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바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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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사람은 잘난대로 살고 못난사람은 못난대로 산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영감상투 비틀어지고 할멈신발 도망갔네 허
이 노래는 1993년도에 신신애씨가 발매한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KBS 가요 톱텐에서 4위라는 성적을 내며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신승훈 등의 다수 유명 가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성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 노래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한 기사는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흥행의 비결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요지경’ 이 노래는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의 비행을 풍자한 것으로 최근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지켜본 대다수 국민들의 허탈감을 지우기 위해 노래로 위로 받고자 하는데서 서민대중에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다.
정말이지, 법을 주무르는 판·검사나리들의 재산마저 수억에서 수십억대에 달하니 할 말을 잃어버린 국민들의 한탄스런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윤리와 도덕을 가장 신조해야 할 그들마저 물욕으로 가득 차 있으니 이젠 누굴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나. 그래서 그 잘난 사람들은 잘난 대로 한 세상을 멋지게 살고, 못난 우리 서민들은 못난 대로 못난 세상 한숨지며 살면 되지 않겠는가에 대한 물음과 함께 이 노래 속에 뼈저린 애환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가사에 ‘짜가 짜가’는 최근 돈을 무기로 삼아 논문을 대필해서 얻은 석ㆍ박사를 비롯, 실력이 없어 대학교수 자리를 돈으로 샀던 사람들, 남이 대신해 써준 문학창작품이나 서예, 그림 등으로 문필가, 예술가 행세를 하는 사람과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들어간 대학생, 공직을 뇌물로 바치고 턱걸이했던 사람들에 대한 비꼬는 가사라고 할 수 있다.
93년이면 제가 2살때 입니다. 지금 저는 32살인데요. 이 기사의 의도가 작곡가의 의도와 일치한다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 달라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전이 부패하고, 여전히 타락했습니다.
이런 현실 속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 속에서 축소 성령의 역사
성경 속에서 축소 성령의 역사
오늘 본문 속 상황도 답답하고 암담하긴 매 한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40일을 함께 보내고, 예수님께서 이제 막 승천하시기 직전입니다. 좀 주석을 가하자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죽었던 예수님의 부활까지 목격하며 자들은 지금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최고의 신비 체험을 한 셈입니다. 그럼 그때 그렇게 전무후무한 기적이 일어난 상황인데 그 상황은 좀 괜찮았을까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6절입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제자들은 여전히 로마 식민지배에 아래 있었고, 그들의 행동은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의 통치로부터 자유로워 지며, 다시 한번 더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누릴 수 있냐는 질문겁니다. 이렇게 질문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들은 약속하신 성령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도들은 많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특정 왕이 등장을 해야 이스라엘의 주권이 회복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구원해 줄 혁명가가, 메시아가 바로 성령인 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제자들을 무작정 매도하는 것은 매우 잘못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 제자들이 할 수 있는 당연한 생각이며, 어쩌면 최대의 생각이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구약 본문에서 구원과 회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이런 질문은 이기적인 태도이기 보다, 간절하고 진심이 담긴 질문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아직도 자신의 생각의 틀안에 성령의 역할을 가두었고, 현실에 매몰되어 바른 성령의 역할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현실 속에서 축소된 성령의 역할
현실 속에서 축소된 성령의 역할
하지만 앞서 말한 성령의 역할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것은 비단 제자들의 모습만은 아닙니다. 우리 또한 우리에게 처한 현실에 매몰되어 성령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수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비전이나 사명의 틀안에 갇혀 성령의 역사를 축소 시키기 십상입니다. 앞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우리는 어떤 상황에 살고 있나요?
우리나라의 초고성 성장, 압축 성장은 우리 나라의 자랑이지 않습니까? 하지마 그 비결을 자랑할 때면, 가장 먼저 높은 교육열이라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학습이 강요되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눈물이 숨어져 있지 않습니까?
이뿐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처럼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율로 상위권을 놓쳐 본 적이 없습니다. 21년 OECD 통계에 의하면 사망자 10만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사고가 23.6명으로 전체 1위를 차지했습니다. 평균 2배를 넘는 수치입니다.
