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하나님의 생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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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생각 예레미야 29장 11~14절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인생에는 세 가지 싸움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악의 세력과의 싸움이고, 두 번째는 자연과의 싸움이고, 세 번째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쉬운 싸움은 없다. 악의 세력과 싸우는 것도 그렇고, 자연과의 싸움도 그렇고, 자신과의 싸움도 그렇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자신과의 어떤 싸움에서 이겨야 하느냐 하면, 자신과의 신앙적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자신 안에는 신앙적으로 살고자 하는 요소와 비신앙적으로 살고자 하는 요소가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기고 신앙적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복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보면,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이 세 번에 걸쳐 유다를 침공해서 유다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첫 번째 침공은 BC 605년, 유다의 여화야김왕 때 침공해서 성전의 기물들을 빼앗고, 젊은 인재들을 포로로 잡아 갔다.
두 번째 침공은 BC 597년, 유다의 여호야김왕 때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하자 유다를 침공해서 왕과 왕족, 귀족, 권력자 등 1만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세 번째 침공은 BC 587년, 유다를 침공해서 성전과 성과 가옥을 불태우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세 번째 침공으로 유다는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70년 동안의 긴 포로 생활에 들어갔다.
우리나라가 명나라나 청나라의 침략을 받아서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역사가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을 받아서 36년 동안 식민지 생활을 하고 강제 징용당하고, 위안부로 끌려가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북한에게 침략을 받아서 200만 명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 백성들은 멸시와 천대와 살해 위협과 노동력 착취로 질병과 고난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 백성들은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미래의 희망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생각을 전달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유대 백성들이 신앙적인 싸움에서 실패하여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고 계신다는 하나님의 본심을 전달하고 계신다.
그래서 본문 11절 상반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그랬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을 하나님 자신이 아신다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자신도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아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생각”이란, ‘의향, 계획’을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의향,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서,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를 시켜야 한다.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내 생각대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서,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시키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높아서 하나님의 생각대로 이루어질 때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이 된다.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다. 본문 11절 말씀에 보면, “재앙이 아니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부모가 잘못한 자녀에게 회초리를 댔다면,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나를 아프게 하는구나”, “부모님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시는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가 바르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슴이 아프면서도 회초리를 대는 것이다.
징계가 목적이 아니라, 자녀가 바르게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목적이다.
본문 말씀에서 유대 백성들이 큰 재앙을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르게 잘 되기를 바라는 목적인 것이다.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면 3단계로 반응한다고 한다.
첫 단계는, “충격반응단계”이다. 정신이 나간 채 멍해진 상태를 말한다.
두번째 단계는, “반동반응단계”이다. 일단 위험에서 벗어나고, 흐느껴 울기도 하고, 신경질을 부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헛웃음을 치기도 하는 상태를 말한다.
세 번째 단계는, “회상반응단계”이다.
그 때 일을 자꾸 떠올리면서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는 상태를 말한다.
또한, 신앙생활하던 사람이 재난을 당하면,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첫째는,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두 번째는,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합니까? 세 번째는 내게 재난이 임할 때 하나님은 어디계셨습니까? 하고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보면, 재난을 당할 수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난이 아니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설령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난이라도 그 재난을 통해서 더 유익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재난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전달 받아서, 믿음으로 승리하여 더 유익하게 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다. 본문 11절 말씀에 보면, “평안이요” 그랬다.
여기서 “평안”은 ‘평화, 안전, 번영’을 말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화를 누리고, 안전하게 살며, 번영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각대로 평화와, 안전과, 번영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중세 시대에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하고 있을 때,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흑사병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각 성마다 외부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느 날, 한 농부가 들에 나가서 일을 마치고 성으로 돌아가고 있는 데, 검은 옷을 입은 노파가 길가에 서 있었다.
보기만 해고 끔찍한 흑사병환자였다. 흑사병을 퍼트리는 요괴였던 것이다.
노파가 농부를 불렀다. 그리고 성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농부는 절대 안 된다고 거절을 했다.
그러자 흑사병 노파가, “만일 나를 순순히 성 안까지 태워다 주면 성안에 있는 사람 5명만 해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를 죽이겠다”고 말했다.
