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4 저녁] 고백의 입을 여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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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50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 90 주 예수 내가 알기전
본문 막7:31-37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아멘.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 이 시간 우리의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하기 위해 모인 주의 백성들을 기억하시고, 이 자리에 좌정하셔서 우리의 경배를 받아 주시고 크신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특별히 이 시간 간절히 간구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며 죄 가운데 우리의 묶이고 매이고 막힌 것들을 주여 풀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우리의 눈을 여셔서 전능하신 아버지를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붙드사 자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며, 우리의 귀를 여셔서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우리의 입을 주장하셔서 주를 향한 기도와 찬양이 멈추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슬픔을 당한 가정을 주님께서 위로하여 주시고, 질병으로 고통중에 있는 성도들을 만져 주시오며, 물질로 인하여 곤고한 성도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고, 삶의 여러가지 무거운 짐 진자들을 위로하시고 감당할만한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한달 뒤부터 시작하는 양문교회 교육부서들의 여름사역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참여하는 어린 영혼들을 주님께서 지금부터 준비시켜 주시어 하나님 예비하신 은혜들을 누리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준비하는 교역자들과 교사들에게도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옵소서.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설교자의 부족함을 감추어주시고, 오직 이 시간 대언하시는 그리스도만이 드러나도록 하셔서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귀한 은혜의 시간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얼마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몸으로 말해요' 라는 게임을 하는 것을 보았다. 참가자들이 각각 음악이 재생되고 있는 해드폰을 끼고 사회자가 보여주는 단어를 몸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게 참 재미있더라. 손짓 발짓 동원해가면서 상대에게 단어나 문장을 설명하는 것도 웃겼고, 그것을 맞추려는 사람의 오답도 재미있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은 참 재미있었지만, 여러분 만약 이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이 된다면 어떨까? 방송 프로그램에서처럼 재미있기만 할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서로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것이고, 간단한 업무처리라도 마비가 될 것이다. 이렇듯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둘 다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귀도 듣지 못하고 말도 더듬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남자는 단순하게 말을 더듬기라도 하면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가 아니었다. 아예 불가능한 자였다. 듣지도 못하고 말도 더듬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주변 사람들은 이 사람을 너무나도 불쌍히 여겼고, 마침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어 그를 예수님께로 데려간 것 같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라.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주님께 데려와 안수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저들은 주께서 이 불쌍한 자에게 안수해 주시기를 바랬다. 그리고 주님께서 병자를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병자를 고치시는데, 이 때에 주님께서 ‘에바다’ 라고 선포하신다. 예수님께서 이 불쌍한 자를 향하여 '열려라'라고 외치셨을 때에 이 사람의 막혔던 귀가 열렸고, 막혔던 입과 혀가 뚫리게 된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택하신 백성들을 향하신 주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간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 한다.
첫째로, 주님께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첫째로, 주님께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큰 특징들이 무엇이 있는가? 크게 2가지만 꼽으라 한다면, 죄로 인하여 우리의 눈과 귀가 가리워져서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고, 또한 더 이상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거나 고백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죄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다.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고 구하지도 않으며 그분을 섬기지도 않고 그분의 목소리를 청종하지도 않는다.
결국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게 되었다. 자신의 창조목적도 잊어버린 채, 인생의 목적도 없고 방향도 상실한 고아와 같은 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죄인들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하시는가? 죄인들과 병자들을 주께서 민망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아픔,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의 마음으로 죄인을 바라보셨다는 것이다. 목자 없는 양 같이 여기시고 불쌍하고 긍휼히 여겨주시어 주님께서 죄인을 위해 저들의 연약함과 상처를 어루만지신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도 이러한 죄인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아주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막7:34 에 주님께서 이 사람을 보시고 탄식하셨다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본문에서 ‘탄식하시다’ 라는 단어의 기본형은 ‘좁은, 작은’ 이라는 형용사에서 파생되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시절 몸 하나 간신히 숨길만한 아주 작은 상자나 캐비넷 같은데 들어가 숨어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아주 작고 협소한 공간에 들어가게 되면 기분이 어떤가? 아주 답답하고 억눌림을 느끼게 된다. 지금 주님께서도 그와 같은 압박감을 받고 계셨다. 눈 앞 병자의 귀 먹고 말 더듬는 것에 대해 심적으로 압박감을 느끼시고 답답함을 느끼셨다. 그래서 주님께서 탄식하셨다. 그 탄식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낮고 천한 이 땅까지 내려오게 된, 자신을 위한 탄식이 아니었다. 그간 귀가 멀어서 듣지 못하였던 하늘 아버지의 음성을 눈 앞의 병자가 듣게 해달라는 탄식이었다.
