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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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야고보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야고서를 읽으면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이렇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야고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종속되어 있을 때,
어떤 은혜가 임하는지를 분명이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늘 또 말씀드리는 것은 이것은 야고보가 예수님의 형제라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야고보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련에 인내를 만들어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고, 그 일을 해결해주시는 것도 하나님이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야고보서를 통해서 계속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면,
그 온전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시험이 찾아오더라도
그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닌,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된 것이라고 배웠고,
결코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시련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아니다. 라는 사실까지도 어제 2장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사람에 대한 차별이 있다 없다?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런 시기 질투, 차별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온전한 성품을 유지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늘 살아가기 때문에 행함은 어떻게 된다?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행함으로 믿음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행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 본문에 나오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라는 말에는
그 안에 믿음이 당연히 없는 사람들에게는 행함이 없을 수 밖에 없고,
믿음이 굳건한 사람들에게는 행함이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제 본문을 야고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 그 성품으로서 생각한다면,
역설적인 본문이면서,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본래적 성품이 어떻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본문이었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어서 봅니다.
3장을 보면서
1~12절까지는 사람의 ‘말'에 대해서 나오고요.
13~18절까지는 ‘지혜'에 대해서 나옵니다.
이것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성품에 대해서 살펴보고,
우리가 온전한 믿음, 온전한 신앙 생활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사람의 두가지 두가지 성품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품"
우리가 전자기기를 보면 입력을 하면 출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컴퓨터에서 1을 입력하면 화면에 1을 출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과를 그리면 사과가 나오고, 배를 그리면 배가 나오는 것이지요.
사과를 그렸는데 배가 나온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컴퓨터가 아닙니다.
가끔은 저에게 컴퓨터나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물어보실 때 이렇게 물어보시는 분들 있습니다.
“목사님 컴퓨터가 저절로 고장났어요"
“목사님 핸드폰이 저절로 움직여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게 있습니다.
컴퓨터나 핸드폰은 저절로 고장이 나거나 저절로 움직이는게 아니라는 것을요.
컴퓨터나 핸드폰은 사람이 작동을 시키고 그 작동을 시킨데로 움직이게 됩니다.
간혹 멈추거나 하는 일들도 사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이 미쳐 발견하지 못한 오류이거나 컴퓨터의 물리적 한계에 이르렀을 때,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든지, 더 이상 처리할 능력이 없는데 계속 입력한다던지 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이야기로 쉽게 또 말씀드리면,
우리가 칼로 손을 베이면 어떻게 되죠?
피가 납니다.
이것은 사람 몸 안에 피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것이죠.
그런데 피가 안나고 파랑색 잉크를 배출한다면?
말이 안되는 것이지요? 왜 말이 안되요 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속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것들을 생각해보면 사실 모든 상황에서 어떤 일이 생기면 그에 따른 결과가 당연히 이뤄지는 것, 이것을 우리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고 그것이 본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본질은 근본적인 성질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성질은 어떻습니까?
어제도 이야기 했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우리가 나쁜 말을 쓰는 것은 사람의 성질입니까?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은 나쁜 말을 쓸 수 없지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기본 본질이 선이기 때문이죠.
그럼 왜 나쁜 말을 사람들이 사용합니까?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까 서두에서 말하고 계속해서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James 1:14 NKRV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된 것이다
곧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어 나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의 본질은 나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을 미혹하여 본질을 탁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사탄의 유혹이고, 그것에 넘어간 것이 사람이지요.
그렇다보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입력했을 때 극과 극으로 출력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3장을 보면요.
1절에서 12절까지 ‘말'에 대해서 나오는데,
이 내용을 요약해보면,
말에는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온전한 사람이 하는 말과
또 한가지는 온전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온전한 사람의 말은 말에 실수가 없고,
그것은 곧 입력한데로 출력이 된다는 것이고,
온전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4절부터 있는 내용입니다.
한구절만 볼까요?
아까 읽을 때도 너무 무시무시한 구절들이었는데요.
5절 보면요
James 3:5 NKRV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입력은 하나님이 하셨는데,
출력하는 사람은 그 혀로 많은 나무를 태운다고 합니다.
온전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거에요.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것 중에서도 유일하게 두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참으로 신기하지요?
우리 안에 죄악이 들어오면 우리 안에 어떤 것이 들어오더라도 그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8절 한번 볼까요?
