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편집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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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요나단과 헤어진 후 다윗은 놉으로 간다. 놉으로 간 이유는 확실치 않다. 블레셋으로 망명할 계획(10절 참조)을 품었다면 굳이 놉에 들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기브아를 중심으로 놉은 블레셋 영토에서 멀어지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놉으로 간 것은 그곳에 안치된 골리앗의 칼을 가져오기 위함이다. 다윗이 사울로부터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블레셋으로 망명하는 것이었다면, 골리앗의 칼을 가져가는 것이 정치적 가치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블레셋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수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들고 망명했다는 소식은 블레셋의 사기를 높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성소를 감독하는 아히멜렉은 다윗이 갑자기 혼자 도착했을 때 “떨었다.” 아마 아히멜렉은 최근에 나욧에서 일어난 사건(참조, 19:19~24)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건에서 야훼파 선지자들의 생명이 다윗의 임재로 인해 위험에 처했고 그는 놉에서 이러한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다윗이 왕의 경호대장임을 알았기 때문에(22:14) 다윗이 왕 없이 "홀로"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는 다윗에게 자신의 방문 상황을 조사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윗의 대답은 이기적인 속임수나 영리하지만 정직한 언어 사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다윗은 먼저 “왕이 내게 일을 명하여”(2절; Hb. 3절)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히멜렉에게 처음으로 말하면서 명확히 밝히지 못한 것은 그가 언급하고 있는 왕의 이름이었습니다. 그것이 야훼 왕이라면(참조, 8:7; 12:12), 다윗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언급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참조, 시 5:2; 20:9; 24:7) –10; 29:10; 68:24; 145:1) 다윗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높은 수준의 고려 사항, 특히 생명의 보존이 보장되는 경우 특정 토라 법은 무시될 수 있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아론계 제사장으로서 아히멜렉은 특정한 경우에 토라 지침을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어느 정도 자유도를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음식은 삶에 필요했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음식이 없었기 때문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토라 원칙과 일치했습니다.
아히멜렉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레위인과 같은 방식으로, 즉 정결 의식에 관한 법을 합당하게 고려한다면 레위인을 위해 남겨진 빵을 먹을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성소에서만 진설병을 먹을 수 있었으므로 의식적으로 정결해야 했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군사 임무를 수행 중이었기 때문에 모든 의식적 정결법, 특히 시체 접촉에 관한 법을 지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민 19:14-16). 그러나 군사 임무를 수행하는 남자들에게 성적 접촉과 관련된 의식적 정결법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것은 합당했습니다(레 15:18). 이에 동의한 다윗은 봉헌된 빵을 받았습니다.
David는 속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 저자는 속이는 것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다윗 자신은 그것 때문에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였습니다(22:22). 그러나 필자는 그것에 대해 다윗을 책망하지 않는다. 그는 다윗의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나중에 다윗의 적들은 이 장에 기록된 두 가지 사건에 대해 그를 비난했습니다. 다윗의 놉 방문은 많은 경건한 사람들의 죽음을 초래했으며(22:18), 그의 가드 방문(10-15)은 아기스가 블레셋 왕이었기 때문에 반역자의 행위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먼저 다윗이 실제로 제사장 아히멜렉을 속였어도 그 후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그곳에 온 사울의 신하 도엑(7) 때문이었다.
둘째로, 저자는 다윗이 국경을 넘어 가드로 갔을 때 자신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고 설명합니다. 그가 인정을 받았을 때 그는 블레셋 왕을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사울에게 반역한 유능한 군인을 환영했을 블레셋 사람들은 확실히 그를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그들은 그가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을 것입니다.
1 Samuel 21:3 NKRV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 사무엘상 비밀 작전 중이라고 거짓말을 함 21:2–3

먹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윗은 비밀 작전을 수행 중인 부하들과 함께 먹을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 구하는 것은 여행 식량이지만. 특히 “당신[아히멜렉]의 수중에 있는” 것을 구하는 것으로 보아 오래 머무를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왜 떡 “다섯” 덩이를 요구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지만(왜 다윗이 매끄러운 돌 “다섯”을 취했는지와 아울러) 다섯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종종 히브리어에서 숫자 다섯은 ‘약간, 조금’의 의미로 사용된다

1 Samuel 21:4–6 NKRV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본래 “거룩한 떡”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지만 아히멜렉은 율법 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하여 다윗의 부하들이 여자와 동침하지 않았다면 거룩한 빵을 허락하겠다고 제안한다.

율법에 집착하는 쪽이 사울이고 그렇지 않은 쪽이 다윗임에도 하나님이 후자의 행보를 인정하신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아히멜렉은 다윗에 대하여 율법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일까?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이라서? 다윗에 대한 소문은 이미 이스라엘 전역에 퍼졌을 것이다.)