긍휼이 많으신 주님께서 탄식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그 사람의 처지를 마음 속 깊이 동정하셨음을 보여준다. 주를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도 모르던 죄인을 주께서 찾아가셔서 그를 만나시고 아무 소망이 없던 그의 인생을 바꿔 주셨다. 복음을 알지 못한 채로 아무런 소망도 없이 죽어가던 죄인에게 유일한 소망이 되어 주셨다. 복음을 들어야 할 자가 귀가 막혀서 복음을 듣지 아니하고 신앙을 고백해야 할 자가 입이 막혀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인생이 또 있겠는가? 죄인의 괴로움은 곧 주님의 괴로움이었고, 죄인의 아픔은 곧 주님의 아픔이었다.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께서 죄인들의 탄식과 괴로움을 당신의 괴로움과 탄식으로 삼으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알기 전의 우리 모습들이 어쩌면 이리도 이 사람과 똑같을까? 우리의 귀가 막혀서 주님의 애타는 부르심을 듣지 못하였고, 우리의 혀와 입이 막혀버려서 우리의 주되신 예수님을 올바로 고백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아무런 소망이 없이 하루하루 허투루 살아갔던 우리 아니었는가? 그런 소망없던 우리에게찾아오시어 유일한 소망이 되셨다. 그리고 그 귀한 몸을 십자가에 올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셔서, 고아와 같이 버림받은 것 마냥 살아가던 우리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무가치하게 살아가던 우리의 인생이 이제는 하나님 자녀로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셨다.
내 친구 되신 예수님 날 구원하시려고 그 귀한 몸을 버리사 내 죄를 대속했네
나 주님을 늘 믿으며 그 손을 의지하고 내 몸과 맘을 바쳐서 끝까지 충성하리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께서 죄인을 너무나도 사랑하시어 직접 이 땅에 내려오시어 저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을 위하여 낮고 천한 이 땅에 내려오셨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얼마나 큰 은혜인가. 이처럼 큰 은혜를 베푸시는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누구라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줄로 믿으시길 바란다. 심지어 아주 심각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그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 주신다. 오늘 본문에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향한 주님의 진실된 사랑과 긍휼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찾아가셨고, 그를 만나셨으며, 그를 만지셔서 고쳐 주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우리가 믿고 의지할 바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뿐이다. 이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요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가야 할 바이다.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을 찾으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탄식하시는 주님을 구하라. 우리에게 크신 은혜 베푸시는 주님께 두드리라.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넘치도록 경험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가장 좋은 방편으로 은혜를 베푸신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가장 좋은 방편으로 은혜를 베푸신다.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는 죄인들은 죄가 사람의 모든 영역을 물들였기 때문에 사람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더 나아가 하나님을 올바로 고백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상실하였다. 따라서 죄인에게는 그 죄인에게 걸맞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라. 사람들은 주님께 이 불쌍한 사람을 안수해 달라고 데리고 왔다. 당시 사회에서 능력 있는 자의 안수는 특별한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께로 병자를 데리고 나아와 안수를 해 달라고 청했던 것이다. 저들은 이 불쌍한 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자 최선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33절 말씀을 보라.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왜 주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따로 데리고 나가셨을까? 얼마 전까지 코로나로 전세계가 난리였었다. 국내에서 코로나가 한창 심각했을 때 감염환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했는가? 무조건 격리였다. 환자를 격리 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감염의 확산을 방지하고, 또한 최상의 조건에서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며, 다른 질병균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만일 주님께서 많은 이방인 무리들 앞에서 이 자를 치유하셨다면, 고침받은 그가 가장 먼저 듣게되는 말이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무리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것도 허황되고, 부질없으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미신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그래서 주께서는 이 사람을 따로 불러 내셨다. 그리고 손가락을 양 귀에 넣으셨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은 곧 능력과 구원을 나타내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고 홍해를 가르셨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에스라를 통해 백성들을 이끌고 바벨론 포로에서 무사히 귀환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손이 포로귀환한 자들을 도와 성전 재건을 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손이 성벽까지 재건하게 하셨다. 이러한 능력의 손으로 주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가?
