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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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22:29-30(신약 38쪽)
설교제목: 부활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마태복음 22:29–30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최근에 ‘부활’이라는 주제에 깊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부활절이라는 교회력에 따른 절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최근에 몇차례 설교할 상황이 생겼는데, 부활에 관한 주제를 같이 나누려 준비하다보니까요. 성경을 포함하여 부활에 관한 자료를 이래저래 많이 살펴보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부활에 관해 공부를 하면서 분명하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부활이 참 중요하고 놀라운 것임을 말이지요.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돼요. 부활을 아는 일이 참 좋고 너무나 흥분되는 일임을 말이지요.
비유하자면 이런 느낌 같아요.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이야기를 참 좋아해요. 그래서 이야기가 담긴 드라마, 영화, 애니매이션, 책 등을 즐기곤 하는데요. 이야기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궁금하게 만들잖아요. 특히나 재미있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죠.
그래서 드라마도 제일 궁금할 때 딱 멈추고 다음 화에 계속 이러죠. 제가 공부를 하면서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좋은 강의나 좋은 책을 만나면 그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지고 또 얼마나 깊이 있는 세계를 보여줄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최근에 부활에 관해 공부를 하면서 좋은 강의를 만났는데요. 그 강의를 듣다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그리고 아직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재밌는 이야기를 먼저 본 것 같아서 그것을 어떻게든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막 생기고 그래요. 그러면서 오늘 부활이라는 주제를 놓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떠올리게 됐어요. 이 성경구절을 떠올린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좀 있다 말씀드리기로 하고요. 이 내용을 먼저 설명하자면 이래요.
예수님 당시에 부활이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어요. 성경에서는 놀랍게도 그들을 사두개인이라고 소개하는데요. 사두개인이 누구냐면, 제사장 사독의 후예들이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주도하던 이들이었어요. 구약성경으로치면 레위족속과 같은 이들이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부활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것이 일반적인 경우에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는데, 부활이라는 것이 참 신비로운 일이니까요. 그런데 종교지도자의 한 그룹 제사를 주관하는 이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죠. 어느날 이들은 예수님께 교묘한 질문을 가지고 와서 부활이 없음을 논증해요. 이런 거예요.
이스라엘에는 형사취수제도라는 것이 있어요. 우리 상식에는 좀 이상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은 이런 거예요. 형이 자식을 얻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에게서 그의 대를 이을 자손을 보아야 했어요. 이는 당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의 삶이 곤고해지기 때문에 남편의 재산을 물려받고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였어요.
그런데 이러한 제도를 근거로 사두개인들이 부활이 없음을 논증하는 거예요. 만약에 칠형제가 있는데, 맏이가 결혼하였으나 자식을 얻지 못하고 죽고 후에 형제들이 형사취수제에 따라 맏형의 아내를 맏아들였으나, 모두 자식을 얻지 못하고 죽고 마지막에 그 여인도 죽으면, 부활의 때에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거였어요. 실제로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겠지만,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이지요. 사두개인들은 이를 통해 예수님도 부활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길 원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시죠. 그와 같은 생각이 틀렸다고 말입니다. 부활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에게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몰라서 그와 같은 오해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부활의 때는 이 땅에서처럼 시집가고 장가가지 않는다고 오히려 천사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가 부활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이야기를 말씀드리는 것은 이렇습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사두개인들처럼 부활에 관해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에 관해서 나름 안다고 생각하지만, 대체로 우리가 부활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은 부정확할뿐 아니라, 틀린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인간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신비라고 표현해야하는 것이 옳은데요. 그렇다고 해서, 부활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 성경이 부활에 관해 어느 정도의 설명을 우리에게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부활은 소생이나, 환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라신 사건은 소생이지 부활이 아닙니다. 사두개인들이 형사취수제를 문제삼아서 부활이 없음을 논증하려 했으나 그것 환생이지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영적인 차원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구약성경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많은 군대가 엘리사의 집을 둘러쌉니다. 이에 그의 사환인 게하시는 두려움에 떱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게하시로 하여금 하나님의 군대인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합니다. 부활은 그와 같은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또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또한 영적인 세계가 경험되어지는 장면이고 부활에 관계된 사건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세레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는 장면도 우리 생각하는 저 하늘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스는 영적인 세계가 열려지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깐 부활은 이미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영적인 차원의 세계를 맛보고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는 미래에 경험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신비의 세계이고 사건입니다. 부활은 지금 현재에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일이며, 그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는 증명불가능 한 것이고 경험된 이들의 증언으로만 설명되어지는 세계입니다. 그러니 이를 인간이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지 경험된 이들에게서만 증언으로써 알려진 세계입니다.
이게 참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인데, 이렇게 이해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을 만났다라고 말하는 사건 또는 그와 같은 고백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확실한 것이지요. 그래서 참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냥 믿고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너무 확실해서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세계 밖에 있는 또는 그 세계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이 세계를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것과 비슷해서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냥 좋고 그냥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을 아무리 이런저런 이유로 설명을 해도 당사자 말고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형태의 차이는 좀 있을지라도 그것이 주는 기쁨과 감격이 있는 것이죠.
부활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지점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꼭 이해되어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믿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 분명해지는 것인데, 그 믿음도 막 믿으라고 한다고 또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지 않으면, 그것을 또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잘 납득이 안 되는 신비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아주 분명한 것은 부활을 믿고 받아들인 인생은 바뀐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현재의 연장이 아님을 알기에 현재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세계에 시선을 두고 그 세계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수요예배 설교를 통해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부활이 인생역전을 이루는 놀라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현재의 삶에 연연해 있고 세상적 성취에 연연해 있다면, 우리는 부활을 잘 모르고 있거나,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서 부활을 모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놀라운 부활의 영적이고 신비한 세계를 경험하고 참으로 부활을 통해 우리의 삶이 새롭게 변화되어지는 바랍니다.
오늘도 부활을 깨닫고 그 놀라운 세계를 맛보며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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