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04_01:14-01:20_예수 사역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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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4–20 NKRV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1_우리는 하나님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입니다.
#2_해변을 거닐며 한적한 시간을 보내시다가 두 사람을 보고, 부르시는 장면.
#3_가버나움)벳세다와(3키로)가까운 어촌마을, 애굽과 다메섹을 잇는 고속도로, 선교전초기지, 장사중심지, 수입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세관이 있음, 갈릴리 호수에 어선은 약 330척정도.
#4_예수님은 벳세다사람들과 잘 알고 지내던 사이. 벳세다사람들도 예수님을 존경하고 특별한 분으로 여겼다. 어느 날 부르셨고, 그들은 따랐다.
#5_어부들은 자영업자가 아니다. 자기 배가 있어도 국가사업에 소속된 어부이다. 고기잡을 권한은 총독이나 헤롯에게 있었다. 이들로부터 고기잡는 권한을 하청받은 지역별 실세들이 있었고, 그 실세들이 고기잡는 권한은 브로커에게 팔았다. 이 브로커가 보통 세리들이다. 실제 어부들은 세리들과 7:3이나 8:2식으로 계약을 했다. 자기 배를 가지고 아무리 많이 잡아도 배당만 받게 된다. 대부분은 브로커들과 지역실세들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리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속으로 끙끙거리며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6_사회적 불만덩어리들을 부르신다. 앞모습만 보며 사는 불평덩어리들에게 뒷모습을 보는 눈을 뜨게 하신다. 배후에 있는 내용을 느끼게 하신다. 인격적 만남으로 사람을 불만과 불평에서 하나씩 놓이게 하신다. 자유함을 주신다.
#7_우리는 뒷모습을 보는 사람들이고, 뒷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뒤를 바주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받았으면 가서 그렇게 하는 것이 인생의 내용이 되게 해야 한다.
#8_때가 되면 공력이 불어올 텐데, 그 시간의 소멸을 견디고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의 상급이다. 오늘 내 현장이 하나님과 뒹구는 현실이 되게 하라. 우리의 인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greeting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있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ntro

_배경/인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고기잡는 많은 사람들 중에 네 명을 따로 끄집어 내시는 장면입니다. 당시 갈릴리 바다에는 대략 300척의 배가 있었습니다. 4명씩만 타고 있었으면 1200명이 있는 상황입니다. 그 중에 주님께서는 4명을 먼저 뽑아내십니다.
주님이 먼저 사람을 낚는 어부로써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4명을 부르셔서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4명을 주님의 손길로 해서 1200명 사이에 보내십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방법은 비슷합니다. 몇 사람 뽑아다가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 보내십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을 먼저 주님 만나게 하시고, 그 사람을 통하여 차근차근 다른 가족들을 부르십니다. 친구들 중에 한 사람을 먼저 하나님 체험을 하게 하시고, 그 사람을 토대로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십니다. 다만 사람들이 먼저 부름받은 우리들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우리의 생명은 세상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의 성전을 허물어 버리신 이후부터, 사람을 직접 만나십니다. 중간자가 필요없습니다. 오직 주님과 사람 사이에, 성령하나님께서 중간역할을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직접 만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성경을 직접읽고, 내 귀에 하나님의 심정을 들려줄 수 있는 설교자를 찾아야 합니다. 나를 하나님 가까이 데려다 줄 수 있는 예배 인도자를 찾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장치들을 본인이, 스스로에 맞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설교자가 되고 예배 인도자가 된다면 가장 좋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는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홀로 잘 서는 사람이 같이도 잘 섭니다.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 같이도 잘 지냅니다.
주님께서는 네 사람을 동시에 부르시지만, 각각을 따로따로 만나셔서 그 인생을 헤아려 주십니다.

