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4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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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두려워 말라

여러분! 다들 한주 잘 지내셨나요? 우리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인사합시다. ‘지난 한주도 고생많았어~’
네 우리가 함께 인사했던 것처럼, 우리 친구들 한주간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6월 모의고사도 있었고, 시험준비 및 수행평가 준비로 다들 바쁘고 고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다들 바쁜 한주간 살아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들으면서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친구들 중에 나는 좀 겁이 없는 편이다 하는 친구들이 있을까요? 공포영화도 좀 잘 보고, 놀이기구도 잘 타고 하는 친구들이 아마 있을거에요.
사실 저는 이런 친구들이 좀 부러운 편이에요. 왜냐, 저는 되게 겁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저번에도 한번 이야기했지만, 공포 이런 것들에 대해서 무서움이 많은 편이라 엘리베이터에서 그거 이겨낼라고 막 찬송을 부르고 하기도 했구요,
제가 또 몸도 많이 사리는 편이라 과격하고 익스트림한 운동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번지점프를 하거나, 수상 레저를 하거나, 뭐 이런식의 스릴을 즐기는 것들을 잘 하지 못해요. 스릴을 즐기기보다는 무서워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저는 실제로 살면서 한번도 어디 한 곳이 부러진 적이 없어요. 보통 저희 또래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 한번씩은 골절상을 당하고 하거든요?
아마 우리 친구들이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때 놀이터는 그렇게 푹신푹신하고 안전하지 않았어요. 바닥부터가 모래로 되어있는데, 안에 보물찾기처럼 유리조각이 들어있기도 하고 했었구요,
그네는 쇠사슬로 되어있어서 누가 막 꼬아놓는 경우도 있었고, 정글짐이라고 하죠, 대체 뭘 하라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쇠 구조물도 있었구요, 구름다리라고 하는, 마치 군대 유격훈련때나 쓸 것 같은 구조물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그냥 재밌게 놀다보니 찰과상은 다반사고, 어디 한 곳이 부러져도 그냥 그러려니 했던 세대였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한번도 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제가 두려움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는 저보고 쫄보라고 욕할 수도 있을 거에요. 물론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저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겠죠.
저도 그렇지만, 아마 우리 친구들도 앞날에 대한 두려움들은 많이 가지고 있을 거에요.
특히 고3들 앞에 놓인 입시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제가 몸을 사리는 두려움 못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근데 아마 성경을 보면 이런 구절 분명히 들어봤을 거에요.
두려워말라! 라는 말이죠.
그렇다는 것은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현실은 어때요? 두려움. 완전히 없앨 수 있나요? 그렇지 않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두려움들은 더 생기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고, 그게 있으니까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도 드리고 하는데, 대체 왜 두려움의 감정은 떠나가지 않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말씀을 보면 우리와 같이 두려움에 휩싸인 이들이 등장을 하죠? 바로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이 뱃속에서 풍랑으로 인해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또한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고자 하시는지를 함께 바라보도록 합시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에 오른 이유는 갈릴리 호수를 건너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향하시는 곳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르시니까 제자들도 따라서 배에 탔겠죠.
그리고 그 배는 어부 일을 했던 유능한 뱃사람인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은 이들이 운행을 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에게 배를 맡기고 주무십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을 보게 되죠? 예수님도 잠을 주무셨다는거에요. 우리가 흔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마치 잠도 한숨 안주무시는 분이신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하나님이시지만, 이 때에는 사람의 몸을 입으신 상태, 즉 성육신의 상태셨기 때문에 완전히 인간이셨고, 인간인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들을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배고픔을 느끼셨고, 피곤함도 분명히 느끼셨습니다. 그러한 인간의 모습이 오늘의 말씀에서 등장한 것이죠.
자, 그런데 배가 가는 도중 문제가 생겨요. 어떤 문제에요? 배 주위로 큰 파도와 바람이 생겨난거에요.
