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1 다움 청소년부 주일 설교
하나바이블_고린도전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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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제목 : 시기와 분쟁을 뛰어넘는 공동체
본문 : 고전 3:1-9
우리 지난 주까지는 로마서를 통해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지난 주는 로마서 12장을 통해 우리의 삶이 곧 영적 예배라는 사실에 대해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다시 회복하자는 도전을 여러분들에게 주었습니다. 어떤 도전이었죠? 네, 우리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 예배의 시간, 이 예배의 약속을 지켜보자!는 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 시간인 오전 11시의 시간을 지키자고, 더 나아가 5분 일찍 여기 예배의 자리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자고 도전했습니다ㅎㅎ (몇몇 친구들이 참여했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기도하기 위해 모인 모습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도전일 수 있지만, 우리 앞으로 함께 예배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가져봅시다. 일주일에 단 한 번 있는 이 귀중한 예배의 시간,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조금 일찍 모여 잠깐이라도 함께 기도할 때, 우리는 이 예배 시간을 충만한 성령의 임재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사님은 정말 그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심으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해와 달을 만드시고, 저 무한히 펼쳐진 우주의 별들을 지으시고, 가까이는 이 살랑이는 바람과, 모든 것을 품는 바다와, 우리가 살아 숨쉴 수 있는 공기까지도 만드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바로 우리들을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우주관이요, 저의 세계관입니다. 아니, 저라는 개인을 뛰어넘어, 기독교의 세계관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요,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요, 모든 것의 끝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정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직접 만드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의 인생과 환경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단지 우연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은혜의 사실에 감탄하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전도사님이 말한 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요, 우리의 신앙의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왜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지금 여러분들에게 설명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자 전부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즉 예배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참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하나님에 대해, 그 속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움교회’라는 이름의 예배 공동체로 매주 이 자리에 모입니다. 이 예배 공동체에 대하여, 오늘부터 약 3주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쓴 편지인 이 고린도전후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그 중 오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우리 다움교회, 이 사랑스러운 예배 공동체는 과연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 3장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기서는 고린도교회 안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린도란 어떤 도시였는가. 고린도라는 도시는 당시 바울이 살던 로마 시대에 존재했던, 경제적으로 아주 부강한 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지리적으로 굉장히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1세기 드넓은 로마 제국의 중심 부근에 있었기 때문에, 이 도시에는 많은 이주민들이 모여 들었고, 덕분에 무역과 거래와 상점들이 아주 잘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여러분, 대학생이 되면,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친구들이 자연스레 한곳으로 모이니까, 서로 생각하는 ‘도시’의 기준이 달라요. 왜냐면 전도사님처럼 인천이나, 혹은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특히, 서울엔 동네마다 있는 것이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끼리, 장난으로, ‘아, 이거 있으면 그 동네는 도시로 인정해주자!’하는 기준을 정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동네에 뭐가 있으면 도시일까요? 우리 동네에 뭐가 있으면 잘 사는 동네(도시)라고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정한 것은 딱 4가지였습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영화관(cgv, 메가박스), 맥도날드(or 버거킹), 스타벅스, 그리고 올리브영 있으면 그 동네는 잘 사는 동네다~ 하고 인정해줬습니다. 여러분들 동네는 어떤가요?ㅎㅎ
하여간 장난이고, 왜 이런 얘길 했나면, 고린도가 바로 그런 큰 도시라는 걸 말해주기 위해섭니다. 고린도는, 오늘 날로 따지면, cgv도 있고 매그도나르도도 있고 스벅도 있고 올영도 있는, 말하자면 인프라가 아주 잘 되어 있는 도시였단 거에요!
그런데, 그 고린도라는 도시는 아주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너무 다양한 이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가져온 온갖 이방 종교와 우상숭배로 가득한 도시, 혼란과 갈등이 넘치는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정말 큰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각자 믿는 신이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조차 진리가 아닌, 하고 많은 신들 중 하나의 이름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사람들은 자기가 섬기는 신들을 따라 살았습니다. 자기들이 만든 우상을 위해 살았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의 경제적 부강함은 곧 경제적 자신감이 되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음란을 자행하고, 불법을 저지를 뿐 아니라, 더럽고, 문란하고, 혼잡스럽고, 질척거리는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았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사실은요, 맨 처음, 고린도교회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믿음을 아주 잘 지켰습니다. 이렇게 유혹 많고 타락한 도시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큰 교회로 성장한 고린도교회였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의 서문에서, 그들을 칭찬하기까지 합니다.
“너희가 은혜의 충만함 안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갈망하고 있구나! 기다리고 있구나! 정말 장하다!”
그런데, 교회가 커지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문제는 바로 고린도교회 안에서 분쟁과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다음 말씀을 같이 읽어볼까요? 고린도전서 3장 1-3절입니다.
