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나의 요새입니다.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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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59:14-17(구약 845쪽)
설교제목: 주는 나의 요새입니다.
시편 59:14–17 NKRV
그들에게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59편의 제목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 이는 이 시편이 다윗의 생애에 관련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인데요. 구체적으로는 구약성경 사무엘상 19장 11절 이하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딸 미갈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다윗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을 시기한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다윗과 미갈의 처소에 암살자를 보냅니다. 그러나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다윗은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윗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에 관하여 감정이입을 하여 아마도 시인은 자신에 닥친 불행과 연결하여 시를 쓰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시인이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윗의 이야기를 근거로 생각해 볼 때, 시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무척 억울하게 느껴지는 듯 합니다. 실제로 오늘 시편 4절에서 시인은 “내가 허물이 없으나”라고 자신의 무죄함을 얘기합니다. 마치 다윗이 사울 왕의 질투로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과 시인이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인은 원수들의 공격의 맹렬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개’라는 은유를 사용합니다. 오늘날에는 반려견이라는 지위로 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었지만, 고대 사회에서 또는 성경에서 개는 공격적이고 부정적이며 위협적인 동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의 모습을 생각하기보다 무리지어 다니는 야생 들개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 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개의 모습에 더 잘 어울릴 것입니다.
이렇게 시인은 자신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을 위협하는 적들로부터 고난에 처해 있음을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더불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요새가 되심을 고백합니다. 마치 이는 어린아이가 부모의 품에 안겨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모양새입니다. 시인을 공격하는 개와 요새가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어서 하나님의 품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번 그림으로 떠올려 보세요. 야생 들개가 우리를 막 쫓아오다가 우리가 안전한 건물로 피신했을 때, 그 개가 밖에서만 짖기만 할 뿐 더이상 위협을 할 수 없게 되는 장면을 말입니다.
이처럼 시인은 하나님께서 마치 요새처럼 자신을 안전히 지키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처럼 고백하는 것인데, 다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오늘 시편 14절에서 16절까지 말씀입니다.
시편 59:14–17 NKRV
그들에게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앞서 설명을 드렸으니, 방금 읽은 구절에서 시인을 공격하는 개와 시인을 보호하는 요새이신 하나님이 크게 대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시인은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이 시편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좋은 말씀인 것은 알겠는데, 너무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목사가 하나님 말씀을 경홀이 여긴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우리가 이성이 있고 지각을 하는 사람이니 똑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것에 있어서는 지루하게 또는 식상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근에 연속해서 시편의 말씀을 우리가 보고 있는데, 다윗과 관계된 시편이 계속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다윗이 사울 왕의 공격을 피해서 여기저기 숨었던 일 또 그 과정에서 수치를 당했던 일 등이 그것입니다. 처음에 한 두 번은 그와 같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한 다윗의 면모 또는 그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시인의 시가 특별하게 다가왔지만, 그것이 지금 몇 차례 반복이 되다보니깐, 설교를 준비하는 제 입장에서 또 그것을 들으시는 우리 성도님 입장에서도 같은 얘기를 너무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것이 아무리 하나님 말씀이지만, 좀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론 그와 같은 식상함이 성경의 가르침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고민을 해봤습니다. 대체 시편의 내용이 왜 이렇게 동어반복이 되는 인상을 받는지 말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론 시편이라는 것이 사실은 길게보면 약 1000년이란 시간을 거쳐서, 여러 편의 시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라서, 사실은 이 시편을 최종적으로 편집한 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시를 배열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냥 제 상식에서 생각해보면, 보통 분류를 할 때,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나누기 마련인데, 같은 것은 묶고 다른 것은 분리를 하니 그 과정에서 시편이 이렇게 비슷한 내용을 묶었고 그 내용들이 우리가 보고 있는 장에서는 연속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종이를 비롯해서 책이나 어떤 기록물이 귀하던 고대에 이렇게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상황과도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이야 종이가 흔하고 기록물을 꼭 문서가 아니더라도 컴퓨터와 같은 기기에 저장을 할 수 있으니, 잡다한 기록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고대 사회에서는 기록을 한다는 것은 보다 엄격한 과정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을 필사했던 어떤 경건한 이들은 성경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오면, 목욕재계하고 이전에 새로운 펜을 사용하여 기록했다고 했을 정도로 기록을 하는 일 특히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일을 굉장히 중요하고 엄숙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보아왔던 시편의 내용들이 반복적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반복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제가 깨닫게 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은 당연히 반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제껏 살펴보았던 시인들의 신앙고백 이를테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만을 믿고 따르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달리 보자면, 나는 어쩌면 그것을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이제 그건 다 아는 얘기인데, 그만해도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왜 그와 같은 차이가 날까를 생각하다가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그것을 중요하다고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일거라고 말입니다. 머리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중요하지라고 동의하지만, 실상 삶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이 중요한 일로 경험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편을 기록한 시인과 이를 최종적으로 편집한 이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험했던 이들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신앙생활 가운데 이것이 정말 중요해 이것이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이야라는 것을 이와 같은 시편을 기록하고 편집함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하나님을 잘 믿고 그분을 의지하는 삶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그것이 대체로 동의가 되실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와 같은 경험을 이루고 있습니까? 정말로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까? 어쩌면 불행하게도 저처럼 머리의 생각만으로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오늘 시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이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요새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서 그와 같은 믿음의 고백과 믿음의 경험이 나타나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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