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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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views1. 독특한 존재 2. 개인의 영향력 3. 에스더의 중재 4. 기회는 지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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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존재
독특한 존재
‘내 안의 한계를 넘어’를 묵상하며 그 분이 주시는 무한한 힘의 공급을 받은 지난 한주 였기를 소망해요.
사실 나 스스로가 정해놓은 한계를 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늘 나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기도 하고, 할 수 없어. 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 잡혀 있기도 해요.
그러다보니 나에게 주어진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볼 힘도 여유도 없는 것이죠.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내가 이 세상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공동체에 도움이 될까?”
“내가 이 공부를 해서, 이 일을 해서 뭐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이 공동체에 있는게 맞을까?”
“이제는 좀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닐까?”
혹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면, 여전히 “내가 정해놓은 한계 안에 있는 것"과 같아요.
이 질문은 전제 자체가 잘 못 되었어요.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기는 해요.
어떻게 보면 세상에 뭐하나 드러낼 만한 것도 없는 굉장히 작은 존재이죠.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잊어서 안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지는 독특한 존재”라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서 저와 여러분은 각자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유산이 있다는 뜻이에요.
경험과 살면서 겪어 온 고통과 상황들이 각기 다르고 다양하다는 것이죠.
똑같은 일을 마주해도 받아드리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독특한. 유니크한 존재들이에요.
개인적 신념과 생김새 재능, 감성 그리고 목소리들도 다 달라요.
나와 똑같은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어요.
이게 무슨 말이겠어요?
저와 여러분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공동체. 삶의 자리에 무수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에요.
나 스스로 작게 여기며 깎아 내릴 필요 없이, 우리는 어디에서든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에요.
인류의 역사를 보면 세상을 변화시킨 개인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어요.
며칠전 태국에 총선이 있었어요.
지금까지 태국은 군부 세력이 정치를 주도해 왔어요. 그런데 몇년 사이 태국 안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들이 가득차기 시작했고, 앞으로 태국이 개혁. 변화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외침이 커져갔어요.
그리고 며칠 전 총선에서 그들의 바람대로 개혁의 첫 걸음이 시작되었어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개개인의 마음이 투표로 이어졌고, 결국 정권이 교체가 되었어요.
만약 사람들이 그런 마음만 갖고 행동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개개인의 힘은 약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함께 마음을 모아 한 방향으로 걸어간다면,
개개인의 힘이 모여 공동체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게 돼요.
우리가 교회에 와서 하는 역할들이 다 다르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있어요?
“가온누리. 우리가 하나가 되어가고 있어요"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여러분이라는 존재, 각자가 갖고 있는 그 독특한 유산들이 모여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고 있잖아요.
(쉬고)
성경을 보면 용기 있는 한 개인이 굉장한 영향력을 보이는 기록들이 참 많이 있어요. 시대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낸 사람들은 절대 다수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절대 다수는 바벨탑을 짓거나, 우상 숭배를 하는 등 세상을 타락시키기만 했어요.
절대 다수 앞에 선 한 사람. 의로운 생각을 지닌 한 사람의 말과 행위가 여호와 하나님을 드러내고 세상에 충격적인 균열과 변화를 가져올 때가 더 많았어요.
성경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인 에스더를 오늘 함께 또 살펴보려고 해요.
한 사람의 여인이 목숨을 걸고 관습을 어기며 진실을 밝혔는데, 그 결과 민족이 구원을 얻게 된 이야기.
그것이 바로 오늘 함께 살펴 볼 4장의 이야기에요.
에스더의 중재
에스더의 중재
지난 주 살펴보았던 것 처럼 하만은 나치대학살과 같은 민족 말살의 계획을 세웠어요. 그가 왕을 살살 꼬셔서 내린 조서로 인해 나라가 굉장히 어수선했어요.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 라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어요.
왕은 자신들의 말을 모든 사람들이 듣는 것에 대한 기쁨과 은 1만 달란트가 생기는 것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하만과 귀족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일들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면서 술을 마시며 또 다시 파티를 열기 시작했어요.
수산 성 안 깊은 곳은 정욕과 쾌락에 빠져 있었지만, 수산 성 전체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일반 백성들을 굉장히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죠.
“내 이웃을 어떻게 죽이겠어요"
“12월이 될 때까지 계속 얼굴을 마주하면서 살아가고 또 함께 먹고 마시고 일하면서 지낼텐데 어떻게 죽일 수 있겠어요”
“내 자녀랑 친구로 지내면서 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죽일 수 있겠어요.”
