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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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 4:14-17(신약 332쪽)
설교제목: 부활에 관하여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가득하길 축원합니다.
오늘은 안타깝게도 전도사님이 코로나로 격리를 해야되는 관계로 제가 대신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합니다. 오늘이 격리 마지막 날이라 다음주에는 다시 만날 것인데, 오늘이라도 위해서 기도해주고 문자로라도 안부물어주고 하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여러분들과 마주하니깐, 약간은 긴장이 되네요. 이전에 저와 함께 예배한 이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저는 좀 진지한 편입니다. 오늘도 진지한 얘기를 나눌려고 하는데, 여러분이 신앙생활 하면서 꼭 알았으면 하는 것이 있어서 그에 관해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물어볼게요. 여러분은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물론 잘 모르겠다고 답할 수도 있을텐데, 둘 중 하나만 정해서 답해봅시다. 한번 살짝 손을 들어볼까요? 나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아요.) 그러면 반대로 나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한다? (좋아요.)
아무래도 우리가 교회에 있고 하니깐, 대부분은 영혼이 있다고 답을 하는데요. 제가 이에 관해 본 유튜브 영상중에 이런 것이 있었어요. 어떤 유명한 과학자가 ‘영혼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이에 관해서 한 신학자가 답하는 것이었는데요. 그는 과학자의 이러한 발언은 ‘선을 넘었다’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과학으로 영혼의 존재유무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생각해보면 이것이 맞는 말인 것이 과학은 어떤 대상을 측정하거나 관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영혼을 측정하거나 관측할 수 있지 않죠. 물론 유튜브에는 영혼과 비슷한 귀신을 목격했다는 얘기나 그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영혼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물질과는 다른 비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것을 측정하거나 관측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죠. 그러니 그 신학자의 이야기는 타당한 것이죠. 과학자가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이를테면, 신의 존재에 관해서 또는 영혼의 존재에 관해서 그것이죠. 그런데 이에 관해 자신의 권위를 바탕으로 얘기한다는 것은 말그대로 ‘선을 넘는 행동’이죠.
이것으로부터 그 신학자는 성경에서 말하는 영혼에 관해 설명해줘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또 묻죠. 아까 여러분들 대부분은 영혼이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영혼은 어디에 있죠? 또 영혼은 무엇인가요? 아마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요. 이와 같은 생각을 할 거예요.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사람이 죽으면, 어떤 비물질적인 존재 이른바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데, 그것이 어떻게 몸속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음 이후에 몸밖으로 나오는 물질이 아닌 어떤 것이라고 말이죠. 특히나 영상매체들이 이것을 나름대로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영혼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들이 있을 거예요.
앞서 말한 신학자는 이러한 식의 영혼에 관한 이해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얘기해요. 보통 우리 생각하는 영혼에 관한 이해를 영육이원론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영혼과 육체가 따로따로 존재한다는 거예요. 또 육체는 죽으면 썩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영혼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독교는 우리가 죽으면 그 영혼이 천국과 지옥을 심판에 따라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불교는 이른바 카르마에 따라 윤회한다고 보는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무속 종교에서는 이와 같은 영혼이 무당에게 깃들어서 무당이 점을 치고 영혼의 중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죠. 또 그것이 이 세상을 떠도는 것을 귀신이라고도 하고요.
그런데, 그 신학자는 말하길 성경에서는 그와 같은 영혼은 없다는 거예요.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그와 같은 영혼’이라고 했어요. 영육이원론에 따른 불멸하는 영혼을 말하는 거예요. 성경은 영육일원론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영혼과 육체가 하나이고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죽는다는 것을 말해요. 물론 성경을 좀 읽어본 친구들은 당장에 성경을 펴들고 저한테 따질지 모르는데요. 성경에도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듯한 이야기들이 나와요. ‘육적인 것’ 또는 ‘영적인 것’과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죠.
