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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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1:26(구약 2쪽)
설교제목: 대화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시겠지만, 조만간 담임목사님이 안식기간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를 놓고 앞으로 제가 맡을 예배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번에 기독교 교리에 관해 같이 나누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내용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를 설교로 준비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 교리가 공부를 하면서 참 중요하고 흥미로운 점이 있는 것임을 알게 됐어요. 물론 제가 흥미롭다고 말한 것이 대체로 저에게만 흥미롭게 다가오는 경향이 있긴 한데요. 그래도 공부를 하면서 이 내용을 같이 나누는 것이 저와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제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해 공부하면서 좀 새롭게 보게된 성경구절이 있는데요. 이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흔히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이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나타내고 증거하는 성경 구절로 종종 사용됩니다.
이건 제 생각인데 아마 그 이유는 우리가 방금 읽은 성경구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켜 ‘우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나는’ 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성경은 하나님이 스스로를 ‘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드러나는 부분이라는 것이죠. 또 우리라는 표현이 세 번이 반복되는 것도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을 나타내준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제 얘기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물론 저와 비슷하게 설명하는 분들이나 또는 책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분야의 전문가 다시 말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해 연구하는 신학자는 그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깐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이 흔히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여주는 성경구절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과 전혀 관련이 없는 성경구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구약성경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직접인 표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표현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지요.
그럼에도 제가 오늘 이 창세기 1장 26절의 성경구절을 설교의 본문으로 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성경구절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직접 관계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에 참으로 좋은 성경 구절이라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 장면은 마치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서로 대화를 하는 장면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는 과정을 일방적으로 이루신 것이 아니라 대화와 같은 소통의 관계 속에서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믿고 예배하는 하나님이 이러한 점에서 얼마나 자상하시고 또 우리에게는 인격적이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권능을 가지신 분입니다. 막말로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지 않게 행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경외해야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마냥 독재차처럼 일방적으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님을 오늘 성경 구절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화하시며 창조를 이루시고 그 사역의 절정인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새롭게 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대화를 하시는 하나님이라면, 그 분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 옵니까? 막 칼을 들고 우리를 위협하거나 두렵게 만드는 존재로 여겨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다 따뜻하고 자상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으십니까? 저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우리가 흔히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대화 좀 하자’라는 것은 그렇게 편안한 느낌을 주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말을 하면서도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이 문제를 힘으로 강제해서 풀겠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온화하게 풀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을 겁니다.
그리고 대화는 기본적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그와 대화한다는 것은 그의 나이와 성별과 사상을 불문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또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상대를 얕잡아 본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훈계나 질책이 될 것이고 반대로 내가 상대를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지시와 전달을 받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평등하지 않거나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관계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진정한 대화가 아닌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대화를 하시는 분이라면 그 분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계신 걸까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개의치 않고 우리와 만나주시고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이러한 분이라는 것을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공부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러한 분이시기에 또 하나님은 우리가 그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마치 구약성경 레위기에 보면 이런 구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너희 곧 하나님의 백성도 거룩하여야 한다’라는 것처럼, ‘하나님이 대화하시는 분이시니 우리도 대화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또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삶의 방식을 따라야하는지를 하나님이 대화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통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삶의 방식도 대화하시는 하나님처럼 상대를 존중하고 밝고 따뜻해야 하지 않은가 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저는 종종 교회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듣습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는 관계들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누가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하기 보다는 이대로 괜찮을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저는 이 점에 관해서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지를 꼭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분은 결코 군림하거나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말을 거시고 우리를 존중하시며 대화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대화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삶의 방식과 우리의 모습이 일치하는지를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저와 우리 성도님들이 대화하시는 하나님과 같이 서로를 존중할 줄 알고 서로를 아끼고 귀히 여기는 귀한 사랑의 관계를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