conflict

_갈등/동요
베드로에게는 아내가 있습니다. 아내가 불임이 아니라면 베드로에게는 자녀도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장모님도 모셨습니다. 장모님은 오랜 병치레를 하고 계셨습니다. 고열에 시달리는 병이었는데, 위중한 병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생 안드레도 베드로와 함께 살았습니다.
베드로의 아내는 몸이 아픈 친정엄마를 간호하면서, 아이들을 키워내야했습니다. 남편뿐 아니라 같이 사는 시동생 뒷바라지도 함께 해야 했습니다. 대식구가 베드로를 의지하며 지냈습니다.
자기가 소유한 개인 배가 있다고해서 자영업가 아닙니다. 고기잡을 권한이 있는 배만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일명 조업권이 필요했습니다. 조업권은 로마총독에게 있었습니다. 바다 속에 있는 물고기들은 다 로마소유였습니다. 아무나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잡다가 걸리면 잡혀갔습니다. 로마총독은 갈릴리해안에서 고기잡는 조업권을 갈릴리지방 공문원들에게 알아서 관리하라고 넘겼습니다. 각 지방 공무원들은 현지 브로커들에게 큰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 중간브로커가 세리입니다.
베드로는 브로커 세리와 계약을 합니다. 10마리잡으면 베드로 1마리 브로커 9마리, 이런 식으로 조업권계약을 합니다. 중간브로커가 워낙 많이 떼가다 보니까 어부들은 속에서 천불이 났습니다. 그래도 입밖으로 불만을 꺼내 놓을 수가 없습니다. 브로커 눈밖에 나면 그마저도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에게 고기잡이는 평생직업이자 벗어날 수 없는 감옥입니다. 운명이고 현실입니다. 아내와 자식과 부모가 엮여 있는 베드로의 인생현장입니다.

event

_사건/심화
그 막막한 베드로의 현실을 멀리서 보고 계시다가, 주님께서 어느 날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1:17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주님께서는 가까이 다가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다짜고짜 갑자기 등장하신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에 대해 워낙 많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동생 안드레가 시도때도 없이 예수님에 대해 말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앉으나 서나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대화하는 일이 가벼운 일상입니다. 안드레는 세례요한을 쫓아다녔기 때문에 진리에 대해 듣는 풍월이 많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가르쳤고, 안드레는 새롭게 깨닫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느낌이 있을 때마다 형 베드로에게 말하고 함께 은혜를 나눴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예수님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리서나마 보면서 지내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갈릴리바닥에서는 유명인사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수님은 30세의 젊은 나이였지만,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강론을 리드하실정도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랍비였습니다.
베드로는, 알기는 알았지만 멀리서만 봤던 그 주님께서 오늘 말을 걸어오십니다
베드로는, 듣기는 들었지만, 어깨에 짊어진 식구들이 많기 때문에, 깊이 신경쓰지 못했던 그 주님께서 지금 손짓을 하십니다.
그물을 놓고 주님을 직접 따라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주님을 따르라니, 베드로는 아내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병상에 계신 장모님도 생각이 나고, 앞길 창창한 아이들도 눈에 밟혔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을 존경하고, 그 분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과, 직접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지내는 현실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저 분을 따라다니면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고,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빛과 같이 빠른 계산이 머릿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안하셨습니다. ‘너희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였습니다.

grace

_갈등해결
베드로의 현실은 냉혹했고, 주님의 제안은 무슨 뜻인지 금방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따라나섰습니다. 어떻게 주님을 따르겠다는 선택을 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주님의 부르심에 왠지 일어서야 할 것만 같아서 일어섰습니다. 여전히 아내와 장모님과 아이들이 베드로의 한 숨끝에 매달려있지만, 베드로는 주님을 따라가야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평생 감옥처럼 배에 갇혀서 그물질하며 지낼 것인가 아니면, 존경받는 랍비에게 부름받아 새로운 인생을 도모해 볼 것인가. 선택해야 했습니다. 머리속으로는 가장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인생의 무게쪽으로 계속 기울었지만, 마음은 이미 주님께 붙들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생각과 걱정과 한 숨을 다 붙들어 놓고, 주님을 따라 나서도록 뒤에서 떠미시는 은혜를 우리는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누가 스스로 주님을 선택해서 따르겠다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용기있는 사람이 몇몇이나 있겠습니까. 분명한 진리 앞에서도 스스로 머뭇머뭇하고, 분명한 것 없고, 잡히는 것 없어서 우물쭈물해도, 강권하여 영생의 길로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이끄시는분이 따로 계시는 것입니다.

