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참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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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기도
참 좋으신 하나님, 항상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예배를 통하여 공급받은 은혜가 우리의 모든 생활에 활력이 되고 힘이 되는 줄 믿습니다.
항상 찬양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는 찬양팀 위에 은혜와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찬양팀을 통하여 예배 가운데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회복되고 넘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정성과 소원을 담은 예물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주께서 기뻐 받으시고 모든 선한 일에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나눕니다. 말씀의 빛이 비취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빛이 삶의 모든 길에 비취기를 소망합니다.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로 세계를 새롭게 하고 교회를 새롭게 하라’ 는 말씀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우리 가정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옵시고, 오직 성령 안에서 모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서론
서론
오늘 설교 제목은 ‘복음에 참여하자’입니다.
먼저 오늘 말씀에서 두 가지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복음을 행하는 것’과 ‘복음에 참여한다’ 라는 각각의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을 행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일을 의미하고, ‘복음에 참여한다’는 것은 복음을 행한 결과로서 복음의 약속과 축복에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행하는 것’과 ‘복음의 참여한다’ 라는 각각의 개념을 가지고 고린도전서 9장 23절 말씀을 읽으면 이 말씀이 확실하게 이해가 됩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바울처럼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복음에 참여하기를 소망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을 했다면 끝까지 잘 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복음에 참여하는 사람, 복음의 약속과 축복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아멘!
그럼 ‘복음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겠지요. 오늘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9장 23~27절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귀한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참여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것을 운동 경기를 비유로 들면서 설명을 했습니다. 바울은 경기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운동 선수들의 특징을 그대로 신앙에 적용했습니다.
복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
복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
첫째, 열심입니다.
첫째, 열심입니다.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달리기 경주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최고 속도는 다른 사람의 최고 속도보다 높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최선이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이 한 사람인 것처럼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그 정도로 복음에 참여하기 위하여 신앙 생활을 최선의 최선을 다해서 하라는 거죠.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 하라. 끝까지 신앙생활 하라.
그렇기 때문에 신앙 생활에 있어서 ‘열심’ 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미지근해서는 안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래서는 안됩니다. 신앙적인 열심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신앙적인 열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신앙적인 ‘열심’이 예전같지 않다면 꼭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열심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복음에 꼭 참여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절제입니다.
둘째, 절제입니다.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경기에 임하는 자들은 음식 섭취에 있어서 절제하며, 오락을 금하고, 수면을취함에 있어서도 규칙적으로 하고, 해로운 일은 일체 행하지 않는 절제된 생활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훈련도 인내하며 견뎠습니다.
그들은 야생 올리브 잎과 담쟁이 덩굴 또는 파슬리(미나리과의 초본)를 엮어 만든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절제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썩지 아니할 것을 얻기 위해 그와 같이 한다고 말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를 하는 것처럼 썩지 않는 승리의 관을 받으려면 모든 일에 절제를 해야 합니다. 절제하지 않고 승리자의 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고 어떻게 승리자의 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면서 승리자의 관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마치 어떤 음식이 되었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그러면서 동시에 운동하지 않고 게으르게 지내면서 경기에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가능하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운동 선수들이 힘들고 지칠 때 스스로에 하는 말이 있습니다.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열심히 흘린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그들은 계속된 훈련 속에서 절제를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흘린 땀도 결코 배신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땀, 전도의 땀, 헌신과 수고의 땀 등 이런 모든 땀도 결코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제하지 않고서는 복음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하고 싶은 것 많습니다. 누리고 싶은 것 많습니다.
그런데 복음에 참여하기 위해서 절제하는 겁니다. 참는 겁니다.
그 대신 반드시 그에 합당한 영광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절제함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얻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방향 감각입니다.
셋째, 방향 감각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익숙한 운동 경기들을 은유적인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고린도에서는 2년마다 ‘이스미아 경기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창던지기, 레슬링 등을 포함한 총 여섯 종목의 경기 가운데 바울은 본문 속에서 달리기와 복싱의 두 경우를 언급했습니다.
이 두 종목의 공통점은 그 표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목표지점이 어딘지를 모르고 달리면 상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때려할 대상을 정확하게 보지 않고 헛주먹질을 하면 상대를 쓰러뜨릴 수 없습니다.
달릴 때 목적지를 잘 보고 달려야 하는 것처럼, 싸울 때 상대를 정확히 보고 주먹을 날려야 하는 것처럼, 복음적인 삶을 사는 것도 바른 방향, 옳은 방향이 있습니다.
내가 신앙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알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방향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빛이 우리의 삶의 길에 비추이기를 원합니다.
기도의 빛이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 비추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표를 향해서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복종입니다.
넷째, 복종입니다.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여기에 사용된 ’친다‘는 말은 눈퉁이가 시퍼렇게 되도록 주먹을 날린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치는 것은 다른 상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몸입니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그의 몸을 종으로 삼아 복음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주의 일을 할 때, 자발적으로 기쁨에 넘쳐서 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이런 표현을 써서 죄송하지만 하기 싫을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고, 좀 편하게 지내고 싶고, 신경을 덜 쓰고 싶을 때도 있지 않습니까?
바울도 이런 상태, 이런 감정을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런 자신의 모습을 경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본다면, 때로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그런 신앙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예배드릴 수 없을 것 같은, 도저히 기도할 수 없을 것 같은, 도저히 전도할 수 없을 것 같은, 도저히 봉사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내가 내 몸을 치면서까지 복종시킬 수 있는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께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복음에 참여하는 것은 중요하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종은 신앙의 가장 정점에 있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복종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복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복음에 참여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애매하게 혹은 모호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어떻게 신앙생활해야 하는지 그 방법이 더 분명하지고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과 절제, 방향감각, 복종을 통하여
복음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는 언젠가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주님의 칭찬입니다.
주님의 칭찬입니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과연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모든 성도님들,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으로 복음에 참여하는 사람, 복음의 약속과 축복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