대적하고 업신여겼던 홉니와 비느하스의 타락한 생활들을 눈으로 지켜 보며, 사무엘이라고 죄의 유혹들이 없었겠는가? 남들 하기 좋아하는 것, 남들 갖고 싶어하는 것들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 순간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어머니 한나가 지어준 그 옷은 사무엘의 마음을 순간순간 잡아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토록 암울하고 타락한 시대 속에서, 오히려 그 타락의 중심이던 성전에서 살아가면서, 주변에는 온통 타락한 제사장들만이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그 옷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을 느끼시는가? 믿음의 가정을 세워가기 위하여 어떠한 감동이 오시는가? 말씀 앞에 어떤 결단을 하시겠는가? 하나님 앞에서 부모로서 겸손히 엎드리라.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한나와 엘가나는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사무엘에게 보여주었다. 부모가 먼저 신앙의 모범이 되었다. 매년마다 성소에 찾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모습들을 보며 사무엘은 부모의 신앙을 배웠다. 또한 힘들게 얻은 아이를 하나님께 드렸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눈물로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기에 사무엘과 같은 위대한 사사, 제사장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신앙교육은 바로 나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는지,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신앙교육인 것이다. 어두운 세대 가운데서도, 마치 영적 암흑기를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거룩하게 구별되이 살아갔던 사무엘이 있기까지 그 어머니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것을 분명하게 붙들고 가시길 바란다.
물론 이 자리 가운데 자녀들의 신앙문제로 많은 고민과 노력들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 줄로 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되도 자식만큼은 안되더라 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는다. 그렇다. 쉽지 않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더 엎드러져야 하고, 얼마나 더 몸부림 쳐야 할지 모른다. 시56 의 말씀처럼 내 눈물의 양이 얼마나 더 채워져야 할런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바로 여러분을 포기 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지금도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인내함으로 끈기를 가지고 부모요 신앙의 선배로서의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 주시기를 바란다. 단12:3 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말씀하셨다. 믿음의 후손들을 세우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치는 모든 수고들이 결국에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을 별과 같이 빛나게 만들 것이다. 이 사실을 확신하며 위로받으시길 바란다.
믿음의 선배요 부모되시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 선배, 그 부모의 자리에 두신 이유가 있음을 잊지 말라. 여러분들을 통하여 믿음의 후손들에게 복음이 흘러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여러분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게 하기 위함이다.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하기 위함이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수많은 관계들과 환경들 속에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인 여러분들의 수고로 결국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날이 올 것을 확신하라. 그 기쁨의 날을 믿음으로 내다보며, 오늘도 눈물로 씨를 뿌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여. 오늘 말씀처럼 먼저 우리가 더욱 하나님 앞에 엎드러질 수 있길 원합니다. 더욱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살아낼 수 있길 원합니다. 부모된 우리가, 신앙의 선배된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살아낼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주어진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여러 환경들 가운데 이와 같이 먼저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주옵소서. 그래서 우리를 통하여 가정이 변화되고, 우리를 통하여 일터가 변화되며, 우리를 통하여 더욱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먼저된 자로서 겸손히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옵고, 우리를 통하여 많은 믿음의 후배들, 믿음의 후손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먼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혹 내가 부모로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가정이 변화되지 않고 있다면, 혹 내가 먼저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내 남편과 내 아내가 전도되지 않고 있다면, 혹 내가 먼저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일터가 변화되지 않고 있다면,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겸손히 돌아보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기억하며 무엇보다 나에게 주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삶이 어떠한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이 어떠한지 믿음대로 살아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들이 나를 통하여 그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주님, 아직도 우리 주변에 주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의 분량에 이르지 못한 연약한 지체들이 많음을 봅니다. 천하보다 귀한 그 한 영혼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보게 하시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과 압도하시는 은혜가 임하도록 간절히 부르짖고 구하는 우리가 되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의 자비하심에 호소하며 다시 한번 간구합니다. 주여, 우리의 가정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내 아내와 남편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내 형제, 내 이웃들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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