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마가복음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9 views
Notes
Transcript

마가복음1장5-11

샬롬, 반갑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 시간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참석한 서로를 향해 ‘사랑합시다, 성령충만 합시다.’ 로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5-11절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세례에 나타난 세 가지 특징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세례는 요단강에서 이루어집니다.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5절, 9절을 읽어보시면 똑같이 ‘요단강에서’ 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원문을 찾아보면 5절은 ‘요단강 안에서’ 라는 말이고, 9절은 ‘요단강 속에서’ 라는 차이점을 보게 됩니다. 5절의 요단강 안에서 라는 말은 완전히 들어 간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즉 세례요한이 베푼 세례는 완전한 세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9절에서 ‘요단강 속에서’ 라는 말은 완전히 잠겨진 상태를 말합니다. 즉 물에 잠겼다는 말은 완전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셨는데 세례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죄가 있으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 이셨지만 우리 죄를 대신 속량하시기 위하여 완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그 분이 죄가 있으셔서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땅에 죽으러 오셨다는 사실을 보이시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대접 받고 싶은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습니다. 남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을 사람들은 못 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영혼을 살리는데 내 자존심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내 체면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교회 안에 형식과 관습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영혼 아닙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망가뜨리시고, 자기를 무너뜨리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잉카네이션 성육신 하셔서 우리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면 어떤 망가짐과 무너짐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은혜가 그대로 우리에게 흘러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무엇이냐면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의 잃어버린 백성을 찾아서 생명을 구원해 내는 일입니다.
한 영혼을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죄인의 거죽을 뒤집어쓰시고, 죄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죽으러 오셨음을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나의 체면, 예배의 형식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생명이 구원받는 일이라면 간사가 망가져도 됩니다. 하나님도 망가지셨는데.. (순장들 순모임.. 그 모임을 통해 우리 순원 들이 자라난다. 때론 순모임이 제대로 잘 진행이 안될 때도 있고, 연락이 안 될 때도 있지만 우리 순원 들을 불러야 된다. 계속 사랑하고, 그들을 세워 가는데 우리도 찢어져야 된다.)
수요일 아침에 꽃무늬 앞치마 입고 밥을 준비하고, 설거지 하는 거 그게 한 영혼을 위한 거라면 밥 하는게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죄인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뭐가 대수라고 힘들겠습니까? 오늘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 없으신 그 분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나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똑같이 평등 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모두다 죄인이라는 사실이 똑같이 평등합니다. 그저 용서받은 죄인과 용서받지 못한 죄인의 차이 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죄인인 우리를 위해 자신을 망가뜨리고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세례에 나타난 3 가지의 특징이 있는데 그 첫째가 10절입니다. 성경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올라오시고, 성령님은 내려 오셔서 서로 맞물리고 가까워지고 하나가 됩니다. 연합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에 잠겼다가 올라오시는 것은 요단을 건넌다는 뜻을 의미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요단강을 건넙니다. 앞에선 제사장들과 언약궤가 요단강에 들어서자 물이 멈추고 갈라져 사람들이 건너 갈 수 있는 땅이 됩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올라 옵니다. 이것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요단은 죽음 너머의 천국 가기 전에 건너는 강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것처럼 요단을 건너면 천국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됩니다. 거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의 출발 지점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역사,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시는 세례는 구원받을 백성들을 위하여 요단강에서 새로운 사역을 참여 하시는 사건입니다. 이 세례에 나타난 첫 번째 특징이 ‘하늘이 갈라지다’입니다. 정확하게 이 말은 하늘이 임하는 것입니다.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오해를 하고 착각을 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간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구만 완전합니까?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면 온전해 질 수 있습니까? 아닙니까? 있습니다. 왜요? 완전하신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에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 쪽에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가까이 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하늘이 예수님에게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찾아 오셨습니다. 결국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10절을 다시 봅시다. 무엇이 내려옵니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여러분 이 비둘기이 형상은 어디에 또 볼 수 있었습니까? 바로 노아의 방주 사건 때 모든 심판이 끝나고 구원 받은 백성들에게 새 땅을 알렸던 새가 바로 비둘기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받는 세례는 구원이고, 새로운 땅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특징을 봅시다. 11절입니다. 하늘로부터 성부 아버지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여기서 ‘너’라는 헬라 말이 대문자로 쓰여 졌습니다. 즉 ‘바로 너!’ 하나님이 어떤 사명을 맡기면서 정확하게 지목 하실 때 ‘바로 너!’ 대문자로 씁니다. 예수님을 정확히 하나님께서 지적하고, 지목하는 사건입니다. 바로 이 아들이다. 예수가 바로 구원자, 메시아 이다. 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왜 오셔야 했습니까? 아까 하늘이 갈라졌다고 10절에서 보았습니다. 이 말이 마가복음의 끝 부분인 15장 38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아래에서 위로 찢어져야 되는데 성소의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집니다. 이 말은 인간이 찢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찢으셨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찢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하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이때부터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서 찢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처음에 하늘이 찢어지고,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찢어지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집니다. 그리고 하늘의 문이 열리고 구원이 길이 드러납니다. 그 길로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새롭고 산길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인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코로나로 인해 초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영남대 수많은 학생들이 여러분 한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우리 CCC 공동체 안에서 쉼을 얻고, 생명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인류는 죄로 인해 ‘안식’이 깨어짐으로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식’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인간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안식으로 초대를 하셨습니다. ‘참된 안식’을 얻기 위해 자기 스스로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남는 것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자기가 찾는 안식이 ‘돈’이라고 생각하여 많은 대학생들이 그 돈이 안식을 줄줄 알고 스펙을 쌓는 일과 돈이 되는 인간관계에 목숨을 걸어요..거기에 안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게 사라 질까봐 벌벌 떱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들을 두렵게 만들고, 떨게 만듭니까?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예수께 초점을 맞출 때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 분만이 길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자기 몸을 찢으시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을 통해 우리에게 새롭게 살길이 열렸습니다. 그 길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참된 안식이 없어 허무하고, 의지할 곳 없이 살아가는 우리 친구들에게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 참된 안식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믿고 참된 안식을 누리는 우리가 나눠주어야 합니다. 이번 여우사이가 그런 시간이 되길 바라고, 친구들을 초대하길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우사이에 초대합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뭐 해다 바치고, 열심히 하려고 해서 본인 스스로 구하지 마시고, 그냥 주님 안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들어 올 때 우리는 새롭게 태어납니다.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면 상상 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 하듯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 갈 때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영적인 세계가 펼쳐집니다.
이걸 한번 경험해 본 사람은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이 막 흔 들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만 가질 수 있는 자세입니다. 그 일을 위해예수님이 자기 육체를 찢으셨습니다. 누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주님 안으로 확 들어오셔서 이 세상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의 담대함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 하고 기도 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