시한부 인생을 살며 근심에 빠진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던 것이죠.
어쩌면 “이거 되돌릴 수 없을까?” “솔직히 이거 말이 안되는데 어떻게 할 수 없나?”하는 생각들을 한번씩은 해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 것은 생각에 그치고 말았을거에요. 왜냐하면 당시 메대와 바사 제국의 법령은 그 누구도 변경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
수산 성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혼란스럽고 힘든데, 그 어느 것도 그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었다. 라는 의미와도 같아요.
끝없는 무기력함과 절망 속에 빠져 수산 성은 병들어 가기 시작했어요.
(쉬고)
여러분 자신의 종족 유대인들이 다 죽는다는 이 사실을 에스더가 알고 있었을까요? 모르고 있었을까요?
모르고 있었을 확률이 거의 100%에요. 왜냐하면 에스더가 살았던 곳은 격리 된 장소였기 때문이에요. 겹겹히 보호되어있는 내전 안에 있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에스더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러한 바깥 상황을 굳이 전달하지 않았을거에요.
대단한 권력을 가진 자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던 사람이 에스더였어요.
모르드개도 이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에스더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했어요. 하지만 이제 곧 죽게 될 민족 거기다가 죽음을 맞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모르드개가 왕후가 있는 내성까지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요.
고민하던 모르드개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어요.
꼭 에스더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한 행동은 아니지만, 당시 파산을 했거나 치명적인 질병 혹은 가족을 사별했거나 끔찍한 재난이 닥치면 유대인들이 했던 행동이 있어요.
마대 자루처럼 보이는 염소 털로 만든 검은색의 헐렁한 겉옷을 입고, 타고 남은 재를 자신의 온 몸에 뿌려서 더러워 보이게 만들었어요.
4장 2절의 모르드개의 모습이에요.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우리들도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 다를거에요.
저처럼 차를 끌고 바다 앞에 가서 멍하니 흘러가는 물들을 보면서 삭히는 낭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주륵주륵 울기도 할 것이고 소리내서 펑펑 우는 사람들도 있겠죠. 한바탕 그 마음을 쏟아내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지긴 하겠죠.
고대 근동에는 슬픔을 말과 행위로 생생하게 표현해왔어요.
죽은 자의 관을 머리 위로 높게 들고 소리치면서
울부짖는 군중들 사이를 헤쳐 나가면서,
자신들이 믿는 신의 이야기를 적어 둔 경전을 크게 낭독하면서 관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유대인들은 재를 뒤집어 쓰고 한껏 더러워 보이는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려서 자신들을 향해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바랬어요.
모르드개는 이 행위를 하면서 대궐 문 앞으로 이동했어요.
대궐 문은 왕이 나와서 백성을 대판하던 곳으로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 함부로 가서는 안되는 곳이었어요. 그럼에도 모르드개가 그 자리에 간 것은 에스더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였어요.
내궁 안에 있는 에스더에게, 대궐 문 앞에서 통곡하며 울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모습이 마대 자루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쓴 더러운 사람. 모르드개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모르드개가 하고 있는 그 복장을 보고 에스더는 무슨 일이 났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궁금해 해요. 하지만 정확히 무슨 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모르드개에게 그만 울라는 뜻으로 갈아입을 의복을 보내며 위로의 뜻을 전해요.
그런데 5-8절을 보면 모르드개가 그 의복을 거절해요. 거절의 의사를 들은 에스더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겠죠.
그리고 에스더에게 하만이 내린 포고령의 복사본이 전달돼요. 모르드개는 감정을 빼고 사실 그대로를 전해요.
여기에서 우리는 모르드개의 이 모습을 통해 나는 어떠한가 돌아봐야 해요.
우리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참 어려운 존재에요.
어떤 말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확대 해석을 하기도 하고,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상대를 미워하거나 욕하거나 괴롭히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또 내 감정을 실어 말을 전함으로 불필요한 오해들이 생기기도 하구요.
모르드개는 지금 굉장히 억울해요. 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만 전하면서 에스더에게 “왕 앞에 나가 유대 민족의 구원을 호소하라!”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거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왕과 사람들은 여전히 에스더가 유대인인 것을 몰라요. 만약 요구대로 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어요.
