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는 삶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3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시편 57:7-11(구약 843쪽)
설교제목: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는 삶
시편 57:7–11 NKRV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 57편의 제목 또는 표제어라고 하는데요. 그것을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이는 어제 우리가 살펴본 시편 56편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이야기과 관련이 있는 시편임을 뜻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구약성경 사무엘상 22장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어제 잠깐 소개해드린 사무엘상 21장의 내용과 이어지는 것이라서 연결해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다윗은 사울 왕의 질투로 목숨에 위협을 받고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21장에서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당시 이스라엘의 적국인 블레셋으로 갔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가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죽인 것이 탈로날 지경에 이르자 그는 침을 흘리며 미친척 연기하여 그곳을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22장은 그 후에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의 유대땅 아둘람 굴로 피신했음을 보여줍니다. 앞서 본것처럼 오늘 시편의 표제어에서 “다윗이 사울을 피해 굴에 있을 때”라고 했는데, 바로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었던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앞서 블레셋에서 큰 수치를 당하며, 여전히 사울 왕의 위협을 피해 굴에 숨어들어야 했습니다. 놀랍게도 다윗은 이곳에서 큰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다윗과 같이 환란당하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었고 그 수가 400명 가량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무리들 중에서 다윗은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시편을 쓰는 시인이 다윗의 이와 같은 이야기를 배경으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인 역시 다윗과 같은 어려움 중에 있고, 원수들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와 같은 상황을 오늘 시편 4절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편 57:4 NKRV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그러니깐 시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마치 사자들에 둘러싸여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고 원수의 공격이 창과 화살과 칼처럼 위협적이고 날카롭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시인이 상당한 곤경에 처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읽었던 성경구절을 기억하십니까? 어려움 중에 있는 시인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놀랍게도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고통 중에 또는 환란 중에 처한 시인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어떻게 시인은 고난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에 관한 힌트를 오늘 시편 6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57:6 NKRV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시인은 억울함을 느낄 정도로 원수들의 공격이 부당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시인을 그 위협으로부터 건져주셨고 도리어 그 화를 원수들에게로 돌리셨습니다. 결국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주신 것에 관해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 아닙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셨다면 모르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생기니까 도와주신다는 것이 어떻게 감사와 찬양을 드릴 일이 됩니까? 마치 놀부가 제비 다리 부러트려 놓고 제비 다리 고쳐주는 심보와 같지 않습니까?
혹시 시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은 아닐까요? 저같은 사람은 생각이 많으니까, 시시비비를 따지고 있지만, 시인은 아주 착한 사람이어서, 흐린 날은 슬프고 맑은 날은 기쁜 순수한 영혼의 사람은 아닐까요? 그러면 시인의 반응은 어쩌면 신앙적인 것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실 제가 어제 시편 56편을 나눌 때도 시인의 반응이 한편으로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오늘 또 시편 57편에서도 시인이 비슷한 반응을 보이니 좀더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가 시인처럼 순수한 영혼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인의 반응이 신앙과 무관한 것이라면, 교훈삼을 필요도 본받을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의 반응을 이해해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싸매며 궁리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얘기한 것처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나님이 조치해야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부인하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이 좀 복잡해졌는데, 설명하자면 이런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셨습니다. 그곳은 낙원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없고 충만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자유가 허락된 곳이었는데, 유일하게 선와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은 금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다면 좋았지 않겠냐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조상들은 죄를 짓지도 않았을 뿐더러 우리 역시 낙원에 살 수 있지 않았겠냐고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것은 창조의 실수라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여기에는 자유의지라는 신학적인 설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간단하게 생각보자면, 사실 그건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따진다면, 결론적으로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합니다.
종종 어린 자녀들은 부모에게 가시돋힌 말을 합니다. ‘자신을 왜 낳았냐고, 왜 낳아서 이러한 고생을 시키는 것이냐고’ 그 말은 언뜻 맞는말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식을 고생시키려 낳는 부모가 어디있습니까? 따지고보면 자식을 낳는 일이 부모에게 더 고생스럽습니다. 자식을 위해 부모가 얼마나 많은 헌신과 노력을 합니까? 그러니 부모는 사실은 자식을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낳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섭리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를 부모나 하나님에게 찾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닙니다.
막막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행복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존재하기 때문에 희노애락을 느끼며 행복에 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오히려 아무것도 알 수 없기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으니 행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태어났고 살아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럽다고 존재를 가능케 한 분께 따지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삶은 우리의 존재를 일으킨 하나님에 의해 또 돌봄의 대리자로 수여해주신 부모에 의해 지금껏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니 과거에 받은 은혜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찬양할 일 투성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잊고 현재의 불행과 어려움에 빠져버리면,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가 될 따름입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에 관한 경험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일이 아니라, 과거의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현재 시인에게는 고난이 닥쳤고 당장에 그 일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신 분 자신은 늘 위기로부터 구원해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입니다.
우리 안에 그와 같은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원망하고 저주할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셨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셧던 그분이 오늘 또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 안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