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4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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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2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3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4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
7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9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0 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는 가슴아픈 현실을 바라보며, 비탄과 눈물로 노래를 지은 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읽은 예레미야 애가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불릴 만큼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한때 유다는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마음껏 누리며 주변국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화려했던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백성들은 이방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로인해 유다 백성은 이방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심지어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던 민족들은 유다가 몰락하자 손가락질 하며 조롱까지 한다. 유다는 그런 수치를 당하면서도 대항할 힘이 없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던 우방들도 유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등을 돌려 버렸다. 철저히 무너져 버린 유다 백성을 위로하고 도와줄 민족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얼마나 비참한 유다의 현실인가?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침략 할 수 ㅇ벗는 도성으로 여겨졌다.
첫째 예루살렘은 삼 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형적인 여건 때문에 적은 숫자로도 많은 침략군에게 쉽게 대항 할 수 있었다. 적은 숫자로 많은 침략자들을 상대할 수 있는 천영 적인 요새였던 것이다. 예로 주전 588년에 바벨론이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 정복에 나섰지만, 포위한 지 18개월 만에야 겨우 성을 함락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성안에 식량이 다 떨어져 자멸하였기에 바렐론에 의해서 함락했다고 이야기 하기는 힘들다.
둘째,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결코 예루살렘이 침략자들의 손에 함락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당시 시대를 지배했다.
셋째,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고 다윗의 후손들을 영원히 이스라엘을 통치할 것을 약속하셨다. 이것이 일명 ‘다위 언약'이다. 예루살렘은 다윗 통치의 상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윗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결코 예루살렘을 파멸에 이르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신학적 이해가 당시 사회에 팽배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루살렘의 파괴가 역사적인 현실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예루살렘이 이처럼 허망하게 무너졌을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왜 이토록 이방나라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해 이러한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인가? 이토록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공격으로 그들의 성 예루살렘이 무너진 이유는 그들이 “약해서" 가 아니라 그들이 ‘악해서' 이다.
당시 예루살렘은 전에 이야기 했던 것 처럼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누리며 주변국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백성은 풍요와 만족 속에서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졌다. 그들이 저지른 죄는 악은 바로 우상숭배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유다에게 주셨던 모든 복을 거두어 가셨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해서 무조건 보호와 번영이 보장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 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모든 복을 거두어 가셨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무조건 적으로 보호와 번영이 보장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백성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삶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이다.
지난시간 말씀 기억하는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여러분이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방향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길에 서지 않고 아니 하나님의 길이 없다고 무시하며 다른 길로 가고 있으면 때때로 하나님은 그를 쳐서라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방법을 내가 원하고 바라는 방법일거라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하나님의 방법은 다양하다. 그 방법대로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 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복음을 전할 백성으로 선택한 이스라엘일지라도 하나님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을 향해 진노하고 계신 것이다. 물론 이처럼 하나님의 진노도 은혜이다. 그 이유는 진노한다는 것은 아직 이스라엘 입장에서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사랑의 반댓말은 미움이 아니다. 사랑의 반댓말은 무관심이다. 하나님께서 포기 하셨다면 아마 하나님 없이 사는 그 이스라엘 백성이 평안하도록 내버려 두셨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과 상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더이상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그들이 어떻게 살던 하나님께서 무슨 상관이 있으시겠는가? 하나님께서 굳이 예루살렘을 무너뜨리며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되게 하실 이유가 있으시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혹시 지금 하나님께 징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있는가? 그것은 다시 하나님께 돌아설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정직히 되돌아 보아야 한다. 오늘도 이시간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시고 계신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하길 바란다. 그것이 그무엇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먼저 되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본서의 저자처럼 교회와 성도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며 울부짖은 사람이 우리에게 있는가? 비탄에 빠져 엉엉 우는 여인처럼 자신과 교회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있는가? 교회와 성도는 철없는 유다 백성처럼 안일하게 그저 대중적 신앙, 이기적 신앙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성전에 달려간 이사야 같은 사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 (사 6:1-8)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울라, 외개의 메시지를 외면하지 말라. 성도들은 유다 백성처럼 무감각적인 안일함에, 현제주의의 즐거움에 취해 있어서는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