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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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 진동수와 공명(共鳴)
모든 물체는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물체에 충격을 주면 그 물체는 자신만의 진동수대로 진동합니다. 이것을 고유 진동수라고 하는데, 그 고유 진동수와 똑같은 진동수를 가진 소리나 외부의 힘을 물체에 가해 주면 이 두 진동이 합쳐져서 더 크게 진동합니다. 이것을 '공명(共鳴)'이라고 불러요. 이 '공명(共鳴)현상'으로 유리 잔이 깨질 수도 있고, 다리가 붕괴 될 수도 있는 큰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원리는 우리 삶의 원리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재물, 건강, 일신상의 즐거움..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나를 요동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면 그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진동수와 같기 때문에 거기에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진동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면 공명(共鳴)을 일으킵니다. 운동을 좋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서로 가지고 있는 같은 에너지가 모여서 극대화 되는 것이죠. 여러가지 취미, 또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진동으로 더 큰 에너지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복음의 울림이 우리를 반응하게 만드는 유일한 울림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의 울림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성도라도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자연을 통해서도, 일상 속에서도, 우리 영혼이 진리를 깨닫고, 묵상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등산을 가서도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찬양하게 되고, 땀 흘려 일하는 일상에서도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 삶 속에 놀라운 울림을 일으켜 내십니다.
하지만 우리 영혼을 변화시키는 울림,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없습니다. 바울에게 전해진 복음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의 삶을 요동치게 만들었고, 그 깊고, 고결한 복음의 울림이 바울을 사명자로 빚어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보면 바울의 결의에 찬 고백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로라"
바울이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위대한 순종을 이뤘던 것이 아니예요. 사도바울의 이 고백은 복음 안에서 일어난 공명(共鳴)으로 할 수 있었던 고백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 속에 나타난 /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 / 성도와 교회가 빚어내야 할 <복음의 공명>은 어떤 것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울림이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된 영혼의 울림이 되어 새로운 떨림과 울림으로 서로를 향해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 복음의 공명(共鳴)
우리나라 제3대 체육부장관을 지내신 이영호 박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암에 걸렸다가 회복되셨는데, 또 다시 대장암에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낫겠지' 하는 생각을 가졌다가 점점 암 덩이가 심장으로, 간과 폐로.. 전이 되면서 살 소망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이제 남은 삶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어서 몇가지 결심을 했는데요. 그 중 한 가지가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누린 특별한 경험들과 깨달음을 어린 자녀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서 인생의 조언이 담긴 편지를 썼습니다. 그 내용 엮어서 만들어진 책이「인생은 예행연습 없는 마라톤이야」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암 투병 중에 예수님을 믿게 됐어요. 그래서 한 가지 새로운 결심이 생겼는데 바로 성경을 읽는 것이었고, 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쓴 신앙서적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고, 신앙도서를 읽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서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1년이 내가 살아온 60년 가운데 가장 값진 한 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평생 얻은 것 중에 가장 귀한 것믿음이라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장관까지 지내셨으니까요. 그런데 그가 자기 삶의 끝자락에서 "자기가 살면서 얻은 가장 귀한 것이 예수를 믿은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인생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진리에 대해서, 이영호 박사는 죽기 전까지 초청받아 가는 강연장 마다 자신이 깨달은 이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가요? 복음에는 고유한 울림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길고, 짧음과 상관없이 그 복음의 울림이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 내재된 영혼의 울림과 합쳐지면서 삶을 변화시키는 '공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사람이 복음을 알게 되면서 그 울림에 못이겨 요동치게 만듭니다. 이영호 박사님이 경험했던 것도 이것입니다. 그건 분명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복음을 통한 공명(共鳴)입니다.
# 사도 바울이 만난 복음
바울은 그저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것 뿐이었어요. 이미 앞서 가신 예수님께서 친히 길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바울은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 것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인사를 하면서 "이제 자신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해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어느 도시를 가든지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성령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그 성령님께서 다시 한 번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건 그곳에 어쩌면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방패삼아서 그 부르심을 외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루살렘을 향하겠다는 결의에 찬 고백을 합니다. 왜 일까요?
