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하나님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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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views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울면서 기도했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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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서론
서론
예화 다락방 성서묵상집 장애인 수영코치
예화 다락방 성서묵상집 장애인 수영코치
다락방이라는 작은 성서묵상집이 있습니다. 2달에 한번씩 나오는 묵상집인데 2018년 11월과 12월 묵상 내용을 살펴보다가 감동이 되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장애인 올림픽 수영 코치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다양한 연령대의 장애인 수영선수들과 함께 일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십년 정도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의심의 여지없이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 수영 코치가 가르쳤던 선수들은 전국 대회, 국제 대회에 출전했고, 종종 우승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한 시각장애인 수영 선수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코치진이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코치가 수영장에 들어가 그녀보다 앞서 가면서 말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코치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방향으로 수영을 했고, 그렇게 배워서 결국 성공적으로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수영장 벽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시합 당시 벽 가까이에 다가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장대에 테니스공을 달아서 그녀의 머리가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했습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신앙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세밀하고 친절한 도우심이 있다면 비록 부족한 우리지만, 비록 연약한 우리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기적이라 할 만한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더 빨리 가며, 더 자신감도 생기고, 더 귀한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늘로부터 귀한 믿음, 귀한 소망, 귀한 사랑, 귀한 능력, 귀한 은혜를 충만하게 받을 줄 믿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느헤미야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을 해냈습니까?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해냄으로 그동안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았던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포로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자신의 안정과 안위를 위한 일 외에 그 어떤 일도 계획하거나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실로 엄청난 일을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도움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은혜를 입게 해주셨습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고국인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성벽을 재건하고 싶다고 했을 때, 포로인 느헤미야를 괘심하게 여기거나 나쁘게 보지 않고 오히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를 고국인 이스라엘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가 요청한 모든 것을 허락해주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이스라엘까지 무사통과할 수 있는 조서, 성전에 속한 문과 느헤미야가 들어갈 집을 위해 들보로 쓸 나무를 사용할 수 있는 조서와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느헤미야를 보호하게 하는 조서 이 모든 것을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맞습니까? 라고...
확실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맞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 2장 7~8절 말씀을 보면,
7절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절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하나님의 선한 손이 느헤미야를 도우셨음이 분명하고 명백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신앙적인 큰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있다면, 모든 것이 허락되어질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럼 이제 아주 중요한 물음을 던져 봅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이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본론
본론
첫째, 긍휼입니다.
첫째, 긍휼입니다.
어느날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온 그의 형제인 하나니와 동행자들에게 유다 사람들은 잘 있는지 그리고 예루살렘은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포로로 끌려오지 않고 유다 지방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많은 고생을 하고 있으며 멸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졌고 그 성문들은 불타 버렸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멸시를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들이 불타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히 슬퍼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이 저에게는 상당히 크게 와닿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느헤미야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유다 사람들의 고통과 성벽이 무너진 예루살렘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잊혀졌을 겁니다.
그럼 느헤미야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애국심? 민족애? 물론 있었겠지요.
그런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긍휼의 마음이 아닐까 라고 깨달아졌습니다.
느헤미야 자신의 일이나 가족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민족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로 수일동안 울었고 슬퍼했습니다.
긍휼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 느헤미야의 사명의 눈을 뜨게 해준 것입니다.
긍휼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 느헤미야의 사명의 눈을 뜨게 해준 것입니다.
긍휼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긍휼과 사랑의 마음은 예수님도 아주 중요하게 강조한 성품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모두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정말 누군가를 위하고 싶거나, 가정을 위하고 싶고, 교회를 위하고 싶다면..
먼저 긍휼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가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사명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또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돕는 줄 믿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었는가?
둘째, 믿음과 기도입니다.
둘째, 믿음과 기도입니다.
느헤미야는 슬픔에만 빠져 있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슬픔과 눈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나 큰 슬픔을 느끼게 되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무 슬퍼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큰 슬픔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다른 곳으로 눈 돌리지 않고 곧장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큰 슬픔을 만났을 때, 그 슬픔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이 아닐까요?
이 대목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느헤미야 1:4 절 말씀을 보면,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는 포로의 신분으로 페르시아에 있었습니다.
수산 궁에서 아닥사스다 왕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에게는 ‘하나님 앞’이라고 할 만한 장소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 ‘하나님 앞’이라고 할 만한 곳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 앞’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해놓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하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말에는 정말 중요한 신앙적인 의미를 담겨져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말에는 정말 중요한 신앙적인 의미를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하늘의 하나님이라 함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첫째, 하늘의 하나님이라 함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에 있든, 페르시아에 있든, 혹 땅 끝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늘의 하나님이라 함은 하나님은 모든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굽어살펴보시고 다스리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둘째, 하늘의 하나님이라 함은 하나님은 모든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굽어살펴보시고 다스리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슬픔이라도 무슨 문제라도 하늘의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 믿음으로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을 때 큰 고통과 슬픔을 만났을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문제 속에서도 곧장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과연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었을까요?
혹시 믿음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요?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고, 모든 것을 굽어살펴 보시며 다스리시는 하늘의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 있다면, 슬픔과 고통의 늪에 계속 빠져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나님이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일을 굽어 살펴보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가지고 아무리 슬픔이 크더라도, 아무리 고통이 크더라도 하늘의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에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에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눈물과 금식의 기도
눈물과 금식의 기도
느헤미야의 기도에는 눈물이 있었고, 금식이 있었고, 하나님의 언약이 있었습니다.
눈물과 금식의 기도라는 것은 이미 4절에서 보았고, 언약의 기도는 5절에 나옵니다.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더 강력한 기도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언약을 붙든 기도
언약을 붙든 기도
하나님의 언약, 약속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셔야만 하는 이유와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에는 아주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주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언약을 지켜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이외에도 느헤미야의 기도에는 중요한 내용들이 더 있습니다.
주야로 드리는 기도
주야로 드리는 기도
느 1:6- 7 절 말씀입니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했습니다.
밤과 낮으로 기도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느헤미야가 포로였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가 이방 종교를 가지고 있는 페르시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마음껏 기도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가진다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밤낮으로 기도한다고 말했을까요?
물론 어느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어느 정도는 기도하는 처소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주야로 기도한다는 말에서 우리는 느헤미야의 마음의 중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도하는 시간 외에 항상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을 온 종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할 때나 쉴 때나 궁에 있을 때나 집에 있을 때나...
그만큼 느헤미야가 주야로 드리는 기도는 환경을 초월한 너무나 간절한 기도였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기도는 환경을 초월하여 주야로 기도드리는 그런 간절한 기도인지 솔직하고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회개의 기도
회개의 기도
그리고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자복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수많은 고통과 슬픔의 배경에는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당사자들이 못한다면 그들을 대신해서라도 용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그렇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복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고 눈을 여셔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원하는 것 그것만 딱 얻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의 목적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순간 순간 기도
순간 순간 기도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왕 앞에 나아가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충분히 기도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느헤미야는 끝까지 기도를 놓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뢰기 바로 직전에도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 2:4 말씀입니다.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이렇게까지 기도하니,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니
하나님이 어찌 도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결론
결론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느헤미야처럼 기도해보십시오.
느헤미야처럼 울면서 슬퍼하면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느헤미야처럼 금식하면서 간절하게,
느헤미야처럼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신 하늘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느헤미야처럼 주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느헤미야처럼 환경을 초월해서 밤이나 낮이나,
느헤미야처럼 다른 사람의 죄라고 할지라도 자복하고 회개하며,
느헤미야처럼 응답이 나타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기도해보십시오.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한 손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