James 3:8 NKRV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미 변질되어 있는 혀는요. 우리 스스로 길드릴 수 없습니다.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입니다.
우리는 이미 죄악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입력한데로 출력이 안되고, 변질되어 있는 혀로 쉬지 않는 악을, 죽이는 독을 내뿜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원래는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본질적으로 온전하였지만,
죄악에 빠진 이후의 사람들은 변질되어 있는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잠깐 야고보서 3:2
James 3:2 NKRV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을 보면요.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라고합니다.
야고보가 사람의 연약함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만일, 이라는 단어로 아주 극히 드물다는 표현으로 만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결국 야고보가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그럴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 문맥에 전체를 생각한다면,
사람은 실수 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실수 투성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실수 투성인지 볼까요?
James 3:9–10 NKRV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이렇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면요.
청년때 교회에 나와 예배할 때는 정말 선한 청년으로 살아왔지만,
직장인 이인수로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이 사회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사회에 어울리는 것이 내 스스로 시궁창에 빠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스스로는 정화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3장의 전반부 12절까지에서 말하는 ‘말'에 대한 부분,
다시 우리의 기억을 떠올려서 야고보의 근본을 생각하면
이것이 해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
내가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안에 사는 것,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
그래야만 우리는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의 실수, 한순간 입니다.
우리가 주어담기 힘든 것이 말의 실수라고 하지요?
그만큼 우리의 연약함의 결과는 말에서부터 나옵니다.
James 3:11 NKRV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샘이 한 구멍에서 어찌 단 물과 쓴물을 내냐고요?
사람은 단 물과 쓴물을 냅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면,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앞에 닥치는 일들에 선하게 응답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고가 내 앞에 찾아오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요.
내 앞에 악한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히더라도요.
하나님의 힘으로 선하게 풀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요.
말씀을 기억하며 계속 살아가면요.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 말씀으로 적용되고,
그것은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인도하십니다.
주일 말씀 적용하고 계시죠?
“성령 하나님, 제 마음의 문을 열어주셔서 말씀이 들리게 하소서"
“내게 루디아 같은 사람을,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루디아 같은 사람이,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계속 적용하다보면, 우리 삶 가운데 찾아오는 일들이 말씀에 적용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3절부터 마지막까지 두번째 단락 보겠습니다.
James 3:13–15 NKRV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사용하시길 소망합니다.
가장 빠른 길, 당장 내눈에 보이는 유익한 것만을 찾지 마시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찾길 소망합니다.
그것이 조금 늦더라도,
우리를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럴려면 하나님 말씀이 기본입니다.
우리의 지혜는 말씀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는 이유 중에서 하나가,
이 한 주간 지혜롭게 살기 위함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될 때, 말씀에 적용해보는 일들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일들에 길이 보입니다.
주일부터 지나 수요일까지 이제 3일째 되는 날인데요.
저는 벌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를 통해 귀한 만남도 가졌습니다.
주일 말씀을 통해서 루디아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씀 듣고 기도했더니,
어제 만난 외부 목사님으로부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고,
이전에 뵈었던 귀한 분을 어제 통화로 다시 연결되는 은혜도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그런 귀한 분을 제 개인 전화로 통화하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부여잡고 있으면, 그 일들을 경험시켜주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 은혜가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또한 지혜가 있습니다.
17~18절 까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James 3:17–18 NKRV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나님으로 오는 지혜를 구하고 의의 열매를 거두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주일 말씀을 사시고, 주일 말씀으로 의의 열매를 거두시길 소망합니다.
어제 보니까 담임 목사님이 바울 곁에 있는 사람들을 정리해서 올려주셨더라고요.
한번 읽어보시면서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시고,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시고, 또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소망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성품을 스스로 갖는다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미 죄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입력하는데로 출력이 안되는게 어쩌면 정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필요하고요.
그 말씀으로 덮어져야 ‘말'도 온전하여지고, ‘지혜'도 온전하여집니다.
주일 말씀 늘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시작하며 다시 마음 속에 저장해 놓은내용.
“성령 하나님, 제 마음의 문을 열어주셔서 말씀이 들리게 하소서"
“내게 루디아 같은 사람을, 오네시보로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루디아 같은 사람이,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렇게 되뇌이시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마지막
야고보서 3:18
James 3:18 NKRV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는 말씀처럼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기억하며 힘차게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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