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하시며(사도행전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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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 설교로 사도행전 1장1-2절 말씀을 선택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를 통해서 구원 이 성취된 지금우리가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참된 교회의 의미를 되새기 기 위함입니다. 본문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1–2 (NKRV)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한 사람이 어떤 인격과 소양을 지녔는지 보여 주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상의 삶입니다. 일상 의 삶보다 더 구체적으로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크리스천인 우리가 과연 얼마나 참된 신앙을 지녔는지는, 현재의 삶의 모습에서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신앙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교회 안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는 누구나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는 것은 교회를 나선 그 시점부터 교 회 밖의 삶에서 시작됩니다.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삶을 통해 주님이 나타날 때 우리 는 진정한 크리스천일 수 있습니다.
성경 마태복음부터 요한복음까지 사복음서가 쓰이기 전과 로마서부터 갈라디아서 같은 교회에 보 낸 교리서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주님의 삶이 먼저 있었음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복음서가 무엇입니 까? 복음서란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삶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삶을 통 해 인간을 구원할 구원자이심을 친히 보여 주셨고, 그 삶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 복음서입니다. 그렇다면 교리서란 또 무엇입니까? 교리서란 주님께서 보여 주신 주님 의 삶에 대한 해석입니다. 만약 주님의 삶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복음서와 교리서는 아예 존 재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와 교리서가 절대적 의미를 지닌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그보다 선행했던 주님의 삶으로 인함입니다. 그 복음서와 교리서 한가운데에 사도행전이 자 리 잡고 있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교리서, 이 순서가 던져 주는 메시지를 이해하 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행전은 주님을 좇는 ‘사도들의 행전’이란 의미로, ‘행전’이란 ‘행함의 기록’이란 뜻입 니다. 이 행함의 기록이 복음서와 교리서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믿는 사 람이라면 주님을 좇아 행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 삶의 토대는 성경적 교리, 즉 성경 말씀이 어야 함을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주님을 믿는 우리의 삶은 복음과 교리가 한데 하나된 결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일상의 삶을 통해 구원자이신 주님을 만나고, 또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삶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일상의 삶이 주 님을 좇았던 제자들의 기록인 복음서와 그 삶의 토대인 말씀을 일깨우는 교리서로 연결하는 사도행전이 될 때, 우리의 신앙은 의미있을 것입니다. 그 삶의 원동력이 예수 그리스도이심 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첫머리인 오늘의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 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행 1:1–2).
사도행전은 의사이면서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 내 용입니다. 본문에서 ‘내가 먼저 쓴 글’이란 누가가 데오빌로를 위해 사도행전에 앞서 써 보낸 누가복음을 일컫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자신의 첫 번째 편지인 누가복음을 상기시키 는 것으로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누가복음의 핵심을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 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한 것 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먼저 쓴 누가복음은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삶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유의할 바는 누가가 예수님의 삶을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 작하심부터’라고 설명하면서, ‘행하시며’라는 동사를 가장 먼저 사용하였다는 점입니다. 예 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가르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르치시기 전에 예수님은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을 먼저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위대한 것은 그 가르치심이 선행된 당신의 행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하고 사 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에도 먼저 행한 후에 가르칠 때 잘 전달되고 교육되는 것을 경험하셨 을 것입니다. 만약 주님의 행함없이 가르침이 이어졌다면 그 가르침은 지금까지 전해지기는 커녕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택하여 가르치시기 전에 성자 하나님이시면서도 우리 연약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성육신의 삶을 먼저 사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죄로 더럽혀진 사 람들과 부대끼며 함께 사셨습니다. 또 죄 없으시고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은 죄인이 받아야 하는 침례를 받으실 필요가 전혀 없었음에도 죄인인 침례 요한 앞에 친히 무릎을 꿇고 먼저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는 가르침을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행해야 할 것을 철 저하게 행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뒤에 따르는 그분의 가르침은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 말 씀 자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심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주님께서 십 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을 제물 삼아 저의 죗값을 대신 치뤄주심으로 제가 주님을 통 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그만한 가치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 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그 분의 전 생애는 이 일에 집중되었습니 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누구인지 먼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우리가 이해한 다음에야 우리 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의 생명을 먼저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난 지 금 당신이 누구신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가르치심은 우리 생명 의 원천이며, 그분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제 남 은 것은 우리 삶이 그 복음에 뒤이은 사도행전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우리 일상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여주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이라는 책 제목은 헬라어 ‘프락세이스 아포스톨론Πράξεις Ἀποστόλων’을 우리 말로 직역한 것입니다. 우리말 ‘행전’은 그것이 단수인지 복수인지 구별되지 않지만, 헬라어 ‘프락세이스’는 ‘행함, 행실, 행위’를 뜻하는 ‘프락시스πρᾶξις’의 복수형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이 단어를, 행동을 의미하는 단수형 ‘act’가 아닌 복수형 ‘acts’로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일시적인 감정에 따라 한 번 주님을 좇아 ‘act’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일상의 삶이 주님을 좇는 ‘acts’로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삶은 예 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사도행전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한 교회가 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삶에 달려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부족한 우리를 교회로 불러 모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이제부터 우리 자신을 주님 안에서 한 번의 행동이 아닌 acts로 지속적인 삶으로, 사도행전으로 일구어 가십시다. 우리의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세상에 나타내는 주님의 일꾼이 되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는 우리의 허물과 부족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미천한 우리를 이곳으로 부르시고, 우리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낮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우리 자신을 주님의 행함으로 내어놓습니다. 우리 삶이 주님 안에서 이 시대를 위한 사도행전의 삶으로 일구어지게 하옵소서. 세상에 변화시키 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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