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dilemma)
Notes
Transcript
본문구절
본문구절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도입부
도입부
딜레마의 사전적 정의 :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인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네이버 국어 사전)
비슷한 용어 : 진퇴양난(進退兩難)
예시
평행 주차를 하였는데 앞에는 아우디, 뒤에는 BMW가 주차 되어 있음. 그런데 나는 지금 차를 타고 볼일을 보러 나가야 하는데 이 차들이 너무 바짝 댄 상황. 게다가 앞, 뒤 차주는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상황.
내가 모처럼 마음에 드는 옷을 구매를 하였음. 그런데 이 옷을 파는 매장에서는 한정판이라고 하며 직원의 말에 그 옷을 구매를 함. 이 옷은 평소에 내가 사는 옷에 비해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마음에 드는 옷이어서 구매를 함. 모처럼 약속이 있어 이 옷을 입고 나왔는데, 나와 이 옷의 디자인, 메이커가 동일한 옷을 입은 사람이 두 세명이 보임. 그런데 이 약속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상황.
신앙 생활에서도 이러한 딜레마와 같은 상황에 봉착하기도 함. 이 딜레마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씀을 통하여 함께 극복해나가는 방법을 강구하길 소원함.
배경
배경
요셉이 애굽의 총기가 되어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넘어와 함께 살게 된 70명의 가족들.
시간이 흘러 그 70명의 가족들은 이제 가족을 넘어 민족을 형성할 만큼 시간도 흐르게 됨.
점차 생육하고 번상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민족을 형성을 두려워한 애굽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된 노동과, 강제 산아제한을 벌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에 탄식, 부르짖음이 상달되어, 그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보시고, 기억하심.
고통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시기 위하여, 오래전 약속하신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함.
하나님께서는 왕궁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지도자로 세우심.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절을 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하고 진행하시는 모든 일에 함께 하며, 표징과 이적을 보여주시고, 동역자이자 형인 아론을 세워주시며 자신의 구원 사역을 진행하심.
모세는 애굽으로 가 바로 앞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나, 바로의 마음은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는데 거절하는 그에게 나일 강을 지팡이로 치자 피로 변하고, 고기가 죽고, 악취가 나며, 마시기 어려운 재앙을 시작으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기 시작하심.
그러나 완고한 마음을 가진 바로의 마음은 재앙을 마주할 때만 잠시 변할 뿐, 이스라엘 백성을 쉽게 보내지 아니함.
마지막 열번째 재앙까지 하나님은 내리시게되고, 열번째 재앙인 처음 난 것을 바로의 장자로부터 몸종의 장자,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음을 통하여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을 있게 하나,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여 넘어가는 재앙을 내리시기로 함.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흠 없고 일 년된 수컷으로 된 양이나 염소 중에 취하여 그 피를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서 먹으며,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 모든 신을 심판하며, 피를 바른 그 집을 볼 때에 넘어가는 이 날을 기념하여 절기로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키라고 하심.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무교병을 먹으며,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 날을 기념하여 무교절을 대대로 지키라고 하심.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유월절을 하나님께서 일러주신대로 지키며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음을 기억하며 행하며 지킴.
마침내 밤 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심.
애굽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을 정도가 되자 마침내 비로소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줌.
본문해석
본문해석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이 총리가 되어 그 가족 70명이 애굽에 정착하여 살게 된 이후 430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서 약속의 땅의 여정을 시작하게 됨.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 가기 위해 빠른 길인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바로 인도하지 않으심.
아니 430년이나 아니 그 이전 아브라함에게 처음 약속한 창세기부터 지금 출애굽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한번에 보내지 않으시고, 어떻게 빙 돌아가게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음.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를 단지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다고 함.
왜 블레셋으로 가는 길로 가면 약속의 땅으로 빠른 시간에 도착하게 되고, 전쟁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시면 이길 수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라는 그 이유 하나로 가까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신다고 기록하고 있음.
그 이유를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지만, 본문에만 집중해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들이 노예로 생활하였던 애굽의 땅의 생활에 대해 토로하며 불평함.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바로 뒷 장에서만 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에는 바다를 두고, 뒤에 애굽의 병력을 쫓기는 상황에 지도자인 모세에게 바로 불평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음.
차라리 우리를 내버려두면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고 하며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이고 있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아마도 비웃을지도 모르겠음.
그러나 이 모습은 비단 이스라엘의 모습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님.
바로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시간의 흐름에, 해야 할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하루를 되돌아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오늘 하루를 그리고 나의 삶에 오늘은 어떤 의미로 부여하셨는지 되돌아보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처럼 미련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길 소원함.
우리가 바라보는 길이 비록 가까워보이고, 괜찮아 보이는 길일지라도 그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으신다면 그 이유는 분명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함.
우리의 시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야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 함.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로 살았던 이들임. 그들에게 무슨 무기가 있었겠는가, 무슨 전투 기술을 가지고 있었겠는가?
그들은 아직 전쟁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함.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길 수 있고, 전쟁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실 것은 분명히 알지만,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우리를 이끌어 가심.