먼저 주님은 그 손가락을 병자의 양 귀에 넣으셨다. 왜 귀에 넣으셨는가? 이 병자는 지금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병자에게 있어서 귀는 장애의 부위요, 연약한 부분이며, 회복 받아야 할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연약한 부분을 주께서 어루만지셨다. 귀에 손을 넣으신 후에 어떻게 하시는가? 침을 뱉어 그의 혀에 대셨다. 왜 그의 혀를 만지셨는가? 지금 이 병자는 말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이 병자에게 있어서 혀 역시도 장애의 부위였고, 가장 연약한 부분이며, 주님께 회복 받아야 할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연약한 부분을 주께서 어루만지셨다.
이것을 우리는 비위생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로 판단할 수 있을까? 물론 예수님께서는 다른 환자들을 치유하셨던 방법처럼, 또한 이 병자를 데리고 나온 많은 무리들이 그렇게 원했듯, 그저 안수함으로 치유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듣지 못하고 혀가 굳어져 말할 수도 없던 이 사람에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치유하셨다. 침을 바르는 행위는 결코 더러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람의 침은 더럽고 불결하게 느껴지지만 고대사회에서 침은 치료의 상징이었다. 특히 당시 문화로 미루어 볼 때 침은 병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사람을 치유하실 때에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는 일은 당시로 말하자면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었다. 막힌 것이 뚫리고, 쌓인 것이 녹아버리고, 매인 것이 풀리고, 꼬인 것이 정상적으로 풀리며, 끊어진 것이 정상적으로 연결되게 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며 우리는 때로 인간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의 꿈과 나의 비전과 나의 소망을 이루어주시기를 바란다. 내 생각과 경험과 판단에 의거하여 어떤 목적을 이루어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좋은 길로, 언제나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맞고 저것이 틀린 것처럼 보여도 늘 내 판단과 기준이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길을 막으시기도 하고 꺾으실 때도 더러 있다. 내가 그토록 간구하고 기도하던 것과는 다르게 인도하시고, 내가 원하고 바랬던 것들을 막으시고, 때로는 포기하게 하실 때도 얼마나 많이 있던가.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예비하시고, 그 가장 선하고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시기를 바란다. 사도바울도 그러하였다. 육신의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가 간구했던 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바울은 뭐라고 말하는가?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는 바울이 그토록 고대하던 육신의 치유가 아니었다. 육신의 고통은 경감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붙잡아 주시고 지탱하여 주시는 능력의 은혜, 훨씬 더 좋은 은혜를 그는 경험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던 귀 먹고 말 더듬던 자도, 그리고 사도 바울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좋은 방편으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세상이 알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이해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의 이해와 상식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시고 합당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이러한 믿음 가운데 선하신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의 고백의 입을 열어주신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의 고백의 입을 열어주신다.
죄로 인하여 우리의 눈이 가리워져서 더 이상 주님을 볼수 없고, 찾지도 아니하며, 우리의 귀가 덮여져서 더 이상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고, 청종지도 아니하며, 우리의 혀가 굳어져서 더 이상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수도 없고, 그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지 아니하던 죄인들, 바로 저와 여러분들과 같은 그 죄인에게 주님께서 찾아가셔서 모든 막혔던 것들을 열어주셨다. 모든 꼬였던 것들을 풀어 주셨다. 오늘 본문의 말씀 34-35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한글성경에는 ‘에바다’ 라고 되어 있는데, 원래 음역은 ‘엡파다’이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완전히 열리다’라는 의미의 아람어 이다. 한글 성경에는 에바다의 의미를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원어의 의미를 보면 ‘열다’라는 단어의 명령법으로서 "너는 열려라!" 라고 할 수 있다. 주께서 이 사람을 보시고 ‘너는 열려라’ 라고 명령하셨음은 이 사람이 뭔가 막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35절 말씀을 보면 이 사람의 귀가 막혔었고 혀가 막혔었다. 주님의 “에바다!” 명령에 의해 이 사람을 가로 막고 있던 모든 것들이 열리게 되었다.