농부는 어쩔 수없이, “5명이상 해치면 안 된다”는 약속을 단단히 받고 흑사병 노파를 성 안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성 안에 있는 사람들 절반이 죽어버렸다. 화가 난 농부는 흑사병 노파를 찾아가서 “왜 5명만 해치기로 약속해 놓고 성 안에 있는 사람을 절반이나 죽였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흑사병 노파가 하는 말이, “나는 5명밖에 죽이지 않았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미리 겁먹고 두려워하다가 스스로 죽은 것이다.”하고 말했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을 살펴봤더니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은 5명밖에 없고, 나머지 사람들은 흑사병이 발생하니까 미리 겁먹고 두려워하다가 스스로 죽었더라는 것이다.
유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면서 얼마나 두려워했습니까?
포로 생활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포로 생활하면서 미래에 대한 절망감도 컸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지금 두렵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어도 “평안”을 얻고, “평안”을 누리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평안”은 평안한 환경 속에서 누리는 “평안”이 있고, 환난 속에서 누리는 “평안”이 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의 진정한 평안은, 평안한 환경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고, 환난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요한복은 14절 27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평안을 주시는 분이신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환경을 초월해서 누리는 평안이다.
(찬양)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 세상이 줄 수 없는 /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 평안 / 평안 / 평안을 네게 주노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평안을 얻고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시는 평안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또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미래에 희망을 주는 것이다.
본문 11절 말씀에 보면,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했다.
여기서 “미래와 희망을 준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준다’라는 말씀이다.
공동번역에 보면, 본문 11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 주지 않고 잘 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번역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 하여 주려고 뜻을 세우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밝은 앞날을 예비해 놓으셨다.
따라서 미래에 희망이 있는 사람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희망이 있는 사람은 속에서 삶의 에너지가 솟아난다.
예수님 믿는 사람의 미래희망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금생에서 백배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밝은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부인이 도둑이 자기 집에 들어올까 봐서 항상 걱정하고 무서워했다.
20년 동안 도둑이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항상 도둑이 들어올까봐서 걱정하고 무서워하다가 “신경쇠약”에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20년 만에 그 집에 진짜 도둑이 들어왔다.
그러자 남편은 도둑이 달라는 대로 다 주었다. 그리고 도둑에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당신을 20년 동안 기다린 사람이 있으니까 잠깐만 만나고 가시오”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안방에 들어가서 아내를 데리고 나왔다.
20년 동안이나 도둑이 무서워서 신경쇠약에 걸렸던 아내가, 도둑을 보더니 도둑이 자기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인 것을 알고 그 후부터는 “신경쇠약”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람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부딪쳐보면 능히 감당해 낼 수 있는데도 미리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유대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면서 미래에 대한 절망감에 사로 잡혔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포기의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고 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밝은 미래를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그렇다. 여러분의 지금 현실이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지금 현실이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은 여러분의 미래를 밝게 예비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밝은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를,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평안과 미래에 희망을 주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본문 12절 말씀에 보면,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그랬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왜 꼭 기도해야 이루어주시는가?” “하나님이 알아서 이루어 주시면 되지 않는가?”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하지 않았는데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은혜로 알지 않고 자신이 잘 해서 이루어진 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도해서 이루어지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게 된다.
이것이 기도하게 하시고,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이 이루어지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한다.
또한 본문 13절 말씀에 보면,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만나주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만나 사람이 더 잘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크고 놀랍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고 찾아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으로 인해서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마지막으로 본문 14절 말씀에 보면,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를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다.
이 말씀을 보면, “다시 돌아오게 하리라”, “돌아오게 하리라”고 했다.
“회복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회복시켜 주셨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다시 국토와 국권을 가지고 살게 하셨다.
다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게 하셨다.
다시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제사드리며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게 하셨다.
여러분!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까? 손실을 본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회복의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축원한다.
이란의 테헤란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궐이 있는 데, 벽과 기둥이 수정으로 수를 놓은 것처럼 번쩍거리고, 무지개가 아롱거리는 것처럼 휘황찬란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본래 이 궁전은 거대한 통유리를 사용해서 짓기로 했는데, 통유리를 수송하던 차가 실수를 해서 통유리가 깨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실망을 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회의를 하다가 깨진 유리조각을 이용해서 모자이크를 하기도 결정을 했다.
그래서 통유리를 완전히 부수어가지고 조각조각 붙였더니 휘황찬란한 오색을 발하는 더 아름다운 궁궐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깨질 수도 있다. 실패할 수도 있다. 역경이 닥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 더 좋은 것,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창조해 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생각대로 평안과 미래에 희망이 있는 아름다운 삶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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