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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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장례에 참석한 사람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부활생명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Notes
Transcript
(1) 믿음의 가정인 경우 1
묵상기도하심으로 고 ( )의
하관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시겠습니다.
찬송가 480장 이 찬양 부르신 후에 ( ) 우리를 위해 대표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1:17–27 NKRV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예수님의 무덤앞 성지순례의 장소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했던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의 반응은 당연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까? 부활했다고 새생명을 얻었다고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칫하면 신앙인은 비신앙인과 차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마르다는 예수님이 조금만 빨리 오셨더라면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의 말에 동의 하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안이갑 집사님의 소천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실 것입니다. 내가 이러이러했더라면 하면서 자책하는 부분도 있을수 있습니다.
과연그러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책임을 논하며 죽음에 대한 고통을 말하는 자들에게 전혀 새로운 답을 주시고 계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그리고 예수님은 오늘 그 나사로를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십니다. 그것은 수일후 예수님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이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라비의 일을 위문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소망을 말하는 자들은 없었던 듯합니다. 천국소망말입니다. 더디 오셔서 이미 죽은지 나흘되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하는 말이 저말입니다. 그리고 네오라비가 살아난다는 말에 마지막부활을 말하며 엄밀히 따지면 믿음없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책망하지 않는 주님이십니다. 친절히 그에게 알려주시는 주님입니다.
우리가 죄로 죽을 수밖에 없으나 심판때에 결국 부활과 생명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육체의 눈은 우리를 보이는 것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영적인 부분은 흐려지게 하고 영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칠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삭은 이미죽은바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를 살리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을 막으시고 구원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또 그것은 아브라함의 성장과 믿음을 이끌어내었습니다. 열방의 조상에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상이 있을 때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취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보면 매순간 매 때마다 그러하셨습니다.
성경의 원서가 존재하지 않는다합니다. 다만 여러사본들이 존재하여 오늘 우리가 보는 성경책이 되었습니다.
과거 유명한 고대 교회들이 무너지고 훼파되었습니다. 제자들과 유명한 기독교지도자들도 결국 하나님께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러하셨을까요? 그것이 복음의 본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서 슬퍼하며 옛것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내 생애와 믿음과 사명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 신앙인과 신앙인은 뭐가 다릅니까? 또 우리에게 주는 사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뭐가 다릅니까?
비 신앙인은 슬퍼함으로 끝을 맺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들에게는 죽음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끝없는 슬픔과 고통과 연민속에 책임과 다툼등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슬퍼하겠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에 슬픔으로 끝을 맺지 않습니다. 기뻐합니다. 감사합니다. 화평과 그로인한 분명한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만약 신앙인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끝을 맺을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요한복음 16:22절에서는
지금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라고 합니다.
제자들도 모를때에는 슬퍼하며 애통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 깨달은 다음 사명을 발견하고 도리어 기뻐하며 감사하면서 나아가는 제자들이 됩니다. 우리는 어떠해야할까요?
새 생명으로 우리 고 정희남 피택장로님을 이끄시고 우리도 그와 같은 모습에 이를 것을 알고 기뻐해야 할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이라 말씀하시며 그 말씀으로 사명을 발견했던 것처럼 그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유가족들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모인 모든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영적지식을 주님을 기뻐하며 더욱 강건케 되는 역사가 가정에 임하길 축원합니다. 또 이제는 천국에 계실 안이갑집사님을 생각하며 위로를 얻으시길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4:6 (NKRV)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의지함으로 천국소망으로 나아가는 저희되길 원합니다. 남은 장례일정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안에 형통케되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ㅇㅇㅇ(직분)님을 떠나보내면서 이 사랑을 붙잡게 하시고 부활의 소망을 부여잡는 우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비록 지금은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러할 수는 없습니다. 사망에 그늘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그 생명의 주님을 분명히 깨닫는 시간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이 주시는 길을 발견하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귀한일 잘 감당하며 나아가는 유가족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현재의 아픔에 잠시머물게하여주시고 천국을 바라보며 한걸음한걸음 기쁨으로 내딛는 저희되게 하소서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통해 부활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자기육체를 통하여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믿는자에게 능치못함이 없는줄 믿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천국에 거하며 그러한 축복을 누릴 모든 백성입니다. 하나님 우리 안명자권사님 가정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소서 남은 유가족들을 위로하소서 마지막 장례일정까지 붙잡아 주시고 잘 마쳐질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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