아히멜렉이 거룩한 떡이라고 말한 것은 진설병이다. 진설병은 성소 안, ‘여호와 앞’에 즉 지성소 휘장 앞의 상 위에 전시된 열두 개의 빵을 지칭한다. 이 빵은 하나님과 열두 지파가 맺은 언약을 상징한다. 안식일마다 새롭게 만든 빵이 상에 오른다. 상에서 내려온 빵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다.

본론

<예수님과 안식일>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과 안식일】 마태복음 12장 1–8절은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벌어진 안식일 논쟁이다. 사건의 발단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이다. 이것을 본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의 비노동 규정을 어겼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이 놉 ‘성전’에 들러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식량으로 취한 사실을 인용하신다. 문제는 제자들이 안식일의 비노동 규정을 어긴 것과 다윗이 제사장만이 취할 수 있는 진설병을 취한 것 사이에 논리적인 연관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이 죄로 지적한 것은 제자들이 이삭을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안식일에 밀을 자른 행위이다. 왜냐하면 비노동 규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이 놉 성소에서 진설병을 취하여 성결 규정을 어긴 것은 안식일 논쟁과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다윗의 예를 인용한 것은 그 이야기의 소재가 ‘성전’과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전’과 ‘제사장’은 안식일 비노동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전보다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6)”라고 말씀하신 의도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보다 크다고 주장하신다. 즉 예수님은 참 성전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사장이다. 제사장들이 참 성전에서 혹은 참 성전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안식일 규정에 구애받지 않는다. 제사장들은 안식일에도 일할 수 있고, 일해야 한다. 따라서 제자들은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

다윗의 대답에 만족한 제사장은 그에게 “거룩한 떡”을 내어 준다. 그리고 사무엘서 저자는 거룩한 떡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아히멜렉이 거룩한 떡이라고 말한 것은 진설병이다. 진설병은 성소 안, ‘여호와 앞’에 즉 지성소 휘장 앞의 상 위에 전시된 열두 개의 빵을 지칭한다. 이 빵은 하나님과 열두 지파가 맺은 언약을 상징한다. 안식일마다 새롭게 만든 빵이 상에 오른다. 상에서 내려온 빵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다.

목자장 도엑 21:7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사무엘서 저자는 놉 성소에 있던 한 사람을 소개한다. 성소에 도엑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에야 나오지만 아히멜렉과 다윗은 이미 도엑을 염두에 둔 대화를 하고 있다.

도엑이 다윗과 아히멜렉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는 가정하에 1–6절을 읽으면 새로운 느낌과 의미들을 발견할 것이다.

도엑은 사울을 위해 놉의 제사장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사장의 반역 행위를 고발하는 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아히멜렉과 다윗은 도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도엑은 사울이 다윗과 요나단과의 관계에 대해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고 측근들을 꾸중하자 놉 제사장 이히멜렉과 다윗 사이에 있었던 모든 것을 자원하여 보고한다.

(진설병을 다윗에게 주어 먹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 사랑이다. 자비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제자들로 하여금 이삭을 먹게 한 것도 먹여 생명을 살리는 일. 사랑이시다.
율법보다 사랑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을 지키겠다며 강도 만나 죽어가는 자를 지나쳤지만, 사마리아인은 생명을 살렸다. 사랑이다.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일이 먼저 잘되기 이전에 사랑이 이루어져야 한다. )
위의 괄호 안에 있는 문장들이 올바른 해석인지는 점검이 필요하다.
다윗은 놉의 제사장들이 학살될 줄은 몰랐지만, 도엑이 사울에게 다윗과 아히멜렉이 만났다는 것을 말할 줄은 알고 있었다. 그걸 염두에 두고 다윗이 아히멜렉과 연기를 한 것이었는데, 학살로 이어지고 말았다.

결론

골리앗의 검.
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 사무엘상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취함 21:8–9

다윗은 놉 성소에 골리앗의 칼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사무엘상 17장 54절에 따르면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처음에는 자기 장막에 보관했다가 나중에 놉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윗이 놉에 들른 목적 중의 하나가 골리앗의 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블레셋 땅으로의 망명을 원했다면 골리앗의 칼을 들고 가는 것보다 더 큰 ‘회심’의 상징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 사무엘상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취함 21:8–9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라는 다윗의 말(9절)은 마치 골리앗의 칼을 기다렸다는 인상마저 준다.

사실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했다(삼상 18:29). 그래서 다윗을 죽이겠다며 공공연하게 떠들었던 것이다((큰소리만 뻥뻥 친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윗을 향한 자신의 두려움을 숨기고 싶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의 그 속임수에 속고 말았다. 그는 골리앗도 쓰러뜨렸으며 블레셋 군대가 자신을 에워싸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블레셋 군사 200명도 거뜬히 처치하던 그였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울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쫓기게 되었다.
다윗은 왜 사울을 두려워했을까? 다윗은 권위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기름 부으셨기 때문에 사울의 권위는 곧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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