# 복음을 만나기 전 바울
바울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잘 아는 바울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잖아요. 당시 유력한 선생이었던 가말리엘에게서 배웠습니다. 가문도 좋고, 학벌도 좋았습니다. 유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그는 안간힘을 다해 예수쟁이들일 잡아 죽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을 바울은 경멸했습니다. 바울을 움직이는 동력, 그를 더 불타오르게 하는 공명(共鳴)의 에너지는 분명히 율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것이 목표였고, 유일한 관심사였어요.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 속에서 울려퍼지는 복음의 고유한 진동, 그 울림을 경험하자 바울의 영혼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던 울림과 합쳐져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요동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 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전에 율법이 차지하고 있던 사명의 자리를 이제 복음의 사명으로 물들여버린 것입니다.
# 삶에 대한 새로운 직관
이렇게 복음반응할 때 우리는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의 눈을 밝혀 줍니다. 전에는 몰랐던 삶에 대한 전혀 새로운 직관을 제공해 줍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새롭게 된 사람은 이전에 좋아 보였던 것이 더 이상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해도 그 성공이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면 내게 아무 소용이 없고, 반대로 세상에서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이야 말로 가장 값지고, 존귀한 인생이라는 걸 보게 되는 것이죠.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도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았던 복음의 삶이란! 희생과 포기를 감내한 것이었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어디로 가는지 조차 알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게다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을 받을 때도 아무 질문 없이 기꺼이 하나님께 바치려고 했었습니다.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 이집트의 왕자의 자리를 거절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구약의 모든 사사들이 그랬고, 선지자들이 그랬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신약교회의 이름 없는 성도들이 당한 고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말해줍니다.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을 향해 덤벼들어 때리고,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위기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았습니까? 복음에 눈뜨게 된 순간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삶, 본질적인 삶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모습 너머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복음의 공명이 빚어낸 용기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울의 삶을 흔들어 놓자,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는 폭발적인 힘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렇게 사신 것처럼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며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잃은 자는 얻을 것임"을 그도 믿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게 바울이 복음에 담긴 고유한 울림에 반응하면서 일어난 것입니다.
아직 끝난 것도 아니고, 다 이룬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복음의 울림과 조우하면서 바울의 마음 속에 열정과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 남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오히려 자신의 갈 길을 끝까지 걸어가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가 됐습니다.
# 알지 못하지만 가야만 하는 길
그럼에도 우리 앞에 놓인 환난은 언제, 어떤 식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을지 모릅니다. 알지 못하지만 가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사도 바울의 길이 그랬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라도 다를까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노동자가 하루 안 먹는 한이 있어도 갈급한 심정으로 예배의 자리를 찾아 나아오는 길, 내 인생의 성공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걸 믿고, 세상의 조롱과 비웃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의 길, 세상의 삐뚤어진 가치관과 윤리관에 저항하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지키며 살기 위해 세상이라는 바위를 향해 기꺼이 달려가는 길.
복음반응해서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알지 못하지만 그 길이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길이라면 기꺼이 걸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 무능력을 능력으로 삼아라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자신의 힘을 다 빼고, '내 무능력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의 길'이 된다는 걸 믿는다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답으로 알고 살아갈 때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설치는 사람은 절대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자질이 아니라 자세를 보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잘 아는 바울. 그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잖아요. 당시 유력한 선생이었던 가말리엘에게서 배웠습니다. 가문도 좋고, 학벌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쓰신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자질이 아니라 자세였습니다.
사도바울의 서신 곳곳에 묻어 있는 그의 고백은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 였어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족하나마 끝까지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복음이 전해 주는 고유한 울림에 우리가 반응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어긋한 욕망과, 잘못 설정된 울림을 교정해 주십니다.
이걸 통해서 내가 품고 있는 마음과 생각이 무엇이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복음으로 공명하는 교회가 되고, 복음에 담긴 고유한 울림에 반응하여 복음의 공진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복음의 울림에 다시금 반응하여,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된 영혼의 울림과 합쳐지는 공명을 빚어내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그 복음의 폭발적인 힘으로 위축된 성도의 삶이 다시 새롭게 불타 오르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교회는 복음으로 공명(共鳴)는 교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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