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를 통한 교훈
Notes
Transcript
Handout
다같이 묵도하심으로 예배드리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452장, 통일찬송가 505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찬양하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복음 17장 1~5절 말씀입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이시간 드려진 예물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벽에 나아와 하루를 시작하며
말씀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시간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를 사모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건강의 문제로 기도하는 성도님들 있습니다.
오장육부, 관절, 골수, 마디, 세포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회복되어 다시 살아나고, 강건해지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함, 피곤함, 아픔과 질병, 고통과 고난, 어려움 속에 있는
상황과 환경 모두 떠나가게 하여주시고,
마음의 모든 염려,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가벼워지도록 주님의 평안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오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주실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으로 귀한 예물 드리는 손길들 있습니다.
감사헌금, 일천번제, 00헌금, 00헌금을 올리오니
받으시고, 만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더욱 드릴 것이 넘치게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의 지혜로 깨닫게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믿음도 부어주소서.
이 모든 말씀을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앞뒤 옆사람들과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큰 은혜 받으세요.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본문의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중보 기도’라고 불리우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교회를 대표해서
중보자로서 대제사장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로부터 시작하여
제자들과 모든 믿는 자들에게까지 그 대상이 점차 확대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과
기도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새삼 돌아보게 하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얻을 영적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깨닫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첫번째 교훈은,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기도하실 때에,
그 대상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마땅히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곧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도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자녀는 아버지에게 조건없이 요청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자녀에게 조건없이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이나
전혀 아무 관계도 없는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호칭은 자녀들만 사용하는 것이고,
아버지는 자녀가 부르면, 언제든지 관심을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자녀들이 구하는 것은
가능한 들어주려고 합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자녀들이 구하는 것이 아버지의 능력에 미치지 못한다든지,
아니면 구하는 것이 자녀들에게 유익하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
아버지는 자녀가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자녀의 위치에서 요청하는 것이고,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의 위치에서 청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라는 호칭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친밀감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아버지께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자녀가 아버지께 하듯 거리낌없이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자신들의 요구에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신뢰하듯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실 것을 신뢰해야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두번째 교훈은,
맡겨진 것을 잘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온전히 이루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도인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내고,
또 무엇에 힘써야 하는지 잘 알려줍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틀어서 궁극적으로 추구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즉,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로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만 해야하는데,
그 방법은 그분이 명하신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는 스스로 만든 자리도 있고,
사람들이 만들어 준 자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 속에서 우리가 어떤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기를 원하시기에 각자에게 맞는 적절한 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세우신 목적은 바로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
자기가 받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곧 자기 자리를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 주인과 품꾼의 비유가 나옵니다.
거기서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부터 장터에 나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포도원에 들여보내어 일을 시킬 일꾼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직업이 없어서 노는 자들을 구제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장터에 나간 것이 아닙니다.
포도원에 할 일이 많으므로 일꾼을 구하려고 나갔습니다.
물론, 나중에 품값을 계산할 때
적게 일한 사람에게도 같은 품값을 줌으로서
약한 자들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농장 주인은 할 일이 많아서 일꾼을 찾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이 포도원에 들여보내신 일꾼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할까요?
농장을 가꾸고,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농장 주인이 나를 써줬다고 해서
나를 특별히 이뻐한다고 착각하고, 좀 친해졌다고
일도 안하고, 계속 놀고, 먹고, 게으르고, 잠만 자면
주인이 그 사람을 기뻐할까요?
우리는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치가 있음을 명심하고
그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성실하게 자기 직무에 최선을 다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사장인데, 너무 좋아하는 동생이 있어서
함께 일하고 싶어서 자신의 회사에 직원으로 채용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그 동생이 사장이랑 친하다고 해서
일도 불성실하게 하고, 매일 출근도 마음대로 하고,
다른 직원들 일하는데 방해하고, 자기 하고싶은대로 한다면,
그 동생과 함께하는 동역이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25장에서 달란트 비유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우리에게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함을 가르쳐줍니다.
그 중에 두 사람은 자기 자리를 잘 지킨 덕분에
주인을 기쁘게 하고, 칭찬과 상급을 받았지만,
자기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한 사람을 책망과 형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각자 받은 달란트가 다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은사와 사명을 그에 맞게
얼마나 성실히 감당했느냐 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남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한 달란트를 남긴다면
그것은 책망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점검하며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자리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받은 은사와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번째 교훈은, 예수님만이 모든 지식의 출발점입니다.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가지셨던
특별한 영광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확실히 피조물과 분리되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만물이 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따라서 예수님이 사람이고, 위대한 스승 중의 하나라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이십니다.
이단 중의 하나인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미가엘이나 가브리엘과 같은 천사장의 동급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거짓 사상이며
예수님의 본질과는 완전히 다른 생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합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분은 우리와 동일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 본질은 우리와 전혀 다른 하나님의 본체,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31절에서
우리는 아래서 났지만, 그분은 위에서 나셨다고 증거합니다.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예수님 안에 있는 두 본성, 곧 인성과 신성은
예수님께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의 출발점이 되심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기계는 그것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이 가장 잘 알듯이
인간과 세계 역시, 그것을 존재하게 하신 그분만이
모든 것을 완전하고 분명하게 아십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세계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만물을 친히 지으셨고, 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솔로몬을 능가하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이 아닌 다른데서 출발한다면,
절대로 완전한 지식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인류가 범하고 있는 숱한 시행 착오와
과학의 실패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의 결실이 아니라
순전히 은혜로 받은 선물입니다.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노력으로는
이 특별한 신분, 곧 자녀라는 지위를 얻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일꾼에게 일꾼의 도리가 있다면,
자녀에게 자녀의 도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일꾼으로서의 사명이 아니라 자녀로서
아버지의 명예를 자랑하고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여기시는데
우리가 일꾼같이 생각하고 일꾼처럼 행동한다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악덕 업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여긴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까울 것입니다.
자녀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일꾼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가지는 관계는 분명히 다르며,
약속도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모든 봉사는 자녀로서의 봉사입니다.
그래서 특권이고, 기쁨이며,
하나님과 함께 동역함이 영광인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을 때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였던 모든 기도가 응답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된 영광을 누리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녀의 특권, 자녀의 권세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맡겨진 자리를 잘 감당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귀한 도구로 쓰임받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
하나도 하나님 없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없음을 깨닫고
내 모든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온전히 맡겨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관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처럼 늘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