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인생 가르침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52 views

영생을 얻는 방법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지 퀘스트 보상처럼 무언가를 달성해야 얻는 것이 아니다.

Notes
Transcript

영생을 얻는 방법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지 퀘스트 보상처럼 무언가를 달성해야 얻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9:16 NKRV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태복음 19:17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태복음 19:18 NKRV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마태복음 19:19 NKRV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태복음 19:20 NKRV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태복음 19:21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태복음 19:22 NKRV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서론
만약 한결이가 이레에게 교육사님은 설교 말씀을 잘 들어야 이뻐해? 아니면 선물을 주면 이뻐해? 뭘 하면 교육사님한테 이쁨을 받을 수 있어? 라고 묻는다면 이레야 뭐라고 대답할래?
근데 사실 이 질문에는 함정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교육사님은 무언가를 해야만 이뻐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죠. 한결이가 교육사님에게 이쁨을 받는 방법은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게 아닙니다. 나랑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관계를 맺기만하면 교육사님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죠.
방금 이 질문을 심리학에서는 앵커링 효과라고 말합니다. 앵커링 효과는 앵커 즉 배의 닻을 내리면 배는 닻에 묶인 밧줄의 거리만큼만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닻을 내린 배가 많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최초에 제시된 숫자가 기준점 역할을 하여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이후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판매 점원이 달걀 후라이를 추가해드릴까요? 라고 묻는다면 추가와 추가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지에서 고르지만, 만약 후라이를 한개추가해드릴까요? 두개 추가해드릴까요?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계란 후라이드는 추가한다고 전제하고 한개냐 두개냐에서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죠. 방금 그 질문처럼 교육사님은 말씀을 잘 들으면 좋아해? 아니면 편지를 써서 드리면 좋아해?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앵커리 효과에 빠져 교육사님은 무언가를 해야 좋아한다는 것을 전제에 두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론
제가 서론에서 앵커리 효과를 설명한 이유는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 청년이 던진 질문이 바로 앵커리 효과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을 얻기 위해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하냐고 물은 것입니다.(마 19:16)
마태복음 19:16 NKSV
그런데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서 물었다.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이렇게 질문하게 되면 우리는 당연히 영생을 얻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한다고 전제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질문의 답으로 기도를 해야하나? 말씀을 읽어야하나? 생각하며 어떤 특정한 행동을 답하게 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은 기뻐하실까? 무엇을 해야 하나님이 받으실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까? 그래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실 거야. 그래 내가 전도를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거야. 물론 그게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우리를 기뻐하실까요? 아 그래 채연아 너가 이번에 큐티를 한달간 잘했구나? 역시 너는 내가 기뻐하는 자녀야. 오 이레야 너 이번에 기도 잘했드라? 역시 너때문에 내가 기뻐. 한결아 나는 너가 워쉽할 때 눈물날뻔했다니까?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에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해야만 하나님의 자녀인걸까요?
예수님은 천천히 부자 청년의 질문을 바꿔가십니다. 청년은 영생을 얻고 싶어했지만 예수님은 생명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 19:16-17)
마태복음 19:16 NKSV
그런데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서 물었다.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마태복음 19:17 NKSV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한 분은 한 분이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기를 원하면, 계명들을 지켜라.”
여러분 생명은 우리가 얻어서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해야 하냐는 청년의 질문에 맞춘 답입니다. 예수님의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이에 청년은 그 계명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십계명의 내용을 가르쳐줍니다. 청년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듯이 제가 그것을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부족하냐고 말하죠. 여기서 예수님은 근본적 답을 주십니다.
바로 영생에 들어가는 방법은 계명을 지켜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모든 소유를 팔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며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계명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소유를 팔고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것은 십계명 내용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이 청년이 계명을 다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모든 계명을 제가 다 지켰습니다 라고 했을 때 그래?! 너 진짜 다 지켰다고? 내가 다 아는데? 너 저번에 간음했잖아. 지나가는 여인을 보면서 생각으로 간음했잖아. 내가 기억하는데? 너 정말 안했다고?라고 말하며 그의 죄를 지적하고 계명을 온전히 지켜야지라고 했었을 거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계명을 다 지켰다는 것을 그래? 알겠어. 라고 넘어가시고 다른 답을 주시는거에요. 너 나를 따라와야해. 해석하면 이말이에요. 너가 계명을 다 지키는 것은 영생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왜냐하면 영생은 나로부터 나오는 거거든. 너가 영생을 얻으려면 나와 관계를 맺어야해. 즉, 나 안에 들어와야해. 그래야 너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거야.
여러분 영생은 예수님을 따를 때 누릴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것이지 퀘스트보상처럼 무언가를 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중에 제자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예수님은 사람이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마 19:25-26) 예수님 관계 안에 들어가 있으면 우리는 선물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엡 2:8)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부자 청년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그의 반응이 사실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반응은 가진 것이 많음으로 근심하여 떠나간 것입니다. 마 19:22
마태복음 19:22 NKRV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본문에서 부자라는 것은 돈의 유무, 많고 적음의 관점에서 볼 수 도 있지만, 자기꺼를 내려놓지 못하는 자, 나누지 못하는 자를 상징합니다. 여러분 이게 우리의 모습 아니에요?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따라오라고, 나를 만나야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내가 붙드고 있는 것 때문에 주님을 선뜻 따라가지 못하고 있잖아요. 본문처럼 돈일 수도 있고, 친구관계, 인기, 게임, 성공, 점수, 좋은대학, 좋은 직장…
여러분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는 거예요. 마 16:24
마태복음 16:24 NKRV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전에 자기부인에 대해서 설교했었는데,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원하는 것들, 나의 소원, 소망들을 부인하고 예수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때문에 말씀을 들을 때 근심하며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나요? 마 19:21 을 다시한번 일겠습니다.
마태복음 19:21 NKSV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결론
우리의 관심은 늘 신앙생활을 했냐 안했냐, 어떻게 해야하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일에 나왔는가? 헌금을 얼마 했는가? 말씀을 몇장읽었는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관계 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것들,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들은 생명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예수님과 관계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한분만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의 시작입니다. 혹시 여러분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렵나요? 뭔지 모르겠나요? 교회생활,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겁지 않나요? 피곤하고 아 또 예배 드려야하네 라고 생각이 되나요? 그렇다면 내 안에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도록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놓아야 예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고 에수님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을 때 여러분의 인생이 기쁨이 있고, 만족이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