여러분, 죄가 그렇다. 우리의 눈과 귀와 혀까지 모두 막아버린다. 죄로 막혀진 인생은 하나님을 올바로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듣지도 못하며,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이 죄가 지닌 파괴력이다.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존재로, 하나님 의존적인 존재로서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과 사람의 그 친밀했던 관계 속으로 죄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 모든 관계가 어그러졌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졌다. 가로막혔다. 더이상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더이상 그분의 사랑스런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메말라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도 막혀버린다. 더이상 하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지 않게 된다. 이게 바로 죄이다. 본래 선했던 우리의 모든 것들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고장내버리고, 더이상 못쓸 존재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죄인들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죄인들을 찾으신다는 것이다.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모든 성도들을 하나하나 찾으시고,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해 가로 막혔던 모든 막히고 억눌린 것들을 완전히 열어주실 것이다. 우리의 모든 막혔던 것들을 향하여 “에바다!” 라고 명령하심으로서, 막혔던 우리의 눈이 다시금 아름다우신 하나님의 광채를 바라보게 하실 것이고, 우리의 막혔던 귀가 달콤한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하실 것이며, 맺혔던 우리의 혀를 풀어주셔서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회복되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회복되며,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고백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막힌 것들이 아직 뚫리지 않은, 주님의 자비와 긍휼의 대상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내 사랑하는 가족들, 내 사랑하는 친구들, 내 이웃들, 내 자식들, 주님을 향한 눈과 귀와 입이 막힌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함께 예배하는 지체들 중에서도 여전히 주님을 향해 막힌 것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분들이 계실런지도 모르겠다.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을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우리의 유한한 인생인데, 그 한정적인 시간들을 허송세월하며, 온갖 쓸데 없는 것들에 현혹되어 정작 바라보아야 할 주님은 바라보지 못하고, 정작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이것만큼이나 불쌍한 인생이 어디 있겠나.
죄인을 보시며 그 답답함 가운데 탄식하셨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주님의 마음이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충만하게 채워지길 축원한다. 이시간 우리가 본문에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주님께 데려간 그 무리들이 되자. 우리 주변의 불쌍한 죄인들이 주님을 만나야 하지 않겠나. 그들의 매인 것들이 풀려야 하지 않겠나. 그 가려진 것들이 다시 열려야 하지 않겠나. 주님께서 이 사람의 막힌 귀와 눈과 혀를 열어주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갖자. 그리고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 양문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특별히 여러분, 주보에 광고로 실렸지만, 다음달 동안 우리 양문교회 교육부서에 여름사역들이 준비중에 있다. 죄인들이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사랑스러운 자녀들이지만 죄인인 그들이 막히고 매인 것을 풀어주시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죄인을 불쌍하게 여기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아이들을 만나실 때, 우리의 청년들을 만나실 때, 또한 우리 주변의 많은 죄인들을 만나실 때, 모든 막히고 매였던 것들이 풀어지는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 일에 여러분의 관심과 기도로 귀히 쓰임받는 이 자리의 모든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
기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자. 죄인들을 찾으시는 주님, 이 시간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만나 주옵소서. 막히고 묶인 것들에 “에바다"를 명하시는 주님, 우리의 도처에 주님의 말씀이 필요한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요. 그들을 만나 주옵소서. 그들에게 “에바다"를 명하사 모든 막히고 묶인 것들이 풀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내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자녀,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 주옵소서.
마무리 기도
마무리 기도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죄로 인하여 묶이고 막히고 매였던 우리의 영을 깨우시고 회복하시며 풀어주시고 소생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크신 주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셨던 것처럼 주의 모든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로 만나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여전히 우리의 도처에 주님의 “에바다" 그 말씀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죄인을 향하여 애통해 하시며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넘치는 긍휼로 그들을 만나 주옵소서. 죄로 인하여 고장난 귀를 열어주셔서 생명의 복음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죄로 인하여 고장난 눈을 열어주셔서 구원자 예수를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죄로 인하여 고장난 입술과 혀를 열어주셔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주님, 이제 한달 뒤면 우리 양문교회 교육부서들에 여름수련회와 성경학교가 있습니다. 이 일이 그저 연중행사처럼 형식적으로 지나가지 않게 하시고, 이 일들을 계기로 “에바다"의 역사들이 임하도록 주여, 양문교회의 교육부서들에 기름부어 주옵소서. 이 일들을 기도로 준비하는 교사들과 교역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옵소서. 참석하는 영혼들의 마음들을 미리부터 준비시켜주셔서 에바다의 역사가 풍성하게 나타나는 여름사역들이 될 수 있도록 크신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축도
축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