point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대식구가 베드로 어깨에 매달려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reason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고기잡는 모습을 멀리서 오래 지켜보셨습니다. 아내를 위해서 그물을 내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그물손질을 하는 베드로를 오래 보셨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베드로의 앞모습을 넘어서, 피곤하고 지쳐있는 베드로의 뒷모습을 보셨습니다. 베드로의 어깨를 보셨습니다.

example

주님께서는 곧 베드로에게 집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9–31 NKRV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주님께서는 아무에게나 말 못할 베드로의 아픈 손가락을 별말씀 없이 위로해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장모님의 병고침은 그저 병치료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그날에 이르기까지 고생만했던 베드로의 아내,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만져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어떤 기술을 익혀야 하는 지를 배웠습니다. 사람의 앞모습을 넘어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안목의 기술을 배웠습니다. 또한 그 사람 뒷모습에 서려있는 인생의 무게에, 마음에 공명을 느끼고 별 말없이 위로하고 싶은 긍휼의 기술을 배워갔습니다.

outro

_명예로운 현실로 초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결론적으로는 관계의 기술입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나랑 내 앞에 있는 사람이랑 엮여서 같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술입니다.
사람을 하나님 나라로 낚는 기술의 첫 걸음은 그 사람을 오래 쳐다 보는 것입니다.
10초이상 쳐다보면서, 금새 풍겨져 나오는 그 사람의 이미지를 뒤로 그대로 흘려 보내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선입견도 뒤로 흘려보내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그 사람의 앞 모습을 넘어서 뒷모습이 보일 때까지 그 사람을 오래 쳐다보는 것이 사람 낚는 기술의 첫 번째 스텝입니다.
묵직한 그 사람의 뒷 모습이 보였다면, 이제 두 번째 스텝은 계산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어두운 뒷모습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계산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무겁기만한 뒷모습을 내가 공감할 수 있을지 계산해야 합니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력이 내게 있는지 살피고, 그럴만한 재력이 나아게 있는지, 그럴만한 성품적 실력이 나한테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할 수 있겠다 싶으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되실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낚을 수 있습니다.
할 수 없겠다 싶으면, 암묵적인 선을 지키고 말과 행동에 거리를 재면서 예의를 갖추면 됩니다.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 치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뒤로 물러나면 되고, 내 스스로가 잘 못해서 선을 넘었으면 사과를 하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소리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더욱 주목하시는 모습은 기도하고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우리의 뒷모습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뜻은 내 앞과 뒷모습을 다 알고 계시다는 체험적 고백입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신다면 아마도 그 사람과 친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사람을 낚아 하나님 나라에 함께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아내의 뒷모습, 아버지의 뒷모습, 내 자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지내십시오. 상사의 뒷모습, 후배희 뒷모습, 동기의 뒷모습을 보십시오. 위로와 긍휼의 기술자들이 되셔서 사람을 낚는 하나님의 손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이 녹록치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파란만장합니다. 한 숨쉴 날이 많고, 다 그만두고 싶은 시간들이 엄습하지만, 그 때마다 주시는 은혜를 따라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 많이 받아서 마음의 여백이 날마다 커가게 하시고, 선을 넘는 사람들, 마음을 치고 들어와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점점 친구가 되어가는 신앙의 실력이 자라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헌금기도
사람의 생사화복과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경찰선교회 성도님들과 찬양하며 예배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인생의 시간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흠향하여 주시고, 매일 예비하신 은혜를 날마다 받아 누리며 살아가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드려진 헌신과 예물이 생명이 살아나고 성장하는 곳에 쓰이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이 되기를 자처하는 축복받은 성도로 살아가도록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주님과 함께 평생을 지내기로 기대하고 소원하는 성도들 머리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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