말씀에 따르면 큰 놀이 일어나 물결에 덮이게 되었다고 할 정도니, 아마 뱃사람인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들이 결국 포기하고 누굴 찾나요? 예수님을 찾습니다.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말이죠.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들을 꾸짖으신 후에 이어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엄청났던 풍랑이 바로 잔잔해지게 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놀라게 되죠. 그러면서 뭐라고 해요? 이사람이 대체 누구길래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라고 말을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이야기한 이유는 그들이 살면서 자연을 조종했던 존재는 하나님 한분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것도 구약성경에서나 볼법한 사건들이었죠.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께서 행하시니까, 대체 이사람이 뭐냐?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와 같은 존재가 아닌 무언가 초월한 존재임을 깨달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본 말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나요?
제자들의 믿음이 부족했고, 예수님의 능력은 대단하시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요, 이렇게 이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좀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구요.
왜 그럴까요? 사실 제자들이 맞딱뜨린 사건은 뭐에요? 자연재해에요. 이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 제자들도 나름대로 배를 제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겠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하지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와중에 스승이라는 분이 옆에서 자고 있는거에요. 그러니 당연히 예수님을 깨우고 빨리 좀 우리를 구원해주세요. 뭐라도 해주세요. 이렇게 얘기를 해야겠죠.
그런데 제자들의 마음은 몰라주고 그냥 혼내킨거에요. 그리고 꾸짖음 한번으로 이 엄청난 노력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던 어려움을 없애주셨죠.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겠어요? ‘아니 우리가 한것도 아니고 나름 열심히 하다가 예수님 부른건데 당연히 무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무서워한다고 혼내키시는 건 너무하신거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간단히 하실 수 있는거면 그냥 미리 좀 해주시지’ 뭐 이런 생각이 들수도 있었을거에요.
이렇게 보면 에이 예수님도 좀 너무하시다 라는 생각이 들게되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보면 뭐 예수님이 피곤해서 자는데, 자는데 깨웠다고 화낸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행동하신 모든 것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어떠한 이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어요.
자, 말씀 처음부터 한번 보자구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이유는 뭐에요? 예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특히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은 어부들은 자신의 생계수단인 배와 심지어는 부모님까지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뭐겠어요? 그냥 예수님께 온전히 맡긴거에요. 올-인을 한 것이죠.
그랬기에 오늘 말씀 시작에서도 예수님께서 가시는 배로 따른 것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긴 상황이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행하신 그 길을 따라가는데, 뭐가 생겨난거에요? 재난, 고난이 일어난 것이죠.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고 해서, 예수님을 따르면 엄청 좋을 것 같아서 따랐는데, 오히려 힘든 일들만 있는 거에요.
그런데 심지어, 그 순간 예수님은 뭐하고 계셨어요? 주무시고 계셨죠. 그러니 제자들이 뭐라고 생각했겠어요? 우리가 고난을 겪는 이 순간에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구나. 우리는 고난 속에 홀로 놓여있구나 라고 생각한거에요.
그래서 자신의 능력, 사람의 힘으로 막 열심히 해봅니다. 그러나 되겠어요? 안되죠. 그러니 예수님을 깨우는 거에요. 예수님 좀 일어나서 이것 좀 어떻게 하시라고. 왜 우리를 이끌어놓고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느냐고.
분명히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한 것이죠. 그런데 그 믿음은 자신들의 눈 앞에 놓인 상황 하나만으로 가볍게 깨어져버렸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향하면, 우리는 안전할거야! 예수님께서 지켜주실거야! 라는 믿음이 전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따르고 믿기로 해서 배에 탔으면서도, 너무나도 작은 어려움에 그 믿음이 부서지는 것을 보신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은 보여주십니다. 세상의 시선들, 상식들을 뛰어넘으시는 분이 바로 그들의 눈앞에 있는, 그들이 믿기로 했던 그 주님이심을.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작은 믿음이 아니라 큰 믿음을 가져야 한다라는 것을 제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몰라요. 어떻게 제자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믿음이 없을까. 예수님이 같이 타신 배가 쓰러질리 없다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제자들과 같이 작은 믿음이 아니라 큰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자들의 모습과 우리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거에요.