고린도전서 3:1–3 (NKRV)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여러분, 교회 안에 서로에 대한 시기와 분쟁이 있다는 말은, 곧 무엇이냐! 너희들이 지금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태까지 잘해왔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너희 안에 시기와 분쟁과 다툼이 있다면, 그것은 너희가 성령을 따르고 있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고린도교회의 이 상황이, 교회 내부적으로 너무너무 심각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혼탁하고 타락한 고린도 도시 한복판에서, 자신들의 개인적인 믿음을 지키기에도 벅찬 성도들이, 교회 외부에 만연한 죄악과 범죄와는 싸우지 않고, 교회 내부의 시기와 분쟁으로 인해, 공동체를 파괴하고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책망하며 무엇이라고 평가하는가.
“너희들은 어린 아이들이다.. 여전히 육신에 속한 자들이다.. 왜 그렇게 말씀을 듣고 주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유치한 것들 때문에 싸우는가!” 안타까워 하며, 크게 슬퍼하고 아파하며, 그들이 더 이상 싸우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사님이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2023년, 이 시대에, 특별히, 청소년인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학교 생활 중에, 과연 여러분들이 겪는 시기와 분쟁이 무엇일까. 어떤 다툼이 있을까.
물론 여전히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눈에 보이는 다툼이 벌어지고, 여전히 잘 나가는 친구들, 뭐 영향력이 있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친해져서 어떤 무리가 형성되겠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친한 것,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아니죠.
정말 큰 문제는 사실,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는 시기와 질투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진짜 잘 나가는? 요즘 애들끼리는 대놓고 싸우지도 않아요. 왜? 서로 싸우면 잃을게 많은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냥 겉으로 보면, 다들 그냥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요. 혹여 서로 사이가 안 좋아도, “예배 시간에 이런 말 써서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속된 말로 서로 띠꺼워도, 면전에다 대고 욕을 하거나 싸우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뒤에서 욕을 하죠! 소위 뒷담화를 까는거죠. 아니면, 차라리 아예 신경을 꺼버립니다. 그냥 서로 없는 사람 취급하고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즘 세대의 인간관계이며, 요즘 세대의 시기와 분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가닿으니, 정말 우리 공동체를 아프고 병들게 만드는 심각한 시기와 분쟁은, “뒤에서 안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구나. 그리고 무시와 무관심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유치한 문제이지요. 너무 유치하지만, 그 파급력은 정말 강한, 그런 문제라고 전도사님은 생각합니다.
오늘,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난 분쟁은 꽤나 적극적인 분쟁입니다. 파벌을 가르고, 얼굴을 붉히며 서로 싸우니까요. 그러나 우리 삶에서 자주 일어나지만, 너무 사소해서 그냥 지나쳐 버리거나,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 아주 심각한 시기와 분쟁은 바로 무시와 무관심이라는 소극적 분쟁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이게 왜 나쁜 것인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나쁜 것이란 말인가? 네, 이 소극적인 죄악이, 선한 일이라곤, 단 하나도 하지 않는 무관심이 나쁜 것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 무시와 무관심이, 결과적으로, 우리 예배 공동체가 성장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배려하고 서로 친근한 교제를 나누고 서로 사랑하는 모든 과정들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웃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과 내면화된 미움과 시기는, 성경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정말이지 끊임없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이미 자리잡아 버린 만연한 무관심과 무시가 판치는 세상, 냉랭함이 유행인 이 세상, 서로 말 거는 것이 두려운 이 세상에서 어떻게 뜨거운 사랑을 품고, 서로 동역하며 진정한 하나가 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본문 7절 말씀 같이 봅시다.
고린도전서 3:7 (NKRV)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마주한 관계의 문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기와 분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오늘 바울 선생님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드시고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과 관계에서 사랑의 물을 주고, 배려의 씨앗을 심을 때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하고, 내가 미워했던 사람, 나와 갈등이 있었던 사람,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아 무시했던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작은 친절을 베풀고, 작은 관심을 보일 때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여시는 분은, 결국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요, 곧바로 열매가 맺히거나, 곧바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을 베풀어도, 상대방에게 거절 당할 수 있어요.
그러나 당연한 것 아닐까요? 어떤 일이든지 단 한 번으로, 한 번의 요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거절 당할 것을 알고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먼저 주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 사랑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시기와 분쟁, 즉 무관심과 무시, 그리고 뒷담화라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유치한 죄악을 완전히 거부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우리와 다투었거나 잘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가, 그들을 온 힘 다해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들을 우리의 품에 끌어안아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십시오.
우리 주님은 매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항상 그분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몇 백번이고 몇 천번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부어지는 사랑을 배신했습니다. 여전히 세상 속에서 즐기는 모든 쾌락들이 더 좋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런 우리의 모습 보면, 하나님이 실망하실 법도 하신데,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시질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길 바라시며, 우리를 사랑으로 끝까지 추적하십니다. 그 사랑을 통해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길 간절히 갈망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주님의 이 무한한 짝사랑을 이 시간 받으십시오. 우리 주님은 항상 같은 곳에서, 여러분들을 끌어안을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받은 사랑을 가슴 깊이 품고,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사랑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너무나도 명확한 진리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