그러면 제가 좀더 잘난척하면서 얘기를 해야하는데요. 성경에서 말하는 영혼은 히브리어로는 네페쉬라고 하고 이를 헬라어로 옮긴 것을 퓨뉴마라고 해요. 이것이 본래 뜻하는 바는 ‘숨, 또는 생명이나 목숨’을 뜻해요. 한글 성경에서는 이것이 영혼으로 번역이 되기도 하지만, 똑같은 단어를 ‘생명이나 목숨’으로 번역하기도 해요.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은 사실은 신앙적인 것과 비신앙적인 것을 나누는 것을 말해요.
그러니 따지지 말고 들으세요.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영혼을 말하지 않아요. 다시 말해서 사람이 죽을 때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와 죽지 않고 떠다니는 영혼은 없어요. 성경은 그러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요. 그러나 성경이 영혼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사람을 만드시면서 여러 동식물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주셨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인데요. 이는 우리가 다른 동식물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인데요. 그것이 다름 아닌 영혼이라 할 수 있어요.
잘은 몰라도 제가 알기론 동물은 거의 본능에 따라서 움직여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 고양이들도 보고 있으면,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교회에서 밥을 주다보니깐 고양이들이 밥먹으로 교회에 종종 와요. 그런데 밥주는 것을 아는지 때때로 여러 마리가 오는데, 제가 알기로는 분명 부모와 자식의 관계인데, 먹는 것 앞에서는 가차없더라고요. 자식이 먼저 먹도록 양보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식을 한대 쥐어박고 먹이를 먹어요. 물론 제가 그들의 관계를 오해했을 수도 있고 그 상황을 잘 몰랐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보통 동물이 막 먹는 것을 앞에 두고 서로 양보하거나 체면차렸다는 얘기는 들어본적이 없네요.
그런데 사람은 참 달라요. 배가고파도 경우에 따라서 양보할 줄 알고요.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많은 부분 희생을 감수해요. 물론 반대일 경우도 있고요. 어째든 사람은 본능에만 충실하지 않고 사람들 간에 관계에 따라 양보나 희생을 할 줄 알아요. 이와 같은 것이요. 사람을 동물과 다르게 만들고 흔히 인격이라고 부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성경에서 말하는 영혼이라는 거예요.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인격적이지 못하거나 동물과 다를바 없다면, 그 사람은 영혼이 없다는 얘기도 되겠죠.
이렇게 성경은 영혼이라는 것이 육체와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무엇이라고 보지 않아요. 육체 속에 깃들여서,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뿐만 아니라 영혼의 죽음이기도 해요.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죽으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영혼이 쑥 나와서 저 세상으로 가가서 이 세상을 떠돌거나 하지 않아요. 우리가 죽으면 완전히 끝나는 거예요. 아무것도 남지 않고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이 아주 특별하게 다가오는 거예요.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볼게요. 신약성경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17절입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앞서 제가 얘기했어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요? 완전히 끝난다고요. 아무것도 남지 않고요. 그런데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 뭐라고 하냐면,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서 부활하게 된다고 얘기해요. 원래 우리는 죽으면 완전히 사라지는 존재였는데요. 예수님은 우리가 죽음 이후에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우리를 부활시켜주신다는 거예요. 부활이란 바로이런 거예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새롭게 살려주셔서 우리에게 새소망을 주시는 것 말이죠.
우리는 지난 4월 9일 주일 이후로 부활절을 보내고 있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기념하고 축하는 절기이죠. 여러분들에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남의 잔치에 가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인가요? 만약 부활이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여러분은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부활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 피흘리신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사건이에요.
저는 여러분이 이 부활절을 보내면서 그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죽으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시고 새로운 소망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 때에 과거에 이별했던 사랑하는 이들과 다시 만나게 되는 거예요. 영영 못볼 것 같았던 이들을 부활을 통해 기쁨 가운데 만나게 되는 것이죠. 바라건데 여러분이 이와 같은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