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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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현생복귀 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말인데요.
많은 현대인들이 지치고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 현재의 상태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 도피를 합니다.
컴퓨터 게임 안으로 도피를 하기도 하고요.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도피를 한 곳에서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기쁨을 맛보기도하고 무엇인가를 성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잠깐이고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되죠. 이를 현생에 복귀했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어느 누구도 현생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가진 것은 온라인에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나의 몸이고, 이 몸은 외부적인 공급으로만 살아갈 수 있으며, 그렇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각자의 길을 찾듯이 ,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길을 찾습니다.
무엇이죠? 빨리 천국가고 싶다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주님 나를 빨리 불러주소서
그렇게 좋은 말처럼 들리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가 가진 믿음의 신앙안에서는 나름 힘들다는 표현입니다.
아버지께로 가면, 더 나을텐데, 천국에는 고통과 슬픔이 없다는데 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요. 묵묵히 자리를 지켜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활을 사모하며 소망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복음 전도의 사명이었고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과 환란을 모두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 힘은 앞선 4장에서 봤듯이 그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두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새번역 성경
낙망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18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장차 올 영광에 대한 소망에 확신함을 갖고 있었던 바울은 당장의 겪는 고난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도 바울은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요.
5장1절부터 보시면 바울은 두 가지의 집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첫번재 집은 땅에 있는 우리 인간의 장막집이고 또 하나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입니다.
여기서 집은 사람의 몸을 의미합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이란 것은 인간의 육체를 의미하고 그것이 무너졌다는 것은 인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외적인 연약함은 늘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고난은 늘 죽음을 묵상하게 된 것이죠.
바울이 확신한 것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즉 바울이 죽게되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늘에 잇는 영원한 집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원한 집이라는 것은 천국이라는 공간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과 대비되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죽음 이후에 성도가 입게 될 또 다른 몸을 칭하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비록 현재 고난을 받는 상황이지만, 하늘 처소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3절의 말씀을 보면 바울이 이 장막을 벗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만 경계하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벗은 몸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벗은 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람들의 몸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는데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원론적 몸 이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몸은 부정적인 것 영은 긍정적인 것, 구원은 몸이라는 감옥에서 영혼이 탈출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벗은 몸이라는 개념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구원의 개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부활의 의미를 굉장히 축소시킨 것이죠. 4절에 바울은 비록 지금은 육체의 몸을 갖고 연약함과 고통속에 살아가며 탄식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바라보는데 이 장막을 벗어버리는 것 즉 우리의 영혼이 주님과 함께 하기를 갈망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부활의 몸을 입기를 고대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결론적으로 이를 이루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바울이 가진 헛된 소망이나 바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미래를 준비하고 계시죠.
그래서 바울의 이러한 말은 로마서에도 기록되어 있는데요.
로마서8:23 “그뿐만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주신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든든하다. 용기가 있는 것이죠.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속에도 여러가지 환난과 고난이 있지만 그 가운데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산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망이 있는 성도는요. 바울이 고백하는 8절의 말씀처럼 이 세상에서 미련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5:8 “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1: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빌립보서에도 바울은 세상을 떠나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오히려 낫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을 오히려 원합니다. 그러나 아직 육체 가운데에 있음으로 주님과 멀어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바울은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아가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데요. 그것은 바로 7절에 나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만이 주와 가까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바는 5장 9절의 말씀과 같은데요.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의 결론은 결국 어떤 상황이든지, 육체 가운데 머물러 있어서 여전히 고난과 고통이 자신을 찾아오지만 소망을 품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주와 영원히 함께하는 죽음 이후의 삶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요. 우리는 어떻게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성도는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이지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히브리서 십일장을 생각나게 합니다.
히브리서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십일장에 나열된 인물들은 전부 다 믿음의 인물이지만 결국에 믿음으로 순종한 인물들입니다. 믿음은요. 결국 순종의 열매를 맺게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이 순종은 또한 믿음의 영역이기에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전히 육체를 갖고 있지만 갈라디아서 말씀처럼요.
갈라디아서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시도록 나를 죽이는 것, 그래서 그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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