언제는 유대인인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해놓고, 이제는 가서 말하라고 모르드개가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쉬고)
어려움 앞에 하나가 되어가는 민족들이 있죠.
아마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텐데, 제가 초등학교 5-6학년 때 쯔음 IMF가 터졌어요. 그래서 나라에 큰 위기가 찾아왔었어요.
모두가 다 대한민국은 끝이다. 회복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라고 했는데, 우리는 정말 빨리 그 어려움을 극복했어요.
어려움 앞에 사람들이 각자 집에 있던 예물과 돌반지 등을 다 갖고 나왔거든요.
금모으기 운동이 일어나면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 것을 나누고, 아나바다 라고 하면서 서로의 물건들을 함께 나눠쓰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을 정말 빠르게 극복해 냈어요.
“고난"이라는 것은 ‘나. 혹은 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이웃의 삶을 돌아보도록 만들어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돌보고 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래서 서로 단합하며 서로를 보고 손을 맞잡을 수 있도록 해요.
고난은 우리의 인생을 파국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고 그 마음을 나누며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줘요.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동일한 목표의식을 갖게 해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함께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거에요.
여러분 여름수련회 때 뜨겁게 나눌 말씀은 히이브리서 말씀이에요.
작년에 우리가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나누었다면
올 여름수련회는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공동체" “동일한 목표를 갖고 살아내는 공동체"에 대해 나눌거에요.
저와 여러분의 겪고 있는 지독한 현실의 상황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도록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하도록 만들어주는 하나의 원동력이 될거에요.
기회는 지금 뿐!
기회는 지금 뿐!
모르드개는 결단을 요구했어요. 하지만 에스더는 거절했어요.
에스더의 상황이 좋지 않았거든요.
왕에게 나아가려면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했어요. 아무리 왕후여도, 남편이어도 처소에 들어가 개인적 대화를 절대 나눌 수 없었어요.
왕이 부를 때만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한달 째 만나지 못하고 있어요. 유대인들이 죽는 것에 대해 기뻐하며 파티를 하고 있는 그에게 왕후가 나타났는데, 왕후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듣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대환장파티죠. 유대인을 죽이려는 왕의 아내가 유대인이었다? 난리 나는거에요. 진짜 대막장 드라마가 펼쳐지는거에요.
에스더는 거절했어요. 거절하는 것이 당연할지 몰라요. 행동하지 않으면 에스더는 살 수 있잖아요.
사실 이거 매일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기도 해요.
우리가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이유. 하나님을 자꾸 잊고 살아가는 이유가 뭐겠어요.
순종할 대상이 눈 앞에 보이지 않아요.
불순종하면서 살아가도 당장 아무런 위협이 없어".
어떤 불이익도 없고 당장 죽는 상황도 없어요.
에스더도 마찬가지에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지나갈 문제였어요. 굳이 나서서 생명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죠.
에스더가 하닥을 통해 거절의 의사를 표했을 때 모르드개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베옷의 허리띠를 더 단단히 동여매고 강하게 호소 했어요.
그의 호소는 유대인의 역사를 바꾸는 출발점이 됐어요.
성경은 그 말을 이렇게 표현해요.
“네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너는 유대인이기에 우리처럼 죽을 것이다"
“우리가 죽어도 하나님은 너와 나를 의지하지 않고, 당신의 백성을 살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라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
“왕후로 선택하신 이유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인줄 누가 아느냐?”
정리하면 이런 말이에요.
순종만 하면 유대 민족은 살 수 있다.
기회가 왔다. 일어나 말해라.
침묵하지 말고 죽을 각오를 하고 말하라.
모르드개가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쉬고)
혹시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삶의 방향을 바꾼 이야기들이 있나요?
제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어요.
그런데 반주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반주 연습 안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랑 매일 싸웠어요.
나는 하기 싫은데 자꾸 하라고 하시니까 진짜 화가 나는거에요. 또 거기다 피아노를 또 구해오셨어요.
나는 진짜 싫은데 피아노도 생겼고, 연습해야 하는 상황이 오니까 어머니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어요.
그 때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가 나중에 선교사가 되었을 때, 선교지에서 후회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지금 이 연습이 하나님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다면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마 초등학교 4-5학년이었던거 같아요. 이 이야기를 듣고 초딩 휘석이는 아무 말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았어요.
그 때 그 말씀 때문에 제 삶에 많은 부분이 바뀌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반주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반주로 인해 다른 악기들도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 그 것을 사용해 복음을 전하기도 했거든요.
