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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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60:10-12(구약 845쪽)
설교제목: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시편의 표제어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에” 이 시편도 다윗 보다 정확히는 다윗의 군대장관이었던 요압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시편임을 뜻합니다. 그런데 사실 해당 내용을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이와 가장 유사한 내용을 구약성경 사무엘하 8장 13절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그리고 동일한 내용이 구약성경 역대상 18장 12절에 나오는데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인지라” 다시 말해서 요압이 소돔골짜기에서 에돔사람 만 이천명을 죽였다는 얘기는 성경에 없습니다. 대신에 비슷한 이야기가 사무엘하에서는 ‘다윗이 소금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 천명을 죽였다’고 나오고요. 같은 이야기가 역대상에서는 ‘다윗의 장수 아비새가 소금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죽였다’고 나옵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요. 시편의 표제 그러니깐 제목이 실제 성경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요. 시인처한 상황을 역사 이야기에 대입해서 또는 관련지어서 시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은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의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인데요. 과거에 전쟁에서 패배한적이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은 관련된 다윗의 이야기가 이와 같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다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죽게됨으로써 더 이상 쫓기는 신세에서 벗어납니다. 다윗은 그 사이에 큰 세력을 형성했고 그 과정에서 결국 사울을 대신하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전쟁에서 계속 승리를 얻게 되었는데, 이 전쟁의 승리는 다윗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시편의 시인은 결국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오늘 시편을 놓고 설교를 준비하면서요. 시편의 교훈은 아주 명확한데, 이것을 어떻게 우리 성도님들께 잘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오늘 시편의 결론은 계속 반복하지만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이지요. 좀더 덧붙여서 말하자면, 오늘 시편에 나온 구절처럼,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놓고 생각해 봤습니다. 현재 우리가 치루는 전쟁이 있는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현재 전쟁을 치르고 있죠. 그런데 그것말고 오늘 저와 우리 성도님들은 전쟁을 치루고 있을까요? 우리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처럼 미사일을 쏘면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삶에서 치열하게 분투하는 것을 종종 전쟁으로 비유하기도 하니까요. 우리 각자는 나름대로 어떤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우리가 치르는 전쟁이 모양은 달라도 결국 영적전쟁이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 모인 우리가 다 하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세상적 가치와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는데요. 이는 결국 세상의 가치를 쫓아 살아가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세상과 충돌하는 일이고 달리말하자면 영적전쟁을 치루는 일이 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런 충돌과 갈등을 경험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신앙인다운 삶을 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저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어떤 영적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말입니다. 관련해서 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어머니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최근에 퇴직을 하였고, 현재는 일을 하고 있지 않아서, 연금 외에 고정수입이 없습니다. 다만 어머니는 시어머니, 제게는 할머니를 모시고 살기 때문에 친척과 가족으로부터 일정부분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아버지는 중국에 사업차가셔서 오랜 기간 머무르고 있는데, 가정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진 못합니다.
여튼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현재 나가는 월세가 부담이 된다고 하셔서, 이를 저와 상의하고자 연락을 하였습니다. 제가 흔쾌히 월세를 부담하겠다고 했으면 얘기가 간단했겠지만, 저도 계산이 복잡해서 우선은 고민해보겠다고 하고 얘기를 마쳤습니다. 사실 월세가 엄청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제가 매달 어머니께 보내던 금액에 두배였습니다. 기존에 보내던 돈도 매달 고정지출이 되니 약간의 부담이 있었는데, 그것의 두배를 감당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계산을 해보니 불가능하진 않아서 다시 어머니께 연락을 드려서 월세를 제가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겪으면서 저의 약한 부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또 스스로가 목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본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통장의 잔고이고, 내 주머니에 들어 있는 금전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월세를 부담하는 것은 제 경제상황에서 그렇게 편안한 선택은 아닙니다. 또 저는 오랫동안 학자금 대출을 갚았던 기억이 있어서 경제적인 문제에 좀더 예민하고 신중한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반응과 행동 속에서 저는 경제적인 영역에서 제가 가진 약점을 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 부분에 관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저의 영적전쟁이 여기에 있습니다. 경제적 문제로부터 자유함을 잃어버리고 통장잔고에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저축도하지말고 대책없이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통장잔고와 경제적 상황이 저에게 근심과 염려 또는 불안감을 주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이렇게 염려하고 근심하는 마음이 신앙인의 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불안을 떨쳐내는 일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은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의지적으로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의지가 꺾이는 순간에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의 시인도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고 합니다.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내 노력과 내 의지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건데, 오늘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께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전쟁을 하나님께 승리하게 하신다는 믿음을 달라고 말입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승리를 경험하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