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라
0 ratings
· 71 views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라
Notes
Transcript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야고보서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야고보가 이 편지를 쓰기 위해서 가장 근본을 선포하고 이 서신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자신의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하며
현재 믿음의 자녀들, 우리에게까지 이 편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는 말씀이 우리에게는
어떤 특권자의 특별한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와 동일시하고 있는 야고보의 모습에서 고백되는 메시지를 듣고서,
아 그렇구나, 내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구나,
우리가 어떤 시련을 마주하고 있을 때,
그 인내를 우리가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 인내를 만들어주시는구나!!
이것을 우리가 어제 야고보서를 시작하면서 깨닫게 된 부분입니다.
오늘은 2장을 볼텐데요.
이 근본적인 메시지를 마음에 가지고서
야고보서 2 도 깊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제는 정말 말씀만 보느라고 여러분들에게 숨쉴 공관을 못드린거 같아서요.
이번 주 주일 말씀에서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 루디아와 같은 사람들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내주시면, 우리에게 어떻다고 했나요?
그들의 격려를 통해서 우리가 숨쉴 공간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담임 목사님이 주일 말씀을 통해서 전해주셨었죠?
저는 오늘 말씀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숨쉴 예화를 통해서 조금 천천히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분량 조절은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제목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라 라는 제목인데요.
사실은 저에게, 제 인생에, 저 나름대로는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저의 자녀들의 이름이 예성이, 예담이 거든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라 라는 의미를 넣어서 예성, 예담 이라는 이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소망을 품고 아이들을 키워서 인지
자녀들은 남자 아이 딱 둘이고요, 더이상 낳지 않고 잘 키우고 있습니다.
아마 조금 더 내용이 있었으면 세명도 낳고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한데,
이미 첫째 아이 낳기도 전에
이렇게 이름을 정하고서 보니,
두명만 낳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정했다고 둘만 낳은 것은 아니고,
지금은 이렇게 되었지만,
낳고 기르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것이, 지금도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성품에 대해서 참 많이 설명해줍니다.
어제 밤에도 자다가 첫째아이와 둘째아이가
욕에대해서 궁굼해 했습니다.
왜 욕을 하면 안되요? 손가락 욕이 나빠요, 말하는 욕이 나빠요?
이런 것을 궁금해하더라고요.
아무래도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지내다보면
어쩌다 듣게 되는 욕, 나쁜 말들이
아이들은 흥미롭게 느껴지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더 궁금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둘째가 꼭 이렇게 찝어서 말하더라고요.
“하나님은 왜 욕을 만들었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세상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다.
말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고,
우리의 모습과 행동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야 라고 자주 말해줬더니,
둘째 아이 입에서 “왜 하나님은 욕을 만들었어요?”라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우리가 함께 살펴봤던 야고보서가 바로 떠오르는 거에요.
사람들이 시험을 받을 때
시험을 하나님이 만드신다고 했나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 시험을 주셔서
사람이 그 시험을 받는다고 했나요?
아니죠.
하나님은 시험을 만드시는 분도 아니고,
우리에게 시험은이 오는 것은,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오직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된다고 배웠잖아요.
그대로 이야기 해줬습니다.
“예성아, 예담아… 하나님은 욕을 만드시지 않으셨어, 욕은 누군가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거야"
“우리가 욕심이 생기고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싶은 말, 못된 말을 하고 싶을 때,
그런 유혹에 넘어가서 만들어낸 말이야"
“절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을 가르쳐 주실 때 누군가를 상처주거나 아프게 하라고 하시지 않았어"
“그것은 하나님의 모습,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거든"
참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바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욕이라는게 내 욕심에서 나온거구나,
우리가 그런 욕심에, 친구를 괴롭히고, 놀리고 싶은 마음에 나오는 말이었구나
이렇게 아이들이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아이들이 이해하게 되었고 더불어서 이렇게 이야기 해줬어요.
너희 이름처럼, 예수님의 성품,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삶을 살아가면, 우리는 그런 나쁜 말, 욕을 하지 않게 될꺼야.
그러면서 아이들은 잠에 들었고, 저는 정말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오늘 이 설교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바로 이해가 되시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니셔요.
그렇다면요.
오늘 본문....
여기에 나오는 단락의 주제 이야기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이 내용과 의미는요.
예수님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사실 큰 걱정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우리는 눈에 보이잖아요.
