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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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의 문이다 좁고 협착한 길로 가라 생명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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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기도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시간 내 삶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인정하며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임재 안에 거하게 하시고 주의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오늘 사모리트릿 마지막 일정이 있습니다. 위로와 회복의 은혜 속에서 잘 마치게 하시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드리는 예물을 받아 주옵소서. 이 예물이 소금과 빛 되어 세상에 쓰일 때 하나님께는 영광, 세상에는 권능, 드린 손길에는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드리고 베풀고 나눌 때 오히려 풍성해지는 원리를 깊이 깨닫게 하시어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성호를 높이며 찬양을 드린 찬양팀 위에 하늘의 은택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주님을 찬양하는 그 입술이 복되고 복된 입술이 되게 하시고, 그 삶이 날마다 새로운 은혜로 채워지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사모함으로 듣게 하셔서 말씀의 온전한 뜻과 능력을 충만하게 받게 하옵소서.
성령 안에서 간절한 마음과 큰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셔서 영혼이 풍성해지고 삶이 풍성해지는 은혜의 자리로 영적인 깊은 지경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이 모든 것 사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7:13–14 NKRV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서론

예화 프랑스 파리 개선문

프랑스 파리 시내 북서부, 샤를 드골 광장 중앙에 서 있는 개선문은 에펠탑과 함께 파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소입니다.
개선문은 그 이름대로, 프랑스군의 승리와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명령으로 건립되었습니다. 이 개선문은 로마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그대로 본떠 설계되었는데, 로마 시대에 개선문 아래로 행진하도록 허락된 자는 영웅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땅을 정복한 황제와 그 부하들이 개선문 아래로 행진을 하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파리에서도 2차 세계대전 때 4년간의 독일 지배에서 벗어난 1945년, 파리를 해방시킨 샤를 드골 장군이 이 개선문 아래로 당당히 행진했다고 합니다.
파리에 있는 개선문은 높이 약 50m, 폭이 약 45m에 달하는 웅장한 크기입니다.
전쟁 영웅은 이렇게 큰 개선문을 지나갑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성도들은 더 크고 웅장한 문 아래로 행진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승리의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께서 진정한 영웅으로서 추앙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좁은 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시지요?
오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이 말씀을 통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신앙과 삶에 대해서 깨닫고,
우리의 신앙과 삶의 열매가 생명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생명의 문은 좁은 문입니다.

마태복음 7:13 NKRV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예화 예수탄생교회

이스라엘 베들레헴에는 예수탄생교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베들레헴 시내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예수탄생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로서 예수님의 탄생 장소에 지어졌습니다.
십자가 모양으로 건축된 예수탄생교회의 규모는 길이 52m, 넓이 24m인데 교회의 출입문의 높이는 1.2m에 불과합니다. 이 출입문으로 들어갈 때는 몸을 완전히 숙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이 문은 ‘겸손의 문’ 혹은 ‘좁은 문’으로 불립니다.
이 문을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제가 준비를 했습니다.
예수탄생교회 사진 1,2,3 / 예수탄생교회와 개선문 비교
제가 이 문을 보면서 이런 묵상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 문으로 교회를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좁은 문의 의미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기독교를 ‘겸손의 종교’라고 하기도 하는데,
좁은 문의 신앙은 생명의 신앙이고, 또한 겸손의 신앙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두 개의 문의 특징을 알 수 있고,
각각의 문에 들어갔을 때 무엇을 얻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개의 문의 특징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길의 특징
첫 번째, 문이 크다
두 번째, 길은 넓다.
세 번째,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
그런데 결과는 멸망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길의 특징
첫 번째, 문이 좁다
두 번째, 길이 협착하다. 길이 험난하다.
세 번째, 그래서 좁은 문을 찾는 자가 적다
그런데 결과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모습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모습을 생각해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의 의미를 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 분위기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가득한 분위기였지만
정작 예수님 자신은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분위기와 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귀를 타고 들어가신 예수님의 그 자세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것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 속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시며 죽으시는 것으로
끝까지 일관됩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이후에는 어떠셨습니까?
부활의 영광이 빛나는 모습으로
제자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성도들의 추앙을 받으면서
예루살렘으로 재입성하실 수도 있으셨을텐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잠깐 잠깐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시고 부활의 믿음과 소망을 주시고
그렇게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우러러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구름을 타고 천군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영광스런 기쁨의 날이요
넓은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슬픔과 탄식의 날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큰 문입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주 크고 넓은 길이 나옵니다.
길이 넓어서 성공을 향해 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또 함께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뭔가 더 좋은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멸망입니다.
또 하나는 좁은 문입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협착한 길, 험난한 길이 나옵니다.
가는 동안 많이 힘들겠죠. 더군다나 찾는 사람도 적습니다. 그래서 뭔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면 결과는 최악입니다. 멸망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결과는 최상입니다. 생명, 영생
어느 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결코 편함이나 숫자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생명을 얻게 하는 문’인가로 판단해야 합니다.
좁은 문을 선택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결코 다수가 아닙니다.
생명을 얻는 문으로 들어가는 소수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사람이 yes 라고 하든, 모든 사람이 no 라고 하든 상관없이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yes 하고,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no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분명한 신앙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 어떤 다른 것도 이 신앙이 흔들리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로마서 8장 18절 말씀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로마서 8:18 NKRV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히브리서 11:16 NKRV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더 나은 본향’은 ‘더 좋은 본향’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본향은 더 좋은 것이기에 더 좋은 본향에 대한 소망은
이 세상의 소망과 비교할 수 없는 더 좋은 소망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는 것이 더 좋은 소망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 좋은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더불어서 하늘에 있는 본향이 더 좋은 본향이며 사모해야할 더 좋은 소망임을
가르쳐주시고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여러분~
인생 길지 않습니다. 엄청 빨리 지나갑니다.
물질적인 어떤 것, 명예와 권력과 관련된 어떤 것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무엇보다 영적인 소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마태복음 7:14 NKRV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길이 협착하다’

