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비록 약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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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 그대로 외모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이념입니다. 외모와 상관없는 영역에서까지 외모로 상대를 차별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사회정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것은 실제 사람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동물이나 가상캐릭터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모두 사람이기에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고 판단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보이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에는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이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 함께 은혜나누길 원합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물
질그릇에 담긴 보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이 고백은 이사야 선지자의 선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가치관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풀과 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영원하게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질그릇에 담긴 보배에 대한 말씀을 우리게 주고 있습니다. 질그릇은 진흙을 빗어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용기인데, 윤기가 없고 다소무른 것이 흠입니다. 성경에서는 무가치한 존재나 한계가 분명한 인간의 육신,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건등에 비교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질그릇에 보배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영어로 번역된 성경에 보면 이것을 ‘tresure’ 보물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질그릇은 반짝이지도 않고, 매끄럽지도 않은 좋은 음식이나 좋은 물건을 담아두는 용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질그릇에 하나님께서 보물을 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볼품 없는 그릇에 보석이 담겨 있다면 그 그릇은 보석을 담고 있는 그릇이 되게 됩니다. 왜그렇게 됩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8절과 9절에 사방에서 나를 핍박하고 괴롭히더라도 깨지거나 낙심하지 않는 것은 그 질그릇안에 보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질그릇안에 있는 보물은 언제 드러납니까? 질그릇이 깨지거나 그 안에서 꺼내야 보여집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을 항상 몸에 짊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번역에 보면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의 죽음을 체험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체험하는 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체험하고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생명을 전하는 바울의 삶과 모습은 질그릇과 같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약한 그릇이지만 하나님은 그 그릇에 하나님의 보물을 두셨다는 것을 바울을 말하면서 질그릇과 같은 자신에게 먼저 찾아와 구원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핍박이 있습니다. 고난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예수의 보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바울의 관심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질그릇입니까 아니면 그 안에 있는 보물입니까? 질그릇에 담겨있는 보물 그 보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12절에 죽음은 바울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여전히 박해와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사라지지 않고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원한 생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성까지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핍박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영원한 생명을 바라볼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에 바울은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구약성경 시편에 내가 믿었음으로 말했다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이 고백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믿는 바를 전하는 바울의 사역을 엿볼 수 있는 고백입니다. 지금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는데 있어서 게속 어려움이 생깁니다. 방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핍박과 환란으로 넘어뜨리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믿는 것을 세상을 향해서도 교회를 향해서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질그릇과 같은 우리에게 보물을 주셨습니다. 그 보물은 질그릇안에 있습니다. 매우 약한 그릇, 보잘 것없는 그릇이고 흔한 그릇이지만 하나님은 이 그릇안에 보물을 두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주님께서 질그릇과 같은 우리에게 보물을 주셨습니다. 그 보물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바울은 어려움 속에서 그 보물이 드러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많은 어려움이 다가올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아무 소용이 없어보일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찮게 보이는 내 모습, 아무 능력이 없는 내 모습에 실망할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바로 질그릇과 같은 내 안에 보물을 두신 것을 말입니다. 내가 약할 때 그 보물은 더 빛나게 됨을 기억해야 됩니다. 질그릇은 약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보물은 빛이 납니다. 영원합니다. 바울은 이 보물이 더 드러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의 죽음에 동참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얻어지는 영원한 생명, 구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안에 보물은 우리가 약할 때 드러나게 됩니다. 약함에 그리고 볼품없음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입니다. 잠시라는 단어는 ‘프로스카이로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일시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왜 잠시 입니까? ‘프로스카이로스’라는 단어에서 ‘카이로스’라는 단어는 ‘때, 기회’라는 의미가 있는데,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겪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이 때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기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려움을 겪고, 내 부족과 연약함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럴때 우리안에 있는 보물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새번역성경)’
이 모든 일은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까?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하나님이 은혜를 맛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질그릇 같으나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인 보물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소망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게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하나님의 강하심으로 나타납니다. 약한 나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는 바를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우리가 낙심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 잠시 라는 단어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겉사람은 날로 낡아집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어떻다고 말합니까? 새로워진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새롭게 하는 속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겉사람은 겉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날로 낡아집니다. 아무리 힘을 써도 낡아져가고 쇠하여 갑니다. 그러나 반대로 속사람이라 말하는 내적인 인격은 날로 새로워져 가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됩니까? 바로 질그릇안에 담겨져 있는 보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보물은 예수그리스도 믿음으로 얻어진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속사람은 어떻게 새로워져 갑니까?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중심과 감정이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굳건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매일 쇠약해져가는 상황들을 마주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모든 뜻이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바울은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새로워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새로워져 가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린 생각과 마음과 중심과 생각입니다.
17절에 바울은 잠시받는 환난, 지나가는 모든 일들을 우리를 매몰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계속되는 환난은 무거운 짐이었고, 계속 사역 가운데 있었던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짐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직 나타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렇기에 몸의 낡아짐을 보게 되더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약할 지라도 그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은 강한 하나님이시기에 그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도 믿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도 믿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바울은 여전히 믿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포기하지 않고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직면하는 상황은 복음을 전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잊지 않은 한가지가 있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자신 안에 보물을 두신 하나님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 하나님을 선포하는 일에 그리고 복음을 살아내는 삶을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보고있는 것들은 잠시 입니다. 영원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어려움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기에 강하신 하나님 크신 하나님을 믿고 말해야 합니다.
출 13:9)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4장) (수4:23-24)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강하신 손으로 여전히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막막한 홍해도 건너가게 하신 하나님의 강하신 손을 알게 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강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약함에 하나님을 가두지 말고, 질그릇과 같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하나님은 질그릇과 같은 우리에게 보물을 담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물을 가진 우리는 질그릇은 깨져도 그 안에 담겨있는 보물을 깨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보물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바울은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합니다. 오늘 이런 바울의 약함에도 영원한 생명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이 믿는 바를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전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잠시입니다. 오히려 우리안에 있는 보물이 더 밝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약할 때 강함으로 나타내시는 하나님임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처해진 많은 상황들 속에서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내가 약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강하신 손이 역사하심을 기억하며 오늘도 나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안에 뿌리내려 마음과 생각과 중심을 새롭게 하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