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마태복음 22:29-30(신약 38쪽)
설교제목: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1. 찬송가: 450장, 내 평생 소원 이것뿐
2. 성경봉독: 마태복음 22:29-30(신약 38쪽)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 말씀나눔: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저는 최근에 계속해서 ‘부활’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이에 관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할수록 부활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무엇일까요? 제가 최근까지 공부하면서 깨달은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심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에 대한 믿음이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가능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세상의 삶을 넘어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성취를 이루고 또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가 아니라, 우리는 그 이상의 것 흔히 영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추구하며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생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바로 부활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것을 줍니다. 그리하여서 우리는 부활을 통하여서 이 세상을 넘어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라 여겨집니다. 어떤 조직신학자도 이에 관해서 말하기를 우리는 전통적으로 구원에 관계된 칭의를 핵심적인 교리로 배워왔지만, 이는 종교개혁 특별히 루터의 신학에 따른 영향이지, 성경이 본래부터 중요하게 가르친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계된 것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부활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태동할 수 있었고, 초대 기독교인들은 이 부활의 증인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부활을 아는 일이 기독교 신앙에서 참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착각을 합니다. 부활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 사실 제가 착각을 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말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우리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을 통해 부활에 관한 오해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에서 사두개인들이 성경을 또한 하나님 능력을 잘 알지 못해서 오해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는 논증을 하기 위해서 형사취수제를 가지고 와서 부활의 맹점을 공격하려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부활을 오해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오해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부활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부활이 다른 것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차이를 사두개인들이 알지 못했음을 말해줍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 후에도 현재의 삶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했는지 모르나, 예수님은 부활의 삶이 그와 같이 않음을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우리가 속한 세계의 방식으로 이해하다보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부활은 현재의 삶의 연장이 아닙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은 부활이 아니며, 마치 뭇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환생과 같은 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우리로써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차원에 속하는 일인데, 이에 관한 힌트를 좀 엿볼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은 시공간을 초월한 영적인 세계와의 조우입니다. 그것은 시공간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로써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분리되어서 어떤 세계 이른바 천국이나 지옥과 같은 세계에 속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경은 우리 죽음이 완전한 죽음 곧 영혼과 육체의 완전한 죽음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 그것이 부활된 존재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시간에서는 미래적으로 경험될지 모르나,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현재에도 일어나는사건입니다. 마치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대화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부활의 세계를 믿고 받아들이는 우리는 이 세계 너머의 것을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과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교리로써의 부활이 아니라, 오늘 현존하는 부활로써 믿고 받아들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로부터 온전히 시작될 수 있습니다.
바라건데 오늘도 현존하는 부활의 믿음을 통하여 이 세상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