‘협착하다’ 라는 단어에는 원래 ‘박해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에는 박해짓누름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길에 접어드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내내 어려움압박이 이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용조목사의 말씀

하용조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길이 쉽고 편할 것이라는 생각, 이런 생각은 애초에 처음부터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좁은 문을 선택해서 좁은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현재 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협착한 길을 가고 있는가?
좁은 길을 가고 있다면,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신앙적인 어려움과 힘듬은 당연한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봤을 때 어떤 힘듬도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또 스스로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혹시 넓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편하다고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처음부터 좁은 길입니다. 갑자기 좁아졌다거나 점차적으로 좁아진 것이 아닙니다.
좁은 문과 좁고 협착한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에 사람이 몰립니다.
넓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좁은 길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좁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좁고 협착한 길을 좋아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좁은 길은 끝까지 좁은 길이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좁은 길 가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좁은 길을 가면 그 길 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보면,

좁은 길을 간다는 것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좁은 길을 간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좁은 길을 간다는 것은 헌신하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면 끝까지 좁고 협착한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절대로 조금 더 편하자고 넓은 길로 가서는 안됩니다.
비록 힘들지라도 생명을 얻는 길로 끝까지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로 가는 신앙입니다.

예화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찬송가의 배경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이 찬송가는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찬송가입니다.
이 찬송가는 작사가 크로스비(Fany Corsby, 1820-1915)와 작곡가 피비(Phobe Palmer Knapp, 1839-1908)가 함께 만든 곡인데,
먼저 이 두 사람 모두에게 아주 깊은 신앙적인 고백이 있습니다.
작사가 크로스비‘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찬송가를 작사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크로스비는 작사가 뿐만 아니라 찬양 사역자, 선교사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불편해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분이었습니다.
크로스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육신의 눈을 멀게 하신 대신에 나의 영의 눈을 열어주셨다. 내가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찬양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찬양시를 쓰게 하셨음을 나는 믿는다. 만약 내가 육체의 눈을 떠서 세상 것으로 장애를 받았더라면 내 어찌 그리 많은 찬송시를 쓸 수 있었으랴.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기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노래하게 하련다.
내가 맹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섭리로 예정된 것 같다. 나에게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셨음을 감사한다.”
크로스비의 아주 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곡의 작곡가 피비는 16살에 결혼했는데 남편은 메트로 폴리탄에 보험회사 부사장으로 일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보험을 많이 들었겠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남편의 보험금이 아내에게 남겨졌습니다.
그런데 피비여사는 이 많은 돈을 모두 구제사업에 사용하였고, 자기의 집에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해서 계속해서 찬송가를 작곡했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500여곡의 찬송가를 썼습니다.
신체적인 부족함 속에서 하나님의 부요케 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가족이 떠난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부요하지 않음을 선택했지만 그대신 영혼의 부요함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깊은 두 사람이 만나서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이 찬송가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 찬송가는 1873년 어느 날 크로스비가 53세였을 때 절친하게 지냈던 피비크로스비를 찾아갔을 때 즉석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피비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작곡했는데 여기에 맞는 가사를 부탁하고 싶어 크로스비를 찾아간 것입니다. 피비는 오르간으로 작곡한 멜로디를 쭉 한번 연주하고 두 번째 다시 연주하려고 했는데 크로스비가 갑자기 이 노래의 가사를 즉석에서 생각해냈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알고 보니 크로스비가 이 음악을 듣자마자 마음에 굉장히 큰 영감과 감동이 임해서 지난 주일에 들었던 설교 말씀이 스쳐갔던 것입니다. 그때 읽었던 성경 구절 히브리서 10장 22절 말씀은,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크로스비‘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것에 대해서 계속 묵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음악을 들으니 바로 생각이 정리되면서
“그래, 내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바로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 거듭나서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구나.”
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예수님을 구주로 삼으셨지요?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셨지요?
이 세상에서 하늘의 영광을 보고 계시지요?
그래서 우리도 모두 “이것이 나의 찬송이요 이것이 나의 간증”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조건이 다르지만, 환경적인 조건이 다르지만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 좁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생명의 문을 열고 들어가 생명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비록 협착하고 고생스러운 길이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직 이 길에서만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영광이요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줄 수 있는 편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좁은 길. 협착한 길을 가고 있지만 모든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고 천국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 땅에서 이미 천국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의 부요함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교회에 와서 영혼이 부요해져야 합니다.
예배하면서, 기도하면서, 찬양하면서, 봉사하면서, 선교하면서
또한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도 영혼이 부요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함으로
영혼이 부요해지는 천국의 삶을 살고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좁아도 확실한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길입니다.
기쁨의 확신이 있는 길입니다.
영광의 확신이 있는 길입니다.
영생의 확신이 있는 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생명을 얻는 좁고 협착한 길을 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고 명령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신앙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좁은 길로 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셔서 생명을 얻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통한 기쁨과 은혜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가족이, 모든 성도들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좁은 길을 가는 믿음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찬양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헌신하게 하옵소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기뻐하게 하옵소서. 감사하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하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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