느껴지잖아요.
차별하는거, 그거 아니잖아요.
행함이 없는 믿음?
아니 행함이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이 있기 때문에 행함은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잖아요.
바울이 전도여행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거,
그런 행함이 있어서 바울이 믿음이 좋다고 하는 건가요?
아니잖아요.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심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이 이끄셨고,
그 이끄심이 순종하여 1차,2차, 3차 전도여행을 다닌 거잖아요.
우리가 그렇게 안다면,
그런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오늘의 이 본문 내용은 그냥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은혜입니다. 은혜입니다.
라고 해석되는 것입니다.
이게 다입니다.
이게 오늘 설교 메시지 전부입니다.
이해 되시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신 여러분,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삶을 사는 여러분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욕심과 시기 질투로
예수님의 성품에는 없는,
하나님이 만들지도 않으신 그런 모습들을로 살지 마시고,
우리의 원래의 모습대로,
야고보가 고백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
오늘 2장의 내용은 이렇게 끝내도 되지만,
그래도 아침 기도회인데,
본문을 읽었다고 내용을 이해한다고 너무 안보면 안되겠지요?
확인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여기서 선언합니다!!!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이미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은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더 나아가면요.
오늘 제목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잖아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요.
야고보가 선언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확정적으로 말하죠!
맞습니다 우리가 그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너무 이해 되시죠?
정말 이해 되시나요?
제가 말하는 이해의 초점은요!
그냥 차별하지 말자! 이게 아니고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졌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요.
하나님이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게 해주십니다"
어떻습니까?
이거 우리가 하는게 아니죠?
아니에요. 아닙니다.
왜 그런거죠?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거든요.
이미 종속되어 있거든요.
그 성품에 종속되어 있고요.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면, 정말 그 믿음이 굳건하면요.
야고보가 말하는 것처럼,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졌으면!!!!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이 말이
“너희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할 수 없다"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해 되십니까?
율법은요. 우리가 지키는게 아니고요,
지켜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요.
우리가 지키려고 노력 하는게 아니라.,
지켜 지는 것입니다.
구원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자녀들에게 선물로 거저 주신 것이지.
우리가 구원을 따내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다면요.
우리는 사람들을 차별할 수 없습니다.
왜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거든요.
그럼 왜 우리에게 그런 마음이 생기냐?
믿음이 있는데도
우리가 시기 질투가 생기잖아요.
제 자녀들이 욕에대해 궁굼해 하고,
왜 재미있는데 왜 못하게해요?
왜 나쁜말이에요? 라고 물어보잖아요.
그건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의 욕심!!!
다시 읽어드리면요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우리가 연약함 때문이잖아요.
우리가 차별 안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회복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 제가 차별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거 저거 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부족함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회복하는 것이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면
“사람을 차별할 수 없습니다"
왜냐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아니거든요.
이해 되시죠?
그럼 13절까지 다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걸 읽기만해도 숙숙~ 이해가 됩니다.
14절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이거 이해 되시나요?
계속 야고보가 이야기 하는 것을 잘못 이해하면요.
그냥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너희 행하지 못하는 믿음은 진짜 믿음 아냐!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는 배경을 이해하고,
그 배경을 깔고 말을 들어야 합니다.
야고보 배경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그럼 그는 믿음이 있습니까?
당연하죠!
그러면 그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행위들은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행하시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너희들이 믿음이 있느냐?
그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너희들을 통해 인도하시고 행하실 것인데,
그 안에 믿음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죠.
그럼 14절에서 26절까지의 주제,
행함이 없는 믿음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믿음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인도하심, 행함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행함이 마치 무엇을 해야만 행함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주일 말씀이 역사하고, 그 말씀으로 살아가게 되는것,
그것이 행함인 것이죠?
제가 어제 말씀 드렸잖아요.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국내전도 알아보러 갔는데,
막으시는 성령님을 경험했잖아요.
이것이 행함입니다.
그렇게 경험하니, 막혔지만 감사가 나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고요,
하나님께 구하면 주시리라 믿는 우리는 성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이런 말들은은?
예수님의 성품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럼 왜 하나님은 이 말씀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다시 보여 주시는 것이지요.
저의 자녀들이 왜 욕에 대해서 궁굼해 합니까?
그것이 사람들의 연약함에 나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면요.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면요?
사람을 차별하지 않게 되고요.
행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는
여기 계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