왜 그럴까요?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그 배에 타고있고, 제자들과 같이 배 안에서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면서 그 배에 탄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하면서 이 교회 공동체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예수님을 믿고 교회 공동체에 속하면, 나의 삶 속에 좋은 일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여겼을 거에요. 마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어떤가요? 교회 공동체에서 여러분들은 늘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태운 배가 풍랑을 만난 것처럼, 우리는 세상의 풍파를 만나게 됩니다.
교회에 속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때가 생긴다라는 거에요.
가장 단적으로 보이는 예가 어떤 것이겠어요? 주일에, 수요일에, 남들 쉬고 공부하고 할때,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 함께해야 한다라는 거에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서 뭐라고 하겠죠. 왜 굳이 그런걸 해?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걸 하지.
그런 풍랑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풍랑 속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셨던 것처럼, 우리의 그러한 순간속에서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함께하시지 않는 것 같죠.
그러한 순간 속에서 우리는 믿음에 의심이 생기기도 하고,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 혼란한 마음 상태가 생기게 되기도 할 거에요.
하지만 그 순간에서도 예수님은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주무셨지만 분명히 계셨던 것처럼 말이죠.
예수님은 여러분이 고난을 겪고 있는 그 순간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꾸짖음으로 그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던 것처럼, 반드시 여러분들의 그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이겨낼 수 있도록 행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말을 들어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질문이 생길 수도 있겠죠. 예수님이 계시면 고난 자체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어려움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분명히 말씀으로 답하십니다.
마태복음 10:22 NKRV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세상은요, 여러분들이 주님을 믿는다는 것만으로 여러분들을 공격합니다. 왜냐, 여러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고자 하기 위함이죠.
그렇기 때문에 믿는자들, 성도들은 삶에서 수없이 어려움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지금 인터넷만 봐도 뭐라고 해요? 교회를 욕하고 믿는 사람들을 욕하고 아주 열심히 우리를 비방합니다.
당장 여러분들에게도 그러한 순간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습들을 가지고서 비방하고, 조롱하고, 여러분들을 이상하다고 말하고.
아마 그러한 순간들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들도 있었을거에요.
하지만 그러한 순간들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강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분명히 함께하시고, 이 고난을 잠잠하게 하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우리 친구들이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그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서 두려움은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분명히 고난을 이길 수 있어! 라고 되뇌어도 마음 한켠에 조그만 두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당장 이 말을 하는 저조차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이에요. 제자들이 열심히 배를 제어하려고 해도 못했던 것처럼, 우리의 시선으로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헤쳐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두려울 수밖에 없는 거에요.
마치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그냥 유리인지, 강화 유리인지 알 수 없는 그 유리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우리가 부족한 이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시며 힘을 주십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하죠. 그들 중에는 정말 보통사람으로는 행동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행한 이들도 있습니다.
출애굽을 이끈 모세, 300용사 기드온, 심판을 선포했던 이사야와 예레미야. 정말 많은 이들이 있죠.
하지만 이들도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두려워했어요. 제가 앞서 말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성경의 초반부를 본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두려움으로 거절했던 말씀들을 찾을 수 있을거에요.
하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었죠.
여러분들에게도 이 말씀은 유효합니다.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시험과 입시 등 어려움들, 이 모든 풍랑 앞에서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여러분을 승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아까 제가 읽었던 말씀 구절을 함께 읽으며 말씀을 마무리할게요.
마태복음 10:22 NKRV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견딜 수 있게 힘을 주실 것이고, 끝내 여러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 주님을 믿고 신뢰하며 두려움을 이겨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주만 의지해 찬양하면서 우리를 인도하실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말씀을 놓고(두려움을 이겨내게 하소서)
우리 공동체를 놓고
우리 앞의 사역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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