우리가 아무리 전쟁 준비가 되어 있다고 펄펄 뛰어도 하나님께서 잠잠하라고 하면 우리는 잠잠히 있으면 되고, 그가 가라고 명령하시면 우리는 가면 되는 것임.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가는 것을 볼 수 있음.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유골을 가지고 가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라는 의구심이 듬.
이는 요셉이 형제들에게 남긴 말을 생각해보면 모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음.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비록 요셉은 요셉의 때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본인은 죽음으로 인하여 비록 같이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임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보아 주실 것을 믿었으며, 그 믿음을 토대로 자신이 비록 죽음을 맞이하여 해골이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가길 소원하는 소망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음.
우리가 살아가며 우리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들이 하나쯤은 있을 것임.
믿음이 부족한 남편의 신앙, 아직 철이 없는 자식들의 신앙, 신앙의 연수는 이미 성인의 나이 만큼 되었으나, 여전히 철이 없게 보이는 신앙의 모습. 나를 괴롭게하는 직장, 학교 내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의 개선.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은 요셉의 믿음처럼 그리고 비록 해골이 되어 그 약속을 자신은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그 소망을 믿고 나아가며, 그 실현을 위하여 후대 모세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길 소원함.
비록 나의 때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분명히 이렇게 하시면 하나님께서 충분히 영광받으시고, 하나님의 영향력이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음. 그 생각이 잘 못 된 것은 아님.
그러나 그 생각은 본인, 나의 생각임을 기억해야 함. 하나님의 생각이 아님. 아니 나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맞추면 안됨.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야 함.
한낯 피조물인 우리가 어찌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각에 맞춘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묵상하며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함.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제 그들은 약속의 땅의 첫 걸음으로 이제 장막을 친 숙곳을 떠나 광야 끝인 에담이라는 곳으로 이동함.
그 이동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볼 수 있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가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심
밤에는 불 기둥으로 비추게 하심
약속의 땅으로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심
마지막으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함.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을 보내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리로 가, 저리로 가라고 하지 않으심.
그들에게 지도자인 모세를 세우시사 그 지도자를 통하여 약속의 땅을 갈 수 있도록 세우시고, 인도하여 주셨음.
그 당시에 지금처럼 지도가, 네비가 잘 발달하지 않았을텐데 약속의 땅으로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혼란스럽지 않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에 손수 지도가 되어 주시고, 네비가 되어 주셔서 길을 인도하여 주심을 믿어야 함.
우리의 앞길이 광야의 낮의 햇빛처럼 무척이나 뜨겁고 고통스럽게 느끼는가? 광야의 밤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일교차가 커 추위를 느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면 우리 앞에서 직접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키워야 할 것임.
또한, 하나님께서는 앞서 가신 것 뿐만 아니라, 인도하고, 비추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떠나지 않으신 것처럼 떠나지 않으심을 기억해야 함.
우리는 광야라는 넓고 광활한 곳을 지나갈 때면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억해야 할 것임.
구속사관점
구속사관점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을 인도하시는데 있어서 모세라는 지도자를 세워주심.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과연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세워주셨는가? 아님 앞으로 세워주실 것인가?
하나님께서 본인의 일을 계획하신 일을 뜻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하여 어떤 지도자를 세우셨는지 하나님의 입장에 생각해보길 소원함.
지금 우리 나라를 이끌고, 국민을 대신하여 일을 하는 자가 우리에게 세우신 지도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인 목회자들이 우리에게 세워주신 지도자인가?
우리의 직장의 상관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인가?
각자의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 우리에게 세워주신 지도자인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지도자는 누구인가?
우리 나라를 이끌며, 국민을 대신하여 일을 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인 목회자들이, 우리의 직장의 상관이, 각자의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 우리에게 세우신 지도자가 모두 맞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권위를 가진 자에게 다음과 같이 대할 것을 언급하고 있음.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 권세를 가진 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음.
왜냐하면 그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이기 때문임.
그러나 오늘본문에서 말하는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신앙의 지도자 이심.
모세는 애굽에서 신음하며 고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악으로부터 신음하며 고통하는 우리를 구해주심.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권세로부터 구해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해 주심.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심.
모세는 약속의 땅에 함께 들어가지 못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하심을 믿으시길 소원함.
결론
결론
우리는 살아가며 우리의 삶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진퇴양난의 상황을 마주하게 됨.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고통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만족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과 하나님의 생각대로 약속의 땅을 향해 인도하셨음.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중에 마음을 돌이킬 것을 아시고, 사람이 보이는 가까운 길이 아닌 홍해의 광야 길로,
자기가 총리가 되었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죽어 해골이 되어 약속의 땅으로 도착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이 되는 그 여정의 길을
우리가 바라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함.
하지만, 우리의 시야로,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딱 거기까지이기에 하나님은 자신이시자, 자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심.
그 예수 그리스도를 나와 여러분들의 인생의, 신앙의 지도자로 삼아주시고, 약속의 땅인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인도하여 주심.
비록 그 길이 찌는 듯한 햇빛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길일지라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 햇빛을 막아주시고, 불 기둥으로 환하게 비춰주심으로 우리의 여정에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심.
우리보다 앞에서 가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오늘 이시간에도, 지금 여기에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길 소원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