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름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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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1–10 (NKRV)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도입>
<지난 주>
지난 주 성령강림주일,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도 오셔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영, 성령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의 충만함, 컵에 물이 가득 차서 넘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성령으로 가득차게 되면
우리 마음에 있는 우리 영혼에 있는 다른 것들은 떠나가게 되어 있어요.
죄된 생각, 더러운 마음,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악한 행동 대신에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향한 생각으로 가득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말 한마디라도 더 걸어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친구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성령충만도 이와 같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무엇을 하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만 하루종일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성령충만하면,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
예수님의 일들을 나도 같이 하게 되는 것.
-
오늘 성경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이제 예수님이 행하셨던 기적을 행하게 되는 이야기.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와, 요한.
늘 예수님 곁에 있던 이 두 제자가 기도 시간이 되어 성전으로 올라갔다.
1절과 2절 말씀 볼까요.
Acts 3:1 NKRV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여기서 제 구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세시.
Acts 3:2 NKRV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구체적인 사유는 나오지 않지만
나면서 못 걷게 된 이, 이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어떤 불의의 사고
혹은 유전적인 문제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평생 걸어본 적 없는 사람.
<앉은뱅이 이미지.>
이 ‘미문'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문'이라는 뜻인데,
이 미문 앞에 사람들이 매일 이 사람을 데려다 놓는 것.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줄긴 했는데,
요즘도 이런 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데려다가 구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3절과 4절 말씀 볼까요.
Acts 3:3 NKRV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Acts 3:4 NKRV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1
성전에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이 앉은뱅이를 보게 됩니다.
오늘 성령충만한 두 제자를 보라
평소 같았으면 어땠을까
“어 장애인이네, 불쌍해서 어째..” 하면서 지나갔을텐데
오늘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다
예수님의 영으로 충만하기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눈으로
그 영혼을 주목하여 바라보게된다
그 베드로, 늘 예수님 옆에서 사고치던 베드로였는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성령으로 충만하니까 우리 베드로가 달라졌어요.”
예수님의 마음으로 한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눈, 안목이 생기게 된 것.
5절 말씀 볼까요.
Acts 3:5 NKRV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던져주시는 한 가지 질문이 있다.
1. 우리가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나면서부터 아무런 소망도, 희망도 없던 앉은뱅이는 날마다 구걸하기 위하여 성전 미문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 구걸하던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면서도 여전 히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당장 내 눈 앞에 놓인 현실에 급급한 채로 살아가게 됩니다.
기도제목을 물으면,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성적 잘 나오게 해주세요. 좋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또 여자친구 생기게 해주세요. 키크고 잘생긴 남친 생기게 해주세요.
뭐 다 비슷비슷하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고 있는가?
무엇을 얻을까 하여 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왔는가?
물론 이런 기도들이 나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단순히 이 땅의 것 뿐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앉은뱅이와 같은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예화>
1800년대 영국의 조지 뮬러 목사님.
조지 뮬러의 기도.
그는 5만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한다.
300명의 아이들이 있던 고아원을 운영하던 목사님이셨는데,
사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매일 양육하고 먹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GOS.
어느날 고아원에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식당 안에 빈접시를 앞에 두고 앉아있는 300명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지 뮬러는 식사기도를 했다.
“하나님! 곧 먹을 것을 보내 주실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아멘!”
그런데 잠시 후에 누가 고아원 문을 두드렸다.
동네 빵집 주인이 빵을 한가득 안고 서 있었다는 것.
아이들에게 빵을 구워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새벽부터 빵을 구웠다는 것.
또 잠시 후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는데, 동네 우유 가게 주인이 커다란 우유통 10개를 싣고 고아원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하필 그 앞에서 수레바퀴가 고장나버린 것. 바퀴를 고치려면 우유를 처분해야 했는데, 마침 그 고아원에 우유를 나누어주었다.
이 앉은뱅이가 바라던 것, 그리고 조지 뮬러 목사님이 구하던 것.
똑같이 먹을 양식을 구했지만 뭔가 다르지 않나요?
우리의 기도.
내 정욕을 위한 기도, 내 욕심을 위한 기도, 내 자아실현을 위한 그런 기도는 낮은 수준의 기도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기도, 영혼을 일으키는 기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기도, 이것이 우리가 구해야 할 기도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이다.
#2
오늘 육적인 것, 당장 내게 급급한 것을 구하던 이 앉은뱅이에게,
예수님은 무엇으로 채워주고 싶어하셨을까?
베드로는 그 예수님의 마음으로 어떤 것을 주었을까?
6절 말씀 읽겠습니다.
Acts 3:6 NKRV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그러나 ‘돈이나 먹을 것’을 얻을까 하던 앉은뱅이의 기대와 달리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마10:9-10) 전대에 금이나 은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실제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리 스도인 된 우리가 세상과는 다르게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당장 내 배고픔, 내 허기짐을 해결하고자,
동전 하나 얻을까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던 이 앉은뱅이의 근본적인 문제는
“걷지 못하던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질병과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했던 것.
걸을 수 없었기에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고,
내 삶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지 못했던 자였다.
이 앉은뱅이에게 오늘 베드로가 외친다.
“네가 구하는 은과 금, 물질적인 필요, 내가 채워줄 수는 없지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 그것 너에게 줄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야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여러가지 어려움과 막막함.
당장에 내 성적, 내게 찾아온 관계의 문제, 혹은 삶의 여러가지 답답함.
그러나 우리는 이것들을 해결하기에 급급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근원의 문제. 내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나요?
그 이름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고 있나요?
내게 찾아온 문제, 어려움, 시련.
그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오늘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의 문제에 관하여서는
내 힘으로 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마냥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의 영혼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이름 앞에 기도하면.
그분이 우리를 건져주시고 구원의 손 내밀어 끄집어내 주시는 것이다.
#3
그렇다면 그 이름의 능력을 경험한 인생은 어떻게 되는가?
7절, 8절입니다.
Acts 3:7–8 NKRV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앉은뱅이의 믿음도, 제자들의 능력도 아닌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장 애를 가진 부정한 자라는 이유로 평생 성전에 들어가 예배하지 못하던 인생이 이제 예수님을 만나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성전에 들어가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 경험하는 가장 큰 기적은 바로 우리가 '온전한 예배자’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걷지 못하던 자가 ‘걷게 되는 기적’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이것은 예배하지 못하던 자가 예배하게 된 사건이다.
과거 이스라엘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하나님께 벌 받았다.
그가 장애를 가진 이유는 분명 하나님께 어떤 큰 잘못을 했기 때문이다 라는 인식.
몸에 이런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은 ‘부정한 자'라고 규정하였기 때문에 성전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 앉은뱅이 거지는 늘 성전 문 앞에만 있었던 것,
평생 성전 앞에 나아왔지만 정작 들어갈 수 없던 인생. 예배할 수 없었던 인생이었다.
그러나 오늘 베드로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가 일어나 걸으며,
성전에 들어가면서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적을 추구하는 목적, 우리도 인생에 어떤 선물 같은 일,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구하지만, 왜 그것을 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가 온전한 예배자로 세워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함께 해봅시다. “온전한 예배자"
<결론>
9절, 10절 말씀
Acts 3:9–10 NKRV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오늘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침 받은 앉은뱅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이 놀라는 것.
하나님은 살아계시구나,
예수 이름에는 정말로 능력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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