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 우리로

새벽예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
Notes
Transcript
호날두 예화
작년 겨울 열렸던 카타르 월드컵 기억나시나요? 그때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선수 바로 ‘호날두’가 뛰는 경기를 본적이 있습니다. 메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이죠. 아무튼 아주 중요한 경기 였는데요. 이 선수가 너무 자기 중심적인 개인 플레이를 하는거에요. 물론 그 선수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경기를 잘 해보려고 열심히 뛰었거든요… 하지만 팀 전체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커리어에만 집중한 나머지 욕심을 부리다가 팀 전체의 사기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경기에서 지게 되었고, 우승 후보였던 포르투갈은 4강 진출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과 실수는 팀 전체에게 영향을 줍니다.

본문 배경 : 내게만 집중했던 르우벤과 갓 지파

이와 비슷한 실수를 한 일이 오늘 본문에서는 소개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군하는 이스라엘은 아모리 족속과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이제 요단강 서편 땅의 정복을 개시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가 이미 정복한 요단 동편의 땅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10개 지파가 불만을 가지기에 충분했거든요. 먼저 땅을 요구한 것만으로도 화가 나는데, 동편에 차지한 땅을 얻겠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은 동편에 터전을 마련하고, 서편 정복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그들이 동편에 남겠다고 하면 다른 지파들도 안주하고 싶어 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기가 꺾여 굳이 약속의 땅을 위한 정복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자들이 속출하겠지요. 결국 그렇게 되면 가나안 땅 정복은 당연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겠지요.
이에 모세는 르우벤 지파와 갓지파를 불러 크게 분노합니다. 이것이 열두 정탐꾼을 보냈던 ‘가데스 바네아' 사건에 비견되는 일이라 말하며 엄히 책망하지요. 가데스 바네아 사건이 무엇이었습니까?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10명의 정탐꾼들은 모두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좌절 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자신들의 말처럼'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하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고 말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들의 다음 세대들과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모세는 지금 르우벤과 갓지파가 땅을 요구하는 일이 이 엄청난 사건과 비견될 만한 일이라며 그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결국 르우벤과 갓지파는 모세의 말을 듣고, 자신들의 이득과 편의만 생각했던 집단 개인주의를 뉘우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복전쟁이 끝날 때까지 자신들이 전장의 선봉에서 설 것이며, 요단 서편에 정복하게 될 땅은 자신들이 절대로 받지 않을 것이라 약속합니다. 결국 모세는 뉘우치고 행동을 바꾼 르우벤과 갓 지파의 제안을 받아 언약을 맺었습니다.

나를 넘어 우리로 가는 방법

이렇게 르우벤과 갓 지파는 자신만 생각하는 개인주의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뻔하지만, 모세의 책망을 듣고, 변화된 생각과 행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방금 나눴던 본문의 말씀을 통해 ‘나를 넘어 우리로 가는 방법' 다시 말해, 나만 생각하던 좁은 시야를 벗어나 ‘나도 살고, 우리 모두도 함께 살게 되는’ 영적 교훈들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번째는, 이기심은 나를 죽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Numbers 32:6–7 NKRV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
이스라엘이 차지한 요단 동편은 가축을 기르기 매우 적합한 땅이었습니다. 때문에 가축이 많았던 르우벤과 갓 지파는 굳이 희생이 따르는 가나안 전쟁을 하지 않고 이 땅에 정착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르우벤과 갓 지파는 동편 땅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르우벤과 갓 지파를 향해 엄하게 책망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다른 형제들은 요단 강 서편으로 건너가 적들과 싸울 준비를 하는데 르우벤과 갓 지파는 이미 정복한 땅에서 자리 잡고 안주하려고 하다니. 모세는 이것을 매우 이기적인 태도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 입장에서만 생각해보면 그럴수도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가축이 많은 자신들이 정착하기 너무 좋은 땅이니 기회를 놓치지 말고 먼저 이 땅을 달라고 말하자. 기회를 놓치면 이 땅 품절된다! 네, 나름의 기지를 발휘한 것일수도 있고, 발빠르게 움직인 것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기적인 것은 동기가 무엇이든, 어떠한 이유에서건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되든 자기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한 성경 주석가는 이기심을 흡사 암세포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암세포는 자기 만을 위하여 다른 세포를 죽입니다. 그래서 결국 암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을 죽게 만들지요.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 죽으면 암세포도 같이 죽는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기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면 마침내는 자신에게도 큰 피해가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중요하다는 이기적인 태도는 지금 당장에는 지혜로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공동체도 죽게 만들고, 나도 죽게 만듭니다. 반대로 공동체가 사는 것이 곧 내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이유가 타당성을 인정받는다 할지라도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과감히 내려놓고 버려야 합니다. 우리 주인되신 예수님께서는 항상 이타적인 삶의 방식을 쫓아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유익을 좇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막 10:45). 우러도 이처럼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 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는 진정한 에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섬김과 봉사는 나를 살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Numbers 32:17–19 NKRV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
모세의 책망을 들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뉘우치고 이기심을 내려놓습니다. 자신들에게 요단 동편 땅을 주면 남자들이 무장을 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앞서 행하여 그들이 모두 기업을 차지하기까지 함께 싸우며, 서편을 다 차지하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약속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서편의 땅은 기업으로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비록 자신들이 목숨바쳐 서편 땅을 차지하기까지 다른 지파를 위해 함께 싸우기는 할 것이나 이에 대한 보상은 결코 받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모세의 책망을 통해 이스라엘은 한 형제요 운명 공동체로 다른 형제의 안전과 성장이 보장되지 않는 한 자신의 안전과 성장도 보장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서로 섬겨야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름 받은 우리 교회 공동체의 일원임일 기억하며 할 수 있는 한 더 많이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몸이라면 형제의 아픔이나 어려운 문제를 모른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때때로 섬기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적인 기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섬기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지요.
파레토의 법칙 아십니까? 어떤 집단이든 그 집단에 생산성을 내는 것은 20퍼센트라는 것입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인 대부분의 교회에서도 이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커도 섬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섬기는 자만 계속 섬기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지요. 그런데 이미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다 예견하셨습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긴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섬기는 일에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교회 지체들, 우리 부서와 교구 사람들, 양무리 사람들을 위해 섬기고, 힘쓰는 일… 결코 헛된 일이거나 손해가 아닙니다.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고, 곧 내가 사는 일입니다.
순두부찌개 이야기
예전에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간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순두부찌개를 맛있게 먹었는데 배가 아픈거에요. 분명히 맛에 크게 이상한건 느끼지 못했는데, 왜 배가 아픈가 먹은 사람들끼리 한참 이야기를 하다보니 순두부찌개 안에 들어있는 홍합에 문제가 있었던 거에요. 작은 홍합하나가 음식 전체를 망친거죠. 다른 모든 식재료들이 신선하고 좋은 것이었지만, 홍합 하나로 순두부찌개에 들어간 모든 음식들은 먹지 못할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음식 하나하나가 자기 역할을 다한다면 그것은 앙상블을 이뤄 환상적인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나의 이기심을 버리고, 섬김과 봉사로 공동체를 세워나갈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워지고, 예수님께서 드러나는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나를 넘어 우리를 세워나가겠노라' 결단하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