이외에도 공정성 문제, 젠더 갈등, 극단적으로 편향된 정치 문화, 저급한 인권 문제 쉽지 않은 상황이 너무나도 가깝게 우리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뭐 이런 부분이야 언제나 있었던 문제라고 할지라도, 모든 매체에서 기독교가 참 욕을 많이 먹고 있지 않습니까?,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이 흥행 코드인 것처럼 드라마나, 영화의 서사와 전혀 상관없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요소들은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기독교는 참 녹록치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가 분명 로마의 지배 아래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도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가진 많은 이들이 이런 현실의 벽이 너무 높고 단단해 보여 현실에 매몰되어 버린다거나,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역할을 스스로 제한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냉담하고 암담한 현실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성경 속 성령에 대한 바른 제언
성경 속 성령에 대한 바른 제언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본문은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크로노스' 입니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으로 물리적인 시간을 이야기할 때 사용합니다. 이어 ‘시기’입니다. 시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카이로스’ 입니다. 카이로스는 특정 사건의 시간 혹은 기간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주로 end time 곧 종말과 관련하여 사용할 때 많이 사용합니다. 크로노스가 직선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점의 시간인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직선의 시간 즉, 너희가 생각하는 그 시간이나 점의 시간 즉, 특별한 종말의 시간이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 있다. 그러니 그 모든 시간이 주님의 주권이니 너희는 신경 쓸 바가 아니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그들의 비좁은 식견과 그릇된 오해로부터 바른 성령의 역할을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어서 성령이 우리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바로 증인된 삶입니다.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면 너희는 온 땅에 이르러 내 증인이 될거야.”
여기서 땅끝이 어디인가? 땅끝은 참 많은 논란을 일으켜 왔습니다. 이 땅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땅끝’은 구체적인 장소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교학적으로 해석하여 ‘땅 끝’을 미전도 종족이라고 말하며 선교를 강력하게 동참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역사적으로 해석하여 바울은 그 때 당시 ‘땅 끝'이 스페인인 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땅 끝’은 스페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1차적으로 파땅끝은 모든 세계를 뜻하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즉, 지구의 모든 땅과 모든 사람들 말입니다. 즉 지리적이고 민족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이죠.
제자들은 이렇게 성령을 통해서 성령이 함께 하시면 너희가 복음을 전하게 될 거라고 이야기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을 자신들이 당면한 정치적인 이슈안에 가두어 생각했던 제자들의 오해를 세계 복음화 즉, 더 크고 넓은 영적인 이슈로 그 생각을 교정해주시고 전환시켜 주고 계신 것입니다.
현실 속 성령에 대한 바른 제언
현실 속 성령에 대한 바른 제언
오늘 우리는 이 땅끝을 우리가 가야할 대상, 지역을 포괄한 영적인 의미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앞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또 바라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잠시 언급해 드렸습니다. 제가 오늘 말한 사회 문제들이 여러분들의 현실을 다 대변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 앞에 마주한 현실들이 참담하다고 하여 성령의 일하심에 대한 기대감과 이루어 가실 하나님 나라의 소망마져 잃어 버리면 안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계획과 일하심은 우리의 현실을 뛰어 넘고, 우리의 생각을 일하시기 떄문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박식하다는 사도 바울도 땅끝을 스페인이라 오해하지 않았습니까? 그당시 21세기에 이렇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면 아마 핏대를 세우며 현실을 부정할 것입니다. 삼층천을 경험한 사도바울도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 수 없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최고의 제자 베드로에게 2014년에 박은혁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훗날 신학 대학원에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제 아무리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들 그 베드로가 무슨 수로 이를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존경할 만한 사도라 뽑는 이들도 하나님의 뜻을 눈꼽만큼도 알 수 없습니다.
결론
결론
우리 또한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지 못하고, 또 알 수도 없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을 보며, 낙심하거나, 일하심을 짐작하기 어렵다고 하여 소망을 잃어 버리지 마십시다. 도리어 내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하나님 나라의 플랜을 이루어 나가고 계시구라는 절망을 소망으로 삼아 도리어 하나님을 기대하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