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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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58:10-11(구약 844쪽)
설교제목: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58편은 악한 통치자에 심판을 간구합니다. 제가 이 시편을 읽으면서 상당히 놀랐던 구절이 있는데,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오늘 시편 말씀 6절에서 9절까지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나무든지 불 붙는 나무든지 강한 바람으로 휩쓸려가게 하소서
시인이 하는 말은 거의 저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특히나 8절은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거의 이런 말로 들리는데요. ‘당신이 말라죽었으면 좋겠고, 당신이 태어나자 마자 즉사했으면 좋겠다.’ 제가 너무 격하게 받아들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멸하는 달팽이 같고, 만삭되어 출생한 아이가 햇빛보지 못함 같게’ 해달라는 말이 상당히 무섭게 다가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실지 몰라도 저는 성경에서 이렇게 잔인한 표현을 쓰는 것이 약간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한편으로 이는 시인이 악한 통치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일 겁니다. 또한 악한 통치자가 매우 극심한 폭력을 시인에게 휘둘렀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시인은 그와 같은 고통을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로 하나님께 심판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우리가 종종 듣게 되는 원수사랑과 같은 높은 차원의 윤리만 아님을 생각합니다. 불의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이웃사랑 또는 원수사랑이라는 가르침에 빗대어서 참고 견디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만은 아닌 것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이웃사랑과 원수사랑의 방향으로 나아갈지라도,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왜곡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착한아이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하고 착한 아이처럼 굴어야한다는 것이 일종의 세뇌되어서 자신의 감정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그로 인해서 마음에 병을 키우게 되는 것인데요. 자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이른바 ‘화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깐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왜곡시키지 않는 것어야 하는데요. 자칫 기독교의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이 죄의식을 낳게 하고요. 또 감정의 왜곡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오늘 성경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제한하거나 차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고통중에 있다면, 우리가 분노에 차 있다면, 그와 같은 감정들을 인정하시는 분입니다. 특별히 시편에 보면 그와 같은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만날 수 있는데요. 오늘 시편도 그 중에 하나이고요. 왜냐하면, 그 감정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앞서 말한 착한 아이처럼 보이려는 행동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속이려고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는 것은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가 그것에 대처함에 있어서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으니까요. 착한 아이 증후군이 문제라면, 또 분노조절 장애도 문제인데요. 결국은 우리가 감정을 잘 표현하고 그것을 잘 다루는 일이 중요한 것이겠죠. 그래서 감정을 억지로 왜곡해서도 안 되고 그 감정에 따라서만 행동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감정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모습에 깃들여 있는 것이 맞지만, 우리의 감정은 하나님 말고도 악한 영 곧 사탄의 영향을 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정을 잘 분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탄의 속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왜곡됨 없이 솔직히 받아들이데, 이것이 무엇으로 비롯되었는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여기에는 중요한 믿음의 반응이 필요합니다.
여러 감정이 다 중요할 수 있겠지만, 표출되었을 때, 가장 위험성을 지닌 감정은 분노가 아닐까 합니다. 분노가 잘못 표출되면, 갈등이 깊어질뿐만 아니라, 엉뚱한 대상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와 같은 감정을 표출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믿음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통해 나타납니다. 오늘 시편 10절에서 11절까지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시인은 앞서 보았던 것처럼, 원수가 되는 악한 통치자에 관해서 굉장한 분노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에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믿음에는 자신의 분노를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겠다는 결단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 중에서 약간 신경에 쓰이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10절이 그것인데, 악인들이 보복당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또 그의 피로 발을 씻는다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원수에 대한 복수가 시인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물론 고통을 당한 자의 입장에서 원수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복수를 대신해주는 통쾌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원수사랑의 윤리와는 좀 맞지 않는 것도 같고, 뭔가 하나님을 분풀이를 대신해주는 분으로 격하시키는 것도 같아서 그렇게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해설하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의인이 기뻐하는 것은 복수의 통쾌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셔서, 정의를 바로 세우셨다는 것에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시인이 말하는 기쁨은 복수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바로 세워진 것임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를 통해 시인이 보여주는 아주 분명한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당장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불의를 없애고 정의를 바로 세우실 것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믿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더나아가서, 우리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시인의 입장에서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악한 통치자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특정한 대상을 말한다기 보다는 그와 같은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대상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그러니 사실 나는 시인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관계에서 나는 어리석고 악한 통치자로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는 나로 인하여 고통을 받을 수 있는 것이고 관습에 따라 행했던 일들이 사실은 악에 관계된 불의한 일들 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히틀러가 유태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는 때에 그 일을 가장 유능하게 처리한 사람입니다. 그는 훗날 히틀러에 동조한 일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자신은 공무원이니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은 당신이 처한 위치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결과를 제대로 사고하지 않았다는 것이 죄라고 재판했습니다. 결국 그는 교수형에 처해져 죽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관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오늘 그것이 시인의 믿음이고 또 오늘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는 분명해집니다. 내가 약자일 때든 강자일 때든 관계없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믿음이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관계를 둘러 보십시오. 내가 함부로 대하거나 핍박하는 사람은 없는지 나를 핍박하는 사람을 포함하여 나의 삶을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오늘도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