(쉬고)
저희 어머니의 말씀을 통해 저의 삶의 방향이 바뀌었던 것처럼, 모르드개의 이 세 문장 “기회가 왔다. 일어나 말해라. 침묵하지 말고 죽을 각오를 하고 말하라.”을 들은 에스더가 결단을 내려요.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모든 것을 자신의 신앙에 맡겨요.
고아였던 자신을 이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가 지금 이 때를 위함이다 라는 마음을 갖고 결단하고 움직이기 시작해요.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아요. 해야 그 것을 통해 파생되는 일들이 자꾸 생겨나요.
다윗이 아버지의 말에 따라 형 엘리압을 찾아갔을 때, 그 전쟁터에서 골리앗을 만나죠.
엘리압은 다윗에게 “너 따위가 왜 여기에 왔냐!”라고 하며 질책 할 때 다윗은 큰 형에게 이렇게 말해요.
“내가 여기에 아무런 까닭없이 왔겠습니까?”
다윗이 거기에 간 것은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간 게 아니에요.
그냥 아버지가 다녀오라고 해서 간 것인데, 그 곳에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골리앗을 보게 된거에요.
“내가 여기에 아무런 까닭없이 왔겠습니까?”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나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죠?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죠.
(쉬고)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더와 다윗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있어요.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괴롭히고 공격하는 세상을 가만두지 않으신다는거에요.
우리가 공격받고 어려움에 처한다는 것은 곧,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과 같거든요.
하나님은 절대 그 상황을 그대로 두지 않으세요.
반드시 되갚아 주심을 통해 저와 여러분을 살려내실거에요.
(쉬고)
누가 여러분의 인가요? 누가 여러분의 버팀목인가요?
예수 그리스도 아닌가요?
사람들을 염두하지 말고, 상황과 세상을 놓고 저울질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습관을 우리는 가져야 해요.
하나님은 절대 세상을 가만두지 않으세요. 싸우는 자는 내가 아니에요.
나 혼자 세상과 싸우고 상황과 씨름하고 있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이 함께 그 자리에서 싸우고 있어요.
쓸데없는 생각,
부정적인 생각,
나를 넘어뜨리는 생각,
내 한계를 정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게서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 싸움의 주체가 되어 승리의 시그널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보내고 계셔요.
그 것을 믿고 우리 한가지를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요.
편안한 삶을 누리면서 말만 앞세우지 말고, 손해보고 싶지 않아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자꾸 뒤로 숨지 말고, 나오세요.
그래야 우리도 놀라운 변화를 보고 일으킬 수 있어요.
무엇인가 거창한 신앙 생활을 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이 아는 행동이에요.
(쉬고)
어떤 신앙의 행동을 하며 살아오고 있었나요?
(쉬고)
혹시 여러분은 이 세상의 균열을 일으키는 역설적 존재였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작년 사도신경에 대해 나눌 때, 여러분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기억하나요?
세상의 관점에서 우리는 굉장히 역설적이면서 거북하고 부담스러운 존재에요.
하나님과 멀어진 세상을 이어가고 있는 존재들이에요.
이미 삶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존재가 바로 여러분이에요.
이제 우리는 그분에 대한 믿음과 생각을 실천에 옮겨야 해요.
그리스도만 묵상하지 마세요. 말씀만 묵상하고 찬양만 흥얼거리고 끝나지 마세요.
저와 여러분이 믿고 있는 그 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내려오시는 행동을 하신 분이에요.
우리는 이론이 아닌 실제로 왔고 죽고 부활하신 분을 믿고 있어요.
그렇기에 우리는 뒤로 숨어서는 안되고, 앞으로 나와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가 되어야 해요.
(쉬고)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한주 함께 했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어요.
여러분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씀.
나의 삶에 큰 영향과 울림을 주고 있는 그 말씀들을 포스트잇이든 어디든 옮겨 적으세요.
그리고 그것을 휴대폰 뒷면에 붙이던 노트북에 붙이던 보이는 것에 두고 끊임없이 보고 묵상하세요. 그리고 SNS에 올리세요.
그 묵상의 시간이 우리를 더 이상 숨지 않도록 만들고 앞으로 나와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실거에요.
여러분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 말씀이 여러분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는 동역자들에게도 힘이 되어줄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의 삶에 극적인 변화와 끊임